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국궁’에 빠진 까닭은?

  • 등록 2024.06.24 11: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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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활쏘기(국궁)를 연마하는 서울 공항정에 가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궁캉스(궁궐에서 즐기는 바캉스), 뮷즈(뮤지엄+굿즈)... 이런 말들은 조금 낯설지만 MZ세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요즘 MZ들은 예전과 다르다. 클럽 대신 궁궐로, 명품 대신 박물관 문화상품 수집에 열을 올린다. 오래된 옛 문화에서 역설적으로 신선함을 느끼는, 이른바 ‘레트로(과거의 모양, 풍습 따위를 좇아 하려는 것)’ 열풍의 연장선이다.

 

MZ세대들이 진출한 영역은 궁궐과 박물관만이 아니다. 요즘 들어 국가무형유산 제142호 전통활쏘기(국궁)를 수련하는 젊은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자연스레 활터(국궁장)에도 젊은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17일(월), 요즘 ‘뜨거운’ 활터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 강서구의 국궁장, 공항정(空港亭)을 찾아가 봤다.

 

 

 

서울 강서구 우장산공원에 있는 공항정은 풍광이 수려한 활터로 유명하다. 버스정류장에서 1분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아 강서구민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양천구, 동작구, 종로구는 물론 멀리 인천에서 오는 회원들도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국궁에 빠진 까닭

 

기자는 이날 공항정 윤서현(서울강서구궁도협회장) 사두(射頭: 활터를 관리하는 우두머리)와 김경준 홍보이사의 안내로 활터를 구석구석 둘러보며 전통활쏘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국궁을 많이 배웁니까?”

 

기자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김경준 홍보이사는 “자신도 30대 초반의 대학원생이라며, 최근 들어 공항정에 2030 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날마다 교육 문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오는데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MZ세대는 왜 국궁에 꽂혔을까. 최근까지 대학에서 국궁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김경준 이사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동아리도 신입부원을 모집할 때 경쟁률이 어마어마했다”라며 “지원동기를 보면 대부분 어릴 때 사극을 보며 품었던 로망들을 말하고 있었다”라고 했다. 사극에서 주인공이 멋지게 활을 쏘는 모습에 반해 다들 한 번쯤 배워보고 싶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김경준 이사는 덧붙였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요즘 MZ세대들에게는 남들이 다 하는 것보다는 뭔가 희소 값어치가 있는 특별한 문화를 누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국궁은 ‘소수의 문화’입니다. 바로 그 소수의 문화라는 점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공항정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의 400곳 가까이 되는 활터를 통틀어 SNS를 운영하는 국궁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김경준 이사는 SNS 개설 뒤로 공항정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흔히 활터라고 하면 엄격하고 딱딱한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는데, SNS를 통해 친근한 이미지를 노출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마음의 장벽’을 많이 낮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항정은 ‘젊은 활터’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대학 국궁동아리에 매우 개방적인 정책을 하고 있다. 서울만 하더라도 광운대ㆍ고려대ㆍ서울대ㆍ서울여대ㆍ한양대 등 19개 대학에 국궁동아리가 있어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공항정은 몇 년 전부터 대학생 궁사들을 위해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평소에도 대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와서 활쏘기하기도 하고, 동아리 차원에서 행사를 진행할 때 월 1회에 한해 장소를 무료로 대관해주고 있다.

 

특별히 대학생들을 우대하는 까닭에 관해 묻자, 윤서현 사두는 “앞으로 대학생들이 대한민국 국궁의 미래”라며 “그들이 활쏘기를 연마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응원해 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PC게임’도 끊게 만드는 국궁의 매력

 

윤서현 사두에게 국궁의 매력에 관해 물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여럿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란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요. 축구, 야구, 테니스 등은 상대방이 있어야 할 수 있지만, 국궁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습니다. 혼자 연습할 때는 온전히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명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쏠 때는 승부를 겨루는 재미가 있습니다.”

 

국궁에 한 번 빠지면 좀처럼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고 한다. 이날 공항정에서 만난 한 20대 궁사 역시 PC게임에 푹 빠져있다가 국궁을 시작한 뒤로는 활 쏘는 시간도 부족해서 자연스레 게임을 끊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하다가 이렇게 자연과 호흡하며 활을 쏘니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해지는 것 같다”라며 국궁의 심신안정 효과를 특히 강조했다.

 

공항정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된 ‘각궁(角弓)’ 문화가 발달한 활터로도 유명하다. 각궁이란 참나무, 산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와 소힘줄, 물소뿔 등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을 결합하여 만든 우리 겨레 고유의 전통 활이다.

 

 

윤서현 사두는 “각궁에 대한 우리만의 비법과 전통이 있다는 것이 공항정의 자랑이자 특색”이라며 특히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각궁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금 국궁장에 가면 대부분 1970년대 이후 신소재로 만들어진 카본 활(개량궁)을 많이 씁니다만, 각궁이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전통 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궁은 카본 활에 견주어 다루기가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만, 바로 그 까다로움을 극복하고 길들이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현재 국궁계에 ‘고단자만 각궁을 쓸 수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돌고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각궁은 오히려 빨리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기를

 

공항정을 둘러보는 동안 활터 곳곳에 게시된 규칙들이 눈에 띄었다. 유독 상호 예절을 중시하는 구절들이 많았다. 이런 예의범절에 대한 강조에 젊은 사람들이 지레 질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윤서현 사두는 고개를 저었다.

 

“활터에서 강조하는 예절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예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활이라는 무기를 다루는 곳이니 나와 모두의 안전을 위해 규칙이 조금 엄격할 뿐이지요. 활터에서는 기본적으로 나이가 많건 적건 상호 존대하며 존중하고 있습니다. 활터에서는 나이가 한참 어려도 ‘접장’이라는 칭호를 붙여가며 존중해 줍니다. 활터에 오면 누구나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정상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경준 이사 역시 “저도 워낙 내성적인 탓에 처음 공항정에 온 날, 입구에서 계속 들어갈까 말까 망설일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라면서 “막상 와보니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하대하지도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해주는 모습에 뭉클함마저 느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활터가 소위 ‘꼰대’들만 있는 곳이었다면 지금 내가 여기 계속 나올 수 있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윤서현 사두는 활터가 ‘세대 간의 소통의 장’으로 기능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간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을 ‘꼰대’라 무시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거꾸로 ‘라떼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젊은 사람들을 마냥 한심하게만 바라봅니다. 이러니 대화가 단절되고 사회도 점점 각박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활터에 오면 나이와 신분을 잊은 채 동등한 인격체로 서로를 대합니다.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서 활터가 갖는 순기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젊은 사람들이 어려워 말고 활터의 문을 두드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공항정(空港亭)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onghangjeong/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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