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이불 아래로 서리서리 넣었다가 우리님 오신 날에 밤이거나 낮이거나 / 굽이굽이 펴드리라 / 언제나 그립고 그립던 님을 만나서 세세원정을 헐거나 헤~~”
무대에서는 아쟁 이태백 명인이 작곡한 ‘육자배기’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라도 민요 가운데 가장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육자배기와 흥타령을 다양한 장르로 선보인다. 대표적인 남도소리 소리꾼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김나영 명창이 걸쭉한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다.
어제 11월 2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는 <김나영의 남도소리 : 향연> 공연이 무대에 올려졌다. 김나영은 성창순 명창에게 판소리를 배우고 소리꾼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후 이태백 명인에게 남도잡가, 진도씻김굿 등을 배우며 소리의 영역을 확장하였고 음반 <꽃과 같이 고운님>을 발매하였다. 김나영은 2014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대통령상을 받았고, 2019년 진도민요경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명창이다.
현재 (사)성창순 판소리보존회 이사장과 목원대학교 국악과 교수를 하고 있으며, 활발한 활동과 함께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육자배기’와 ‘흥타령’으로 예열을 시작한 김나영은 본격적으로 심청가 가운데 눈대목 ‘범피중류’를 묵직하게 내뱉는다.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이 팔려 배를 타고 임당수로 가며 좌우의 산천경개를 읊는 부분이다. 느린 진양 장단 위에 얹어 부르는 그 사설이나 가락이 일품이어서 많은 사람이 즐겨 듣고 있다. 역시 김나영의 진가를 물씬 묻어나게 한다.
그러고는 아쟁 이태백, 대금 이용구, 가야금 서은영, 장구 김태영이 함께 ‘남도시나위’를 연주한다. 시나위는 연주자의 기량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민속악의 대표 음악이다. 기본적인 틀은 있지만 고정된 선율이 없고 유동적이며 즉흥적인 선율이 중이라는 시나위답게 아쟁의 이태백 명인 등 4인의 한판의 시나위는 청중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매력을 뿜어낸다.
이후 이날 공연의 대미는 아쟁 이태백, 대금 이용구, 가야금 서은영, 장구 김태영의 반주에 맞춰 김나영 명창과 신정혜ㆍ최잔디 조무가 함께 진도씻김굿 한판을 벌인다. 진도씻김굿은 전라남도 진도에서 전승되는 것으로 죽은 이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극락왕생 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인데 원한을 씻어준다고 하여 ‘씻김굿’이라고 이른다.
먼저 진도씻김굿 가운데 죽은 이와 그의 조상들과 먼저 죽은 친구들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대목 ‘초가망석’을 흐드러지게 부른 다음 ‘제석굿’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원래 제석굿은 가족들의 복락을 축원하는 내용의 절차여서 주목을 받는 굿거리로 산 사람의 복을 차근차근 빌어주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진도씻김굿에서는 장구 김태영 명인이 일반적인 것이 아닌 그만의 독특한 추임새를 구사해 눈길을 끈다. 종종 그만의 목으로 사설을 따라 한다거나 “어! 노적 좋지” 같은 추임새도 하여 평소에 보지 못하던 장구잽이의 매력을 볼 수 있었다.
아현동에서 온 정소라(37) 씨는 “오랜만에 걸쭉한 남도소리 한판을 맛보았다. 종종 판소리를 듣거나 남도민요를 들어봤지만 이렇게 남도소리 진수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느낌이 든 공연은 처음이다. 남도소리의 향연을 베풀어준 김나영 명창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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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의 <남도소리: 향연> 소책자에는 “맛있는 남도소리 한상차림!"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그야말로 청중들이 남도소리 한상차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노래 '남도잡가'와 남도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정수와 문학이 만나 만들어낸 '판소리' 또 남도소리의 근원, 인간의 삶을 위한 양식 '진도씻김굿'의 고갱이를 맛보았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