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일본 미시마에서 이윤옥 기자] “이 온천장 호텔은 유명한 곳이었지만 5년 전쯤에 문을 닫았답니다. 그리고 이 근사한 집도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구요. 저 집도 빈집입니다. 저기 나무가 울창한 저 집도 매물로 나와 있지요.”
이른 아침, 숲으로 둘러싸인 시즈오카현 미시마의 나가이즈미마을(長泉町)을 산책하며 이코 노리코(67) 씨는 그렇게 말했다. 어제(23일) 도쿄 날씨가 32도로 완전 찜통더위인데 견주어 나가이즈미마을의 아침은 선선하고 산바람까지 불어와 더욱 시원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서 마치 설악산 깊숙이에서 맞이하는 아침처럼 상쾌한 미시마(三島)에서의 첫날 아침 산책은 ‘빈집’ 순례가 되고 말았다.
“아침엔 보통 5시쯤 개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고 있어요. 산속 마을이라 시원하기는 해도 해가 뜨면 뜨거워서 여름에는 일찍 나선답니다.” 7년 만에 만난 이토 노리코 씨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오늘 아침 6시에 산책하러 나가는 시간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제 오후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여 특급 열차로 시부야까지 와서 거기서 다시 신칸센으로 갈아타고 노리코 씨가 살고 있는 미시마역(三島驛)까지 오는 데는 꼬박 3시간 이상 걸렸다. 노리코 씨는 역전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3년 동안 왕래가 되지 않은 데다가 서로의 친정어머니 병구완을 하느라 왕래를 하지 못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지복(至福)이 있어 노리코 씨 어머니도 기자의 어머니도 장수(95세)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셨다. 노리코 씨와의 인연은 기자가 와세다대학의 방문학자로 가 있던 1999년부터이니까 무려 25년의 우정을 쌓아온 터다. 노리코 씨는 영어를 전공하여, 오랫동안 일본에서 영어 교사를 하는 틈틈이 한국어와 한국역사,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일본에서는 종종 만나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었다.
“나가이즈미의 이 집을 400만엔(한화 약 3,500만원)에 올봄에 샀어요. 윤옥 씨는 글 쓰는 작업을 하니까 언제든지 내려와서 머무르세요. 열쇠를 아예 줄게요.”
엊저녁 밤에 도착하여 집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산책길에 나서면서 보니 2층집으로 꽤 쓸만한 집이었다. 사실 노리코 씨는 이곳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시모다(下田)에 집이 있고, 이곳 나가이즈미 집은 주 3회 정도 별장처럼 이용한다고 했다.
산책길에 둘러본 마을은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입지가 좋았다. 교통편도 좋아 신동명(新東名, 동경-나고야) 고속도로에서 5분 거리라 도쿄까지는 차로 2시간여 정도면 갈 수 있다. 더군다나 전철로 15분 거리에 일본 최대의 온천지역으로 알려진 아타미(熱海)가 있고 신칸센이 아타미역에 서기 때문에 수도권 개념으로 봐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도 인구 소멸이 시작되고 있었다. 노리코 씨가 사는 나가이즈미에 빈집이 많은 것은 1세대가 살다가 떠난 동네에 자녀들이 들어와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리코 씨가 산 집은 지은 지 40년 이상이 된 집으로 벽지와 지붕 공사 등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침 산책길에서 만난 집들은 바로 들어가 살아도 손색이 없는 집들이었다.
관내에서 유명한 온천호텔이던 <모모자와온천>은 아직도 ‘시즈오카현의 유명한 온천’으로 인너넷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작은 글씨로 ‘폐관되었습니다’라고 쓰여있다.
“후지산 기슭, 아이타카산(愛鷹山)에 내린 비가 지하수가 되어 지열과 만나 깊이 1,500미터에서 온천이 되어 솟아난 비탕(秘湯) 모모자와온천(桃沢温泉), 당관의 온천은 모모자와온천 나가이즈미 1호 인증의 나가이즈미(長泉町) 지방에서는 귀중한 천연 온천입니다. 부드럽고 양질의 온천수가 몸 구석구석을 풀어주어 느긋하고 행복한 시간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라고 인터넷에는 아직도 폐관된 모모자와 온천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인구절벽이라는 말처럼, 일본도 출산율이 급격히 저하되다 보니 곳곳에 빈집이 늘어나고 마을이 폐허처럼 느껴지는 곳이 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고 유명한 온천지 아타미 근처에 자리 잡은 나가이즈미마을의 주택이 단돈 400만 엔이라니 놀라운 가격이다. 오늘 아침 마을을 산책하며 노리코 씨와 나는 ‘일본의 고령화와 인구감소’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시간을 보냈다.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실감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