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궁가(水宮歌) 풍류에 나오는 악기 이야기

  • 등록 2024.07.16 12:21:33
크게보기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8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명창이나 명인 뒤에, 붙이는 제(制)라든가 류(流)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전승계보나 지역, 또는 해당 명인의 특징적인 음악 구성을 알 수 있는 계파(系派), 혹은 류파(流派)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유사 개념으로는 <더늠>, <바디>, <조(調)>, <파(派)>가 있다는 점, 같은 제라고 해도 설렁제, 서름제, 호령제, 석화제, 산유화제, 강산제와 같은 말은 해당 음악의 분위기, 또는 악조(樂調)와도 관련이 깊다는 점, 제나 유파를 두고 각자가 보는 시각이나 관점은 차이를 보이며, 그것이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에는 판소리 수궁가(水宮歌) 속에는 수궁풍류 대목이 나오고 있어서 이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수궁가에 나오는 토끼는 벼슬자리를 탐내다가 자라의 뀜에 빠져 수궁에 들어가게 되어 꼼짝없이 죽게 되었다. 토끼의 간이 약이 된다고 해서 토끼를 잡아 온 것이다. 죽게 된 토기가 살기 위해서 되는 말, 안 되는 말 등으로 변명을 늘어놓아 결국 죽음을 모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토끼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넘어간 용왕은 토기를 풀어주고, 게다가 술대접까지 해 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토끼는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바로 용왕이 건네주는 술 몇 잔을 얻어 마시고 토끼란 놈이 술에 취해서 스스로 주어 넘기는 말속에 “동의보감을 많이 보았으되 토끼의 간이 약 된다는 말, 뱃속에 달린 간을 들이고 내고 한단 말은” 한 뒤 토끼가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아차차차차, 춘치자명이로고. 말을 돌리는 것이다. 바로 이 말로 토끼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던는데, 또다시 죽을 고비를 맞기 전에, 그래도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어 말을 돌린 것이다.

 

 

토끼가 용왕에게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수궁 풍류나 좀 듣고 갔으면 한이 없겠소.”라고 분위기를 돌려 뜻밖의 실수를 모면한다. 토끼가 정신을 차리고 중얼거린 춘치자명(春雉自鳴)이란 말, 이 말은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울음을 울어 죽게 된다는 뜻이다. 울지 않으면 꿩이 있는 위치를 모르는데, 위치를 스스로 알려 잡혀서 먹히게 된다는 말이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모두 이 말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끼게 한다.

 

토끼의 요청에 용왕은 물색도 없이 토끼가 두고 왔다고 하는 간을 얻어먹기 위해 <수궁풍류>를 준비했다고 하면서 풍류를 시작하게 하는데, 이 대목을 박봉술의 소리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엇몰이> 왕자 진의 봉피리, 곽 처사 죽장고, 석연자 거문고, 장 양의 옥통소, 혜강의 해금이며 격타고 취용적, 능파사 보허사, 우의곡 채련곡을 곁들여서 노래허니 낭자헌 풍악소리 수궁이 진동헌다.

 

악기와 악곡 사람 이름들이 이어져 나오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에 나오는 사설들을 간단하게 풀어보기로 한다.

 

엇몰이는 장단의 형태로 5박의 형태로 짜여 있으며 두 장단이 한 쌍을 이루고 있다. 왕자 진은 주나라 영왕의 태자로 피리를 썩 잘 불었다고 하는데, 특히 봉황의 소리를 잘 냈다고 해서 봉피리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인다.

 

곽 처사의 죽장고라는 문장에서 곽 처사는 당나라 때의 곽도원이란 사람으로 그는 격구라는 타악기를 잘 쳤다고 전해온다. 당나라의 시인 온정균은 <곽처사 격구가>라는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가 애송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었다고 한다. 죽장고란 당나라 때에 성행한 타악기로 알려져 있으며 사발 12개에 물의 양을 저마다 다르게 담아 놓고 쇠붙이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참으로 묘했을 것으로 상상이 된다. 

 

 

석연자의 거문고라는 말에서 석연자는 성연자(成蓮子)이고, 이 사람은 중국 춘추시대의 금(琴)의 명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거문고라는 현악기는 우리나라 고구려 때부터 전해오는 현악기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거문고가 아니라 금이라 해야 옳다. 중국에서는 금을 거문고라 부르지 않는다. 또한 줄의 수효에 따라 1현금, 3현금, 5현금, 7현금, 9현금 등 다양하며 오동나무 통 위에 줄 수에 따라 5현을 얹어서 타면 5현금, 7현이면 7현금이 된다. 중국에서 금이란 악기는 즐기기 위해서는 탄다기보다는 자기의 인격을 닦기 위해 선비들이 스스로 타던 악기였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 때 중국에서 7현금을 보내 주었다고 적고 있는데, 처음엔 이것이 악기인 줄 몰라 나라 사람들에게 상금을 걸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물색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차, 당시 재상이었던 왕산악(王山岳)이 본래의 모습을 살리면서 제도를 고쳐 만들고 겸해서 곡을 지어 탔더니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해서 이를 ‘현학금(玄鶴琴)’으로 부르다가 ‘학’을 빼고 거문고로 불렀다고 전해온다. 거문고와 가야금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하게 견주면서 이야기 해 볼 예정이다.

 

다음, 장양(張良)의 옥통소도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통소는 퉁소, 퉁수, 퉁애라고도 부르는 세로로 부는 취악기인데, 그 생김은 단소보다 굵은 대나무로 만들고 세로로 부는데, 특별하게 옥(玉)으로 만들어진 통소를 옥통소라 부른다. 장양이 한 나라 유방을 도와 초 나라를 칠 때에 달밤에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이 고향 생각을 하며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노래 가사에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