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내 것이 아니다

  • 등록 2024.10.05 11: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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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거사의 중편 소설 <열 번 찍어도> 3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차를 타고 가면서 아가씨는 담배를 한 대 꺼내었다. 김 교수는 차에 달린 전기부싯돌을 달구어 불을 붙여 주었다. 잠시 뒤 아가씨가 말했다.

 

“오빠는 왜 자꾸 나를 만나려고 하시죠? 부담되네요.”

“저런! 너에게 부담을 주었다면 미안하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오빠는 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별것을 다 묻는군.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내가 이미 다른 데서 소주를 한잔했기 때문에 맨정신은 아니었고. 그렇지만 처음 본 순간 ‘얘는 보통 아가씨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도 하나 물어보자.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여태껏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니? 나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아?”

“오빠, 저는 손님의 신상에 관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요.”

“그래? 그러면 너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적어주니?”

“아니에요, 오빠. 다른 사람에게는 제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어요. 가게 번호를 적어주지요.”

“그런데 왜 나에게는 너의 전화번호를 주어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했어?”

“글쎄요. 죄라면 술이 죄지요, 오빠~”

 

마지막 말을 조금 느리게 하면서 아가씨는 김 교수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돌려 아가씨 눈을 바라보니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눈빛이다. 이 아가씨는 김 교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가? 김 교수는 이 아가씨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김 교수가 짐짓 위협적으로 말하였다.

“네가 이번에 편입을 안 하면 나는 너를 떠날지도 모른다. 더 이상 만날 값어치가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 것 같다.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

“할 수 없지요. 뭐, 오빠.”

 

김 교수는 보스 앞에 아가씨를 내려 주었다. 아가씨는 내리더니 전처럼 바로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김 교수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프라이드가 점점 멀어지자, 아가씨는 손을 흔들었다. 무슨 뜻인가? 잘 가라는 말인가? 이제 헤어지자는 말인가?

 

1월 23일. 편입생 모집 마감 하루 전날에 김 교수는 전화를 걸었다. 원서를 제출했느냐고 물으니 안 했단다. 자기는 편입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1월 25일. 마감일이 하루 지나 신문을 보니 방통대 편입생 추가모집 공고가 났다. 편입생을 한 학년에 2,000명씩이나 모집하더니 그만 미달이 되고 만 것이다. 공고를 자세히 읽어보니 전에 입학한 뒤 1학점이라도 딴 사람은 우선 편입생으로 받아 준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애가 타서 다시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내용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미스 최의 대답은 여전했다. “공부하는 것은 너무 힘들어서 다시 공부할 의사가 없다”라는 것이다.

 

며칠 뒤 대학입시 발표를 보니 아들은 수도권의 S대에 합격이 되었다. 아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눈치였고 아내는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 교수는 아들에게 ‘소꼬리가 되느니 닭 대가리가 되라’는 속담을 설명해 주면서 경기도 S대 합격을 격려해 주었다.

 

아내는 아들이 서울의 S대를 가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지 입시결과를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한동안 걸려 오는 전화조차 직접 받으려 하지 않았다. 요즘 세태는 입시생을 둔 집에 전화로 결과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왜들 그러는지 김 교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괜히 말을 꺼냈다가 “아빠로서 아들의 입시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엉뚱하게 불똥이 튈까 보아 김 교수는 아내 눈치를 보면서 입시 결과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 설혹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게 어찌 엄마로서 부끄러운 일인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아들의 문제이지 엄마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엄마의 자존심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다. 괜히 자격지심에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김 교수는 자기 아내를 비롯하여 대한민국 입시생 어머니들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즘 풍토에서는 아들이 명문 대학에 합격하면 엄마가 잘해서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착각하는데, 우스운 일이다. 입시에서 떨어지면 부모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아는데,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단지 입시과목에서 요구하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그 엄청난 분량의 암기를 잘못한 결과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입시문제를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때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이라는 사실을 암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조지훈이 청록파 시인이라는 사실을 암기해서 무슨 쓸 데가 있는가? 불교가 전해진 연도를 외우기보다는 절에 한 번이라도 가서 절간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청록파 시인 세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는 조지훈의 시를 한 번이라도 낭송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말이다.

 

거미는 곤충이며 발이 8개라는 것을 외우는 것보다는 등산 가서 넘어져 피가 날 때 어떤 풀을 뜯어서 살에 붙이면 지혈이 되는 지를 배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리라. 기호조차 그리기 어려운 미분방정식을 미술대학 지원생이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현행의 입시제도에서 어느 학생이 입시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입시생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선발기준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발전이나 환경보호보다는 교육발전, 사람보호라고 생각된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입시에 짓눌려 심성이 황폐해 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청소년이 병들어 가는 것이다. 청소년을 건강하게 살리는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김 교수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만병통치의 구체적인 대안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교육에서는 결코 개혁 방안이 나와서는 안 된다. 교육은 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서서히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특히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참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대의 예언자라고 칭송받는 중동 출신의 현인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자식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말이다. 그렇지만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계속)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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