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겨울 초입에서는 이른 추위가 닥쳐서 부랴부랴 김장들을 재촉하고…….”
- 한수산, 《부초》
“부랴사랴 외부대신 집으로 달려가는 교자가 있었다.”
- 유주현, 《대한제국》
‘부랴부랴’와 ‘부랴사랴’는 생김새가 아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두 낱말의 뜻풀이를 아주 같은 것으로 해 놓았다.
· 부랴부랴 :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 부랴사랴 : 매우 부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표준국어대사전》
보다시피 그림씨 ‘부산하고’를 더 넣고 빼고 했을 뿐이니,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 도리가 없다. 외국인이라면 이런 뜻풀이 정도로 알고 그냥 써도 탓할 수 없겠지만, 우리 겨레라면 이들 두 낱말을 같은 것쯤으로 알고 써서는 안 된다. 선조들이 값진 삶으로 가꾸어 물려주신 이들 두 낱말은 저마다 지닌 뜻넓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랴부랴’는 느낌씨(감탄사) 낱말 ‘불이야!’가 겹쳐서 이루어진 어찌씨(부사) 낱말이다. “불이야! 불이야!” 하던 것이 줄어서 “불야! 불야!” 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맞춤법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랴부랴’가 되었다. 이렇게 바뀐 것이 별것 아닌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두 낱말이던 것이 한 낱말로 보태진 데다 느낌씨 낱말이 어찌씨 낱말로 바뀌었으므로 적잖이 커다란 탈바꿈을 한 셈이다.
본디 느낌씨 ‘불이야! 불이야!’는 난데없이 불이 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서 부르짖는 소리다. 이것이 ‘불야! 불야!’로 바뀌는 것은 불난 사실이 너무도 다급해서 목으로 넘어오는 소리가 짧아진 까닭이다. 이런 사태가 현실로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은 불을 끄려고 시각을 다투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수라장을 이룬다. 어찌씨 ‘부랴부랴’는 바로 그런 아수라장에서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낱말이다. 국어사전이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이라고 풀이하는 것이 바로 그런 움직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부랴사랴’는 낱말의 짜임새로 볼 적에 ‘부랴부랴’와 다를 것이 없고, 다만 뒤쪽 ‘부랴’가 ‘사랴’로 글자 하나만 바뀐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게 아니다. ‘부랴부랴’와 마찬가지로 ‘부랴사랴’도 “불이야! 살이야!” 하던 것이 줄어서 “불야! 살야!” 하게 되었는데, 오늘날 맞춤법이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랴사랴’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부랴사랴’의 ‘부랴’는 ‘부랴부랴’의 ‘부랴’와 같지 않음을 짝으로 따라오는 ‘사랴’로써 알 수 있다. ‘사랴’는 ‘살야!’ 곧 ‘살이야!’인데, 이때 ‘살’은 다름 아닌 ‘화살’이다. 그러니까 ‘살이야!’는 “화살이야!” 하는 소리, 곧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놀라서 부르짖는 소리다. 그렇다면 ‘살’과 짝이 되어 날아올 수 있는 ‘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총알’이니 ‘탄알’이니 하는 그것이다. “불 맞은 멧돼지처럼”, “일제히 불을 뿜었다.” 하는 말은 오늘날에도 쓴다. ‘부랴사랴’는 총알과 화살이 날아오는 싸움터에서 목숨을 걸고 부르짖는 소리에서 비롯하여, “매우 부산하고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을 뜻하는 어찌씨 낱말로 굳어진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