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주말 내내 장맛비가 내린다더니, 비는 온데간데 없고 오뉴월 햇볕이 쨍쨍 내리쬔다. 이 무더위를 씻어줄 만한 것으로 '폭포' 만한 것도 없으리라. 대관절 저 높은 곳 어디에 이리도 굵고 우렁찬 물줄기를 내려보낼 수 있는 웅덩이가 있는 것일까? 폭포 앞에 서면 어렸을때 보고 느꼈던 의문이 새삼 떠오른다.
시원(始原)을 알 수 없는 정방폭포의 이름은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 글에도 자주 등장한다. 아래글은 1930년 8월 1일 잡지 별건곤에 실린 내용이다.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남으로 남으로 바다를 헤염처서 나가면 혼자 똑 떠러저 나안즌 제주도! 황금빗 橘이 듸례듸례 열리고 오리떼 모양으로 물 속에서 둥둥 떠도라 다니며 문어 전복을 따는 해녀의 무리가 덕실덕실하고 홍홍거리며 도라다니는 말망아지가 만흔 줄을 이믜 드른지 오래지만 이런 셤 속에 무슨 폭포가 잇스랴고 해서는 셤 속에 무슨 산이 잇스랴고 하는 것이나 맛참가지의 말이다. 한라산 가튼 놉흔 산이 이 제주도에 잇다하면 한라산 속에 이런 폭포가 잇다는 것도 미더둠직한 일이요. 正총 山속에 이 폭포가 정말 잇서 제주10勝중에 하나를 치게된 것으로 보아 한 번 구경할 것임을 말하여 두고 제주를 찻는 이는 특별히 이것을 빼여노치 말 일이라고 신신 부탁하여둔다."
-별건곤 제31호, 1930년 8월 1일 '朝鮮各地 瀑布館'-
이 글 마지막에 있는 '제주를 찾는 이는 정방폭포를 반드시 보라'는 신신당부의 말이 흥미롭다. 별건곤 잡지의 시대만 해도 정방폭포는 아름다운 명승지의 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제주4.3민중항쟁의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정방폭포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사이에 있는 해안절벽은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지만, 4.3의 슬픈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4.3당시 서귀리는 산남지방의 중심지로, 면사무소와, 남제주군청 그리고 서귀포경찰서가 있었다. 때문에 서귀면사무소에 대대본부가 설치되었고 토벌대의 주요 거점지가 되었다. 서귀면과 중문면 일대의 주민뿐만 아니라 대정, 남원, 안덕, 표선면 주민들도 이송되었기 때문에, 당시 수용소로 사용되었던 전분공장과 단추공장은 수감자로 넘쳐났다. 특히 군부대 정보과에서 취조 받던 주민들 중 즉결처형 대상자들 대부분이 이곳 해안절벽으로 끌려와 희생당했는데, 그 수가 256명으로 산남지역에서 가장 많이 희생된 곳이다."
제주땅 곳곳에 서린 제주 4.3민중항쟁 희생자들의 처참한 희생이 이곳에서도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며 폭포를 나왔다. 역사의 내용을 알고나니 정방폭포의 물소리가 256명의 억울한 희생자의 처절한 절규같아 더욱 가슴이 아팠다.
*정방폭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정방폭포(正房瀑布)는 2008년 8월 8일 대한민국 명승 제43호 '제주서귀포 정방폭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