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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하고 행복한 나라 부탄을 가다

부탄 산속에서 만난 개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교적 세계관

[우리문화신문=일취스님(철학박사)]  구속이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떤 생명이든 억압당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깊은 불행이다. 누구나 자유롭고 걸림 없이 자기 뜻을 펼치며 살기를 바란다. 이는 단지 ‘로망(romance)’을 넘어, 숭고한 생명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보다 절실한 욕망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히려 같은 인간을 억압하고 핍박하며, 나아가 다른 생명들조차 가볍게 여기고 관리한다는 명목 아래 학대와 살상을 자행하고 있다.

 

나는 부탄 북부의 붐탕을 향해 험한 산중턱의 좁은 길을 따라 4시간 넘게 차량으로 이동했다. 어느 순간,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이르러 잠시 차를 멈추고 풍경을 감상하며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덩치 큰 누렁개 한 마리가 다가왔다. 인가 하나 보이지 않는 높은 산악지대, 외진 길에서 마주친 개였다. 처음엔 들개가 아닐까 싶어 움찔했지만, 그 눈빛은 사납기보다 오히려 순하고 애처로웠다. 부탄을 여행하면서 거리 곳곳에서 개들을 자주 보았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지만, 깊은 산속에서 마주한 이 개에게는 왠지 모를 연민이 들었다.

 

"배가 고파서 그러는구나..."나는 여행 중 준비해 온 말린 바나나 과자 봉지를 꺼내 개에게 건넸고, 개는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부탄에는 ‘들개’ 혹은 ‘유기견’이라는 개념이 뚜렷하지 않다. ‘애완견’이나 ‘반려견’이라는 개념도 서구적인 영향으로 최근에야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개를 가족처럼 소유하거나 돌보는 개념보다, 공동체 속에서 자유롭게 공존하는 존재로 여긴다. 도시와 마을의 거리에는 수많은 개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개들은 특정 가정에 소속되지는 않지만, 사람들로부터 먹이를 얻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간다. 중요한 건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생명과의 관계를 지켜내는 문화다.

 

반면, 요즘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을 집 안으로 들여 함께 생활하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에는 개가 집 안 마루에 올라오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고, 마당에서 키우는 가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개가 침대 위 이불 속까지 들어와 사람과 함께 잠을 자는 시대다. 개 전용 호텔, 병원, 미용실, 장례식장, 식품점까지 등장하며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단지 문화의 진화일까, 아니면 인간 내면의 어떤 결핍일까? 요즘 사람들은 외로움과 고독 속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메말라 간다. 친구, 친척, 이웃과의 교류도 줄었고, 사소한 관심마저 ‘사생활 침해’로 오해받는 시대다. 이처럼 정이 사라져 버린 시대에 사람들은 개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특히 독거노인이나 혼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려견은 감정적 지지자이자 유일한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개는 사람보다 낫다는 말까지 들을 정도다. 배신하지 않고, 충실하며,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인간이 언제부터 개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버렸는가? 사람 사이에서 잃어버린 정을 개에게서 찾고 있는 현실이 마냥 따뜻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부탄에서는 거리 개들도 절 안에 들어와 자주 머무른다. 수도자들은 자비와 생명 존중의 마음으로 길거리 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때로는 병들고 다친 개를 위해 푸와(P’owa, 의식적 환생 인도법) 의식을 행해주기도 한다.

 

동물이라고 하지만 불보살의 가피가 있는 공간에 자연스럽게 모이는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님이나 신자들은 개에게 진언(만트라)을 들려주면 그 공덕이 축적되어 다음 생에는 더 나은 몸을 얻는다고 믿고 있다. 또 동물이 죽기 전, 동물 귀에 만트라를 속삭여 주면, 고통 없이 환생, 혹은 정토왕생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마니 파드마 훔 (관세음보살 진언)

아미 데와 흐리 (아미타불 진언)

아라빠짜나 디 (마녹 뇌생 방지 진언)

 

이 진언은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한다. 모든 존재는 윤회 속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불가에서는 개가 이전 생에는 인간이었을 수 있고, 다음 생에는 부처가 될 수도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그래서 동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이거나 해치는 행위는 중대한 업(karma)을 짓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병든 개나 버려진 개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불보살에게 공양을 드리는 것과 같다고도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행위는 개뿐 아니라 모든 동물에게도 정성 어린 의식이 치러진다. 이는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교적 세계관의 실천이다.

 

결국, 인간의 본성에는 지배와 소유의 욕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역사를 보면 약소국을 침략하고, 약한 자를 구속하며, 그 위에서 부와 권력을 누려온 인간의 행태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끊이지 않으며, 희생자는 늘 힘없는 이들이다. 평화와 평등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절실히 되새겨야 할 것은 바로 ‘생명 존중’이다.

 

붓다는 선언했다.“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는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귀한 존재이며,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누구도 다른 존재를 억압하거나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깊은 가르침이기도 하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는 진리다.

 

“그대로 놓아두어라! 그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하라. 간섭하지 말고, 방해하지 말며, 구속하지 마라.”– 《수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