[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당신은 나를 만남으로 편한 것보다 고(苦)가 많았고 즐거움보다 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속히 만날 마음도 간절하고 다시 만나서는 부부의 도를 극진히 해보겠다는 생각도 많습니다만 나의 몸은 이미 우리 국가와 민족에게 바치었으니 이 몸은 민족을 위하여 쓸 수밖에 없는 몸이라 당신에 대한 직분을 마음대로 못하옵니다.”- 1921년 7월 14일 당신의 남편 (안창호) -
이는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이 부인 이혜련(1884~1969) 지사에게 쓴 편지글 일부다. 안창호ㆍ이혜련 부부는 혼인 생활 35년 가운데 함께 산 기간은 13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남편 안창호 선생이 집을 떠나 중국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동안 부인 이혜련 지사는 다섯 자녀 양육과 동시에 가정의 경제는 물론 대한여자애국단 등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남편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부인 이혜련 지사와 같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숱한 부부독립운동가들이 안창호ㆍ이혜련 부부처럼 시련을 극복해나가면서 조국 광복의 찬란한 꽃봉오리를 피웠지만 이들을 다룬 변변한 책도 없다.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에 관한 책을 19권이나 펴낸 이윤옥 작가는 한 권씩 책이 늘어가면서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그것은 여성독립운동가들 자신이 모두 미혼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이 아님에도 결혼한 여성들의 남편에 관한 정보가 너무 빈약했다는 지적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이기에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의 펴냄은 매우 의미가 깊다.
이윤옥 작가는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지난 수년 동안, 마치 수수께끼를 풀 듯 ‘부부독립운동가’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에 관한 책은 국내 처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윤옥 작가가 부부독립운동가를 쓰기로 결심한 까닭은 ‘국난의 시기에 부부가 일심동체로 어려움을 극복하여 광복의 위업을 이뤄냈음에도 이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지 않고 각각의 모래알처럼 취급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 이윤옥 작가는 말한다.
"현재 국가보훈부의 공훈전자사료관에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개인별로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오광심ㆍ김학규 부부독립운동가는 이들이 ‘부부’임을 밝히고 있으나 전창신ㆍ김기섭, 정영순ㆍ이서룡 부부처럼 대부분의 경우는 부부임을 밝혀주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를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고한다. 이렇게 힘겹게 찾아내어 책으로 펴낸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는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는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부부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는데 '핏덩이 남겨두고 독립의 길 걸은 박치은ㆍ곽치은' 부부를 비롯하여 23쌍의 부부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있다. 2장에서는 <중국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부부독립운동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만주에서 뛴 부부독립운동가 13쌍, 광복군에서 활약한 23쌍, 임시정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한 24쌍의 부부독립운동가를 소개했다. 3장에서는 <미주에서 활약한 부부독립운동가> 들로 '식료품 상회로 번돈 독립자금에 쏟아부은 차인재ㆍ임치호' 등 모두 21쌍을 소개하여 국내 처음으로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의 특징은 부부 각각의 활동과 공훈을 기록한 점이고 더 나아가 국내를 비롯하여 미국 본토, 하와이,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를 찾아다니며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취재한 기사 <더보기>와 부부 가운데 부인을 추모하는 시를 수록한 점은 다른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로, 발로 뛰는 작가 이윤옥 특유의 공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해마다 삼월이면 / 제암리 만세 함성 속에 / 아련히 들려오는
김씨 부인의 애절한 목소리 /제국주의 방아쇠 /교회 안에 당겨지던 날
어린 핏덩이 끌어안고 / 피 토하며 숨져간 여인이여
- 제암리 비극을 온몸으로 껴안은 ‘김씨 부인’ 시 가운데 -
일제 수탈의 원흉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 나석규 투사를 목숨 걸고 도운 일
세상 사람 잘 몰라도 / 이름 내려 한 일 아니니 / 애달파 마소
꿈에도 놓지 않던 광복 앞두고/ 동지 남편 고문 후유증으로 눈 감던 날
응어리진 한 위로 /무서리만 저리 내렸네
- 역사학자 신채호의 동지이자 아내 ‘박자혜’ 시 가운데 -
몸은 가도 얼은 남는 것 / 의병장 피 흘려 지키던 조국의 광복
한목숨 다해 지켜 내리라 / 천지신명께 맹세한 인고의 세월
홀로 맞은 반쪽의 광복이지만 / 임 뵈올 그날 그리며/ 꿋꿋이 지켜온 절개
- 호남 의병장 남편과 함께 뛴 ‘양방매’ 시 가운데 -
부부독립운동가들이 찬란한 조국 독립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 헌신했지만, 그 불꽃 꺼지지 않게 지킬 역량을 미처 키우지 못한 채 우리는 광복 78돌을 코앞에 두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국내 첫 104쌍 부부독립운동가들이 쌓은 동고동락(同苦同樂)의 기록을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를 광복절을 앞두고 일독을 권한다.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 도서출판 얼레빗, 17,000원
가시밭길이더라도 여성독립운동가 책 펴내는 일 계속할 것 [대담]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 지은이 이윤옥 |
- 이번에 펴낸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를 포함하여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책을 스무 권 낸 것으로 안다. 왜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가?
“한 겨레의 자산은 물질에 있지 않고 정신에 있다고 본다. 누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은 금세기에 일본제국주의로부터 당한 참혹하고 쓰라린 침략의 역사 앞에 결코 한순간도 무릎 꿇은 적이 없다. 선열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학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강탈당한 나라를 되찾고자 분연히 일어섰다. 그러한 과정에서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여성독립운동가들이다. 그러나 한국의 독립운동사에서 그들의 기록은 홀대받아왔으며 철저히 외면당해 왔다. 이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며,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이 안타까워서 여성독립운동가를 톺아보는 책을 쓰고 있으며, 나아가 ‘부부독립운동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 것이다.”
- 부부독립운동가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부부 광복군의 예를 들겠다. 이번 책에서 다룬 부부 광복군은 모두 23쌍이다. 이들이 부부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꼽으라면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를 들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료에서조차 누가 누구의 남편이며, 부인인지를 알 수 없게 기술해놓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오광심ㆍ김학규 부부를 보자. 남편 김학규 지사 기술에는 부인이 오광심이라는 말이 없고 그 대신 오광심 지사의 기술에 ‘김학규의 처’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나 정영순ㆍ이서룡 부부의 경우는 아예 이들이 부부임을 표기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부부 독립운동가를 찾는 작업부터 벽에 부딪혔다. 23쌍을 찾는 데만도 여러 해가 걸렸다. 참으로 어이없는 노릇이다. 차제에 국가보훈부는 <공훈전자사료관> 기록에 부모형제, 부부 등을 간략히라도 기술해놓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번 책은 그동안 여성독립운동가들만 추적해 왔던 지은이의 작업과는 결이 다르다. 특징은 무엇인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들었던 하나의 의문이 있었다. 그것은, 상당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혼인과 동시에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여성독립운동가의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오늘날 대개의 부부는 한 집에서 생활하지만, 일제강점기 부부독립운동가들은 처지가 달랐다. 미주에서 활동한 안창호ㆍ이혜련 부부만 해도 35년 혼인 기간 중 함께 산 기간이 고작 13년이라니 말해 무엇하랴 싶다. 한군데 정착하면서 출퇴근하듯이 남편이 독립운동하러 나가는 게 아닌 상황이었다. 독립운동 시기는 준 전쟁시기였기에 많은 경우 생이별이 허다했다. 그러한 부부들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
- 이번 책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솔직히 독립운동가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 판매도 그렇지만 독자층도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원고는 완성되었지만, 출판비에 늘 허덕인다. 그래서 도전한 것이 출판문화진흥원의 책 지원 공모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운이 없게도 3년이나 내리 떨어졌다. 조금 건방진 말이지만 올해 뽑힌 책들을 훑어보니 《동고동락 104쌍의 부부독립운동가 이야기》보다 더 뛰어난 소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개나 고양이처럼 반려동물 책들은 언제부터인가 꼭 선정작에 들어 있다. 그보다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못한 것인가 싶어 한동안 자괴감에 빠졌었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 세상에 이 책을 내놓는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책을 20권에서 끝낼 수는 없다. 아직 알려내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많기 때문에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기록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출판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그럼에도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독립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열들을 생각하며 집필에 박차를 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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