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MZ’, 새로운 ‘사랑’의 형태 발견

  • 등록 2024.07.17 1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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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아, <조지 발란신의 ‘Who cares?’>
[이진경의 문화 톺아보기 14]

[우리문화신문=이진경 문화평론가]  

 

우리는 모두 다른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며,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마땅하다. 창작자가 생각한 주제를 관람하고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자신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평 혹은 평론은 여러 경력을 갖지 않으면 언론사에서 쉽게 글을 올려주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그 글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고심 끝에 예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문화평론가로서 성장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예비 문화평론가 소개”를 시작하려고 한다. 이 소개에는 ‘문화톺아보기’의 문화평론가로서 후대들에게 글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의 발전을 위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필자의 <비평> 수업을 통해 양성한 이들로 제한하여 뽑았다. 많은 신청자 가운데 <우리문화신문>의 주제와 색깔이 어울리고 단순한 감상과 평가로서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주체성으로 시대의 영향이 되어줄 글을 기준으로 하였다.

 

“Who cares?” 영어에서 자주 쓰이는 이 표현은 “누가 상관이나 한 대[알 게 뭐야]?”라는 뜻을 가졌다. 어딘가 낯이 익지 않는가? 사춘기 청소년 또는 요즘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 세대”에게 들을법한 다소 반항심이 묻어난 문장이다.

 

1970년대 미국은 사회보다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MZ 세대”와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다. 이는 전쟁이 끝난 직후, 다양한 정권의 출현과 여러 사회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등장한 미국의 새로운 문화와 관심사였다. 타인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는 1970년대, 미국의 이러한 ‘자기중심 분위기’를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성과 전통적인 발레의 틀에서 벗어난 움직임으로 한 번.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공연이 펼쳐지는 미국의 브로드웨이 밤을 표현한 무대 연출로 또 한 번. 제목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을 탄생시켰다.

 

<Who cares?>는 지금까지 접해왔던 클래식 발레 작품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공주와 왕자의 사랑, 음과 양, 갈등 없이 작품에 출연하는 모든 무용수가 시대를 담아낸 작품의 주인공이자 시민으로서 무대를 이끌어간다. 줄거리보다 음악과 춤 동작 자체에 집중한 ‘신고전주의’ 성격의 연출은 위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특징이다. 조지 발란신 특유의 빠르고, 활동적인 안무 구성으로 무용수가 악보이자 악기가 되어 음악을 시각화함으로써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화려한 앙상블에 이어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무용수들. 그 가운데서도 3번째 여자 솔로 춤꾼의 <My One and Only>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바라보았다. 제목을 해석해 보면 알 수 있듯이 “나의 유일한”, “나의 모든 것” 곧 ‘사랑’이라는 감정이자 상태를 표현한 솔로 작품이다.

 

“사랑”이란, 삶과 예술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들리는 다수의 음악이 사랑을 노래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사랑을 그려낸다. 시골 소녀의 서투른 사랑, 신분을 뛰어넘는 극적인 사랑 등 무용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특별한 서사 없이 음악과 춤 자체에 비중을 둔 ‘신고전주의 발레’의 특징과 조지 발란신의 안무가 만난 ‘사랑’은 어떠할까?

 

 

몸매를 한껏 드러낸 짧은 의상, 재즈와 클래식이 융합된 음악. 요정처럼 등장한 무용수는 사랑스러운 몸짓과 표정 연기로 깊어 가는 브로드웨이 밤을 밝히듯 어두운 무대를 밝은 에너지로 물들인다. 홀로 넓은 무대를 누비며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올라가는 속도와 동작의 기술을 다양한 동선과 함께 완벽하게 소화하기까지 한다. 마지막까지 다채로운 시선 변화와 표현력을 놓치지 않는 춤꾼을 본 관객들은 “보는 사람이 다 힘드네.”라는 감상보다 그 화려한 기교와 구사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특히, 발레 전공자일수록 장르의 특성상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 골반을 빼거나 밀어내는 자세. 틀에 박히지 않은 발동작을 자연스럽게 밟는 춤꾼을 통해 춤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을 감상할 수 있었다. 회전 동작을 하면서도 순간의 제어로 정확한 자세를 취하고, 음악에 끌려다니지 않는 모습. 풍부한 표현력과 연기의 조화가 기술에만 치우치지 않는 균형 또한 느끼게 해주었다. 조지 발란신의 안무를 무용수 본인만의 해석과 섬세한 작품 분석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면서 관객들에게 위와 같은 감상을 느끼게 해주었다.

 

조지 발란신의 <Who cares?> 그 가운데서도 <My One and Only> 작품을 통해 무용 안에서 새로운 ‘사랑’의 형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구성(플롯)이 없는 만큼 언제든 어떤 안무가와 무용수에 따라 변화할 수 있고, 동일한 안무여도 무용수의 기량과 스타일에 따라 저마다의 해석을 가지며 관람할 것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요정’ 같은 느낌이 나는 의상이 눈에 밟혔다. 무용수의 움직임과 사랑스럽고 발랄한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관찰하기에는 좋으나, 일상복에 가까운 남자 무용수의 의상과 비교되었다. 1970년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바지나 상의 또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했던 형태로 디자인했더라면 시대성이 더 잘 반영되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다 할 서사 없이 음악과 춤 자체에 비중을 두다 보니 관객은 작품 내용에 대한 창작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더불어 작품을 통해 개인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칠만한 깊이의 작품은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성과 배경 묘사,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무대 연출과 안무를 통해 ‘1970년’, ‘미국’, ‘브로드웨이’, ‘밤’, ‘사랑’, ‘재즈’ 등 관련 단어들을 연상시켰다는 점에서 ‘신고전주의 발레’ 특징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 발란신의 안무 특징이 본래 빠른 박자의 많은 동작 구성과 화려한 기술을 추구하다 보니 안무가의 예술성이 더 잘 묻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고,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는 법이다.

 

곧 현재 모던 발레의 시초이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 가운데 하나인 조지 발란신의 시도는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 묘사. 흔히 듣고, 보고, 읽었던 ‘사랑’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기반으로 작품을 창작하는 데에 있어 ‘신고전주의 발레’ 특징과 자신만의 예술성을 조화롭게 녹여낸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화려한 기교와 기존 음원을 기반으로 편곡한 음악을 사용하면서 대중성까지 놓치지 않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도 세계 유명 발레단의 무대와 발레 스쿨에서 연례 워크숍 공연으로도 올라가는 것을 보면 <Who cares?>를 감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관람한 적이 있다면 무용수들의 화려한 기교에 벌어진 입을 모으며 본인만의 해석을 나누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진경 문화평론가 jksoftmil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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