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청이 피카소로 이어진 역사

  • 등록 2023.11.01 11: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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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전설적인 예인 로산진, 한국의 도자전통이 밑밭침 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2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일본의 역사 중심이었던 교토나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거의 일본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한 미술관이 일본 으뜸 정원이라는 평가를 20년째 받아오고 있는 것을 아는 분들이 많지는 않겠는데, 필자는 이 미술관을 두 번이나 방문하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지난 6월 중순 10년 만에 다시 방문한 이 ‘아다치미술관’이란 곳, 관람객들과 함께 복도를 따라가며 멋진 정원을 내다보던 중에 한 건물 입구 벽에 낯익은 사인이 눈에 들어오기에 가까이 가서 보니 ‘魯山人’이라는 한자 사인이었다.‘

 

 

 

그것은 일본 근대의 유명한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의 탄생 140돌을 맞아 마련한 특별전시실 입구였다. 마침 폐막 열흘 전이었다. 운 좋게 전시장을 발견하고 전시된 도자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동백꽃사발(椿碗)도 있었다. 10년 전에는 이런 시설이 없었는데, 3년 전에 새로 전시실을 마련하고 해마다 그의 작품과 유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1883~1959)은 근대 일본의 전설적인 예인(藝人)이다. 도예가인 동시에 서예가, 전각가이며 무엇보다도 음식의 격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요리철학가이기에 ‘일본 요리의 전설’로 불린다. 또 사치는 공공의 적이라 불리던 시대에 ‘미식의 자유’를 부르짖은 ‘일본 첫 미식가’이기도 하다. 1883년 교토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스스로 공부에 뛰어들어 서예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조선과 중국을 여행하며 도자기와 전각을 공부했다.

 

1912년에는 ‘미식 구락부’를 창업해서 요리를 담는 모든 그릇(도기와 칠기)을 직접 고안하여 제작해 최고의 미식세계를 열어갔다. 오늘날 그의 도자기 작품들은 여전히 최고가에 거래된다. 이런 전설적인 도예가의 이면에는 그러나, 한국의 도자전통이 밑밭침이 되어있음을 사람들은 지나친다. 그가 미식구락부를 만들고 스스로 만든 도자들을 세상에 내놓기 전 3년 동안 한국에 와서 살았다.

 

그리고 1928년 5월에는 한 달 동안 계령산, 강진, 하동 등 우리나라 옛 가마터를 돌며 트럭 한 대 분의 도자기와 파편들을 모아 일본으로 보냈다. 특히 이때 계룡산에서 가져간 흙으로 술병과 찻사발을 만들었다. 하동의 흙도 사용해서 고히키(粉引), 하케메(刷毛目), 미시마(三島) 등을 빚어내어 큰 성공을 거둔다. 그에게 계룡산의 흙뿐 아니라 거기서 보고 수집한 분청들이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전후인 1950년 11월 일본 현대도예가들의 작품이 파리에 와서 체르누스키 미술관에서 <현대일본도예전>으로 열렸다.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49명의 작품 71점이 몇 달 동안 열려 프랑스인들의 호평을 받았고 당시 전시장을 들른 파블로 피카소의 강력한 요청으로 그의 도자작업장이 있는 남프랑스의 발로리스에서 1951년 7월부터 2달 동안 전시회를 가졌는데 이때 피카소 자신도 40여 점을 출품해 함께 전시했다.

 

피카소는 이 무렵 자유자재의 표현력을 발휘해 많은 작품을 남겼거니와 당시 피카소는 전시회를 자신의 마을로 유치할 만큼 일본 현대도예작품, 특히 로산진의 작품에 매료됐다는 것이기에 그것이 피카소가 만든 도예작품들에 녹아 들어갔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전시회에 출품한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 魯山人), 카와이 간지로(河井寬太郞.1890~1966), 토미모토 겐기치(富本憲吉,1886~1963) 등의 도예작가들은 대부분 한국의 옛 도자기 가마를 방문해 한국의 도자기 제조법을 다시 연구했고 한국작품의 영향을 그들의 작품 속에 짙게 남긴 사람들이다. 1950년을 전후해서 도자기에 심취했던 파블로 피카소가 일본 현대도예전을 보고 그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했을 것이다. 그런 일본 도얘가 한국의 것을 바탕에 깔고 있었기에 한국의 도자예술이 피카소에까지 이어졌다는 분석도 할 수 있다.

 

 

이곳 아다치 미술관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로산진의 작품들을 많이 수집하고 그를 알리는 일을 많이 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와서 로산진을 다시 보니 그의 과거 행적과 함께 피카소로 이어지는 우리 도자문화의 전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생전에 피카소는 파리에서 도자기 예술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우리의 '분청'을 언급했다고 당시 유학생이었던 민희식 전 불문과 교수가 말씀한 것으로 전해진다.

 

피카소도 우리 도자기에 관해 연구했다는 것인데,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다. 로산진이 젊을 때 우리나라의 계룡산과 하동 등 곳곳의 도자문화를 연구한 것이 이렇게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1982년에 KBS주최로 피카소 도예전이 약 두 달 동안 서울에서 열렸지만, 이런 점은 전혀 언급도 되지 않았다.

 

우리들이 아직 그런 세계적인 흐름이랄까 조류에 대해 눈을 돌리지 못한 점이 있는 것은 아쉬움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음식문화가 크게 일어나고 방송에서 먹거리에 대해 날마다 쏟아내는 것에 따라 로산진의 요리세계에 대해서는 주목하고 책도 많이 나오지만 로산진이 세계로 열어간 우리 도자문화의 전파경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진 분이 드물다. 우리 도자문화의 값어치와 진수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 미진한 까닭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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