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가노 조선인 강제연행 실체를 밝힌 책 나와

2024.04.18 12:17:35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을 쓴 곤도 이즈미 씨 대담
<맛있는 일본이야기 715>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작업 중 다이너마이트 불발탄이 폭발하여 눈앞에서 죽은 사람만도 10여 명이나 있었다. 그들은 손발이 갈가리 찢겨 나갔고, 바윗돌이 가슴을 덮쳐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래서 사체의 행방은 잘 모른다. 강제징용자들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부상으로 죽었다. 터널 공사 중 나온 돌덩어리를 나르는 짐차에서 떨어지거나 터널 받침목을 제대로 설치 안 해서 죽어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공사장에서 죽은 사람을 끌고 나가는 것을 수백 번 이상 목격했다.

                   - 나가노 히라오카댐(長野平岡) 강제연행노동자 김창희 증언, 경북 월성 출신, 160쪽 -

 

“내가 일본에 연행된 것은 1944년 2월의 일로, 당시 누나는 시집을 갔고, 큰형은 사망했고, 셋째 형은 만주로 갔다. 고향에는 어머니와 둘째 형과 내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내 나이 23살 때다. 어느 날 잔디를 깎고 돌아왔는데 구장이 찾아와 하는 말이 ‘이 집에는 일하는 사람이 두 명 있으니까 한 명은 2년 동안 일본에 가서 일하고 와야 한다.’라며 통달(通達, 소집통지서)을 들이댔다. 당시 이러한 통지서를 거부할 수는 없었으며 도망을 쳐야 한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나가노 이이지마발전소(長野飯島発電所) 강제연행노동자 김영구 증언, 1922년생) 170쪽 -

 

이는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本土決戦と外国人強制労働)》(고문연‘高文硏’ 2023)에 나오는 조선인강제연행자들의 증언이다. 이 책을 쓴 이들은 일본 나가노현에 사는 시민들로 <나가노현 강제노동조사네트워크> 소속 순수 시민단체 회원들이다.

 

지난 4월 8일(월), 기자는 안국역에 있는 커피숍에서 방한 중인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을 쓴 곤도 이즈미(近藤 泉, 73) 씨 일행을 만났다. 곤도 이즈미 씨는 나가노현 마츠모토시(長野県松本市)에 살면서 마츠모토강제노동조사단(松本強制労働調査団) 회원, NPO법인마츠시로대본영평화기념관(NPO法人松代大本営平和祈念館)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의 공동집필자 5명 가운데 한사람이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 곤도 이즈미 씨는 방한 목적을 간단히 이야기해 주었는데 경기도 이천에 사는 전 외대 박창희 교수(사학과, 92)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아, 박창희 교수라면 나의 대학시절 은사이기도 하지 않는가! 박창희 교수가 일본에서 함께 시민활동을 할 때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심지 깊은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커피가 나왔다. 우리는 커피가 나올 때까지 박창희 교수의 건강과 안부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를 쓰게 된 동기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곤도 이즈미 씨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2010년에 나가노현 강제노동조사네트워크(아래, 나가노강제노동조사회)를 결성한 이래 나가노현 내의 강제 노동현장을 확인하는 작업과 토론회를 열어왔으며 한국과 중국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나가노현으로 건너온 강제노동자들의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이 책은 10년여 동안 <나가노강제노동조사회>가 나가노현에서 자행된 강제연행ㆍ강제노동 실태의 규명을 바탕으로 침략전쟁의 본질과 일본의 가해 실태를 밝히려고 쓴 책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강제노역을 직접 당한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려는 데 주요 목적이 있습니다.

 

지금 일본 정부는 조선인, 중국인 등 외국인 강제연행노동자들에 대해 <국가 무답 정책>, <손해배상청구권 포기> 등을 내세워 국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으며 정부가 나서서 가해 사실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더 분노가 치미는 것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가, 언제 강제연행ㆍ강제노동을 한 것인지, 그 책임은 명백히 밝혀졌는지, 패전(敗戰)으로부터 8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일제의 가해 사실을 진지하게 마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한일간 화해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이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곤도 이즈미 씨의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힘이 솟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기자는 <나가노강제노동조사회>의 활동을 비롯하여 일본 내 여러 양심있는 연구자와 시민단체들이 일제국주의의 조선과 아시아 제국의 침략, 가해 사실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꽤 알고 있다. 곤도 이즈미 씨가 나가노현의 비행장, 댐 건설, 도로 건설, 방공호 건설, 마츠시로대본영 공사 등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처참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하야시 에이다이(林 栄代, 1933-2017) 선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학살 현장인 사할린의 설원에 서게 되면 일본인이 저지른 뿌리 깊은 원죄를 뼈저리게 느낀다. 일본이 양심이 있다면 강제 연행한 조선인을 맨 먼저 귀국시켜야 했다. 그런데 일본인만 후송하고 조선인은 내버려 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행위가 용서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하야시 에이다이 씨의 격앙된 ‘일본사죄론’이다. 그러나 이 말은 사할린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본다. 바로 기자의 눈앞에서 일본의 양심을 묻는 책을 써 가지고 온 나가노지역에서도 ‘일본의 뿌리 깊은 원죄’는 이끼처럼 푸르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야시 에이다이 씨는 1981년 《강제연행ㆍ강제동원 치쿠호 조선인 광부의 기록(1990년)》, 《청산되지 않은 쇼와(昭和)-조선인 강제연행 기록(2010년)》, 《치쿠호ㆍ군함도-조선인 강제연행, 그 후》 등을 발표하는 등 그의 저서 57권을 통해 일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을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기록한 다큐 작가다. 기자는 그가 밝힌 큐슈 치쿠호 탄광 일대의 조선인 강제노동현장을 취재한 경험이 있어 <나가노강제노동조사회>의 회원들이 발로 쓴 《본토결전과 외국인강제노동》이란 책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 안다.

 

 

 

책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나가노현에 있어서의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2장~4장은 나가노 지역별로 강제 노동현장과 실태를 꼼꼼하게 도표와 통계 자료를 제시하여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연합군 포로도 일부를 다뤘으나 책의 80%는 조선인 강제연행노동을 다룬 것으로 보면 될 정도로 조선인 강제노동자들의 진상 규명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특히 부록에는 일본 전역과 나가노현에서 펴낸 조선인 강제연행 관련 참고문헌을 소상히 밝힌 점과 1910년 한일 병탄부터 1945년 8월 일본 패전 때까지 일본 전역과 나가노현에서 일어난 각종 강제노동 사항 등을 도표로 알기 쉽게 작성해 놓은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이 일찍이 침략한 한국 및 아시아 여러 나라에 가한 만행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겁니다. 이 책에서 다룬 외국인 강제 연행과 강제 노동은 그 만행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행한 만행과 짓밟은 인권에 대해 아픔을 느끼지 않고 있는 일본의 모습입니다. 현재도 편협한 배외주의나 민족차별, 외국인 차별이 횡행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풍조에 항거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는 일본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일본을 다시 전쟁하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시민들이 감시하고 힘을 모으는 일에 앞으로도 기여하고 싶습니다.”라고 입을 모으는 곤도 이즈미(73) 씨, 시마오카 마리(74) 씨, 나가타 요시(69) 씨와의 대담은 그런 뜻에서 매우 의미 깊었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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