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한농선 명창이 세상을 뜬 이후, 어머니도 동시에 잃은 노은주는 소리를 그만두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어려서부터 몸에 밴 소리가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쉽게 될 일인가!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때로는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절대 소리를 끊을 수는 없었다. 몸에 배어있는 소리와 단절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이미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소리는 노은주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2년여 방황과 망설임 끝에 2004년 여름, 그는 성창순 명창을 찾아가 소리공부를 새롭게 시작했다.
노은주는 예나 지금이나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반듯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성창순 명창도 평소 노은주의 소리 공력이나 성실함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더욱더 관심을 두고 대했으며 소리공부에 있어서도 이론적 배경과 함께 실습과 시범 등, 정성을 다해 소리 지도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배 소리꾼 등과 함께‘국악한마당’을 비롯한 유명 공연무대에 출연시켜 주었고, 그녀의 소리실력을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다.
남원의 강도근 명창으로 시작된 소리 공부는 전인삼을 거쳐, 한농선에 이어졌고, 어머니처럼 따르고 닮고 싶어 했던 한농선 명창 떠난 이후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성창순 명창에게 이어져, 판소리 5대가 중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웠다.
소리 공부가 한창이던 어느 날, 성창순 명창은 노은주를 앞에 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는 내가 첫 스승은 아니지만, 자네가 어릴 때부터 열심히 소리 공부한 실력을 내가 잘 알고 있기에 인정해 주지 않을 수가 없네.”라면서 전수자(傳授者) 과정을 허락한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난 뒤에는 이수자로 당당하게 인정을 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수자라고 하는 말은 전수자의 과정을 충실히 공부한 제자들 가운데서, 특히 우수한 제자들에게 부여되는 공식적인 실력 인증서다. 그러므로 성창순 명창은 노은주의 실력과 인품을 너무도 확실하게 인정해 준 셈이다.
여기서 잠깐, 이수자(履修者)란 무슨 말이고, 전승체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1960년대 초기에, 국가에서는 무형문화재, 즉 형체가 없는 문화의 소산으로 역사상 또는 예술상 가치가 큰 것을 보호하고 육성할 목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문화재들을 발굴하고 정리하기 시작하였으며 종목마다 예능보유자를 두고, 그 후계자들을 정해서 적극적으로 보호 육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수자라고 하는 말은 해당 종목의 수련 과정을 마치고, 공식적으로 전문가 길에 들어선 실력자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는, 즉 전문가로 인정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지금은 이수자 인정을 해당 기관에서 선임한 심사위원단이 평가하고, 그 결과를 문화재위원회에서 마지막으로 결정하지만, 과거에는 해당 분야의 예능보유자가 가장 정확하게 실력을 검증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보유자 추천으로 이수자를 뽑기도 했다.
무형문화재 종목에 따라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초보자라 해도 누구나 전수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전수자 과정을 밟기 위한 자격시험이나 기준에 통과 되어야 전수자가 될 수 있는 종목도 있다. 또한 전수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 과정을 밟아가는 능력에 따라, 이수자가 되는 사람도 있고, 못 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며 훈련의 기간도 능력이나 결과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단기간에도 이수자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10년 이상을 수련해도 이수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해서 이 과정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수증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은 바로 전문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증표가 되는 것이다.
이 이수증을 받은 실력자들을 공식적으로 <이수자>라고 부르고 있다. 이수자의 다음 단계가 바로 <전수조교>, 또는 <전수교육조교>로 칭해 오던 <전승교육사>인 것이다. 평생을 갈고 닦아도 전승교육사의 위치에 오르는 길은 마치, 하늘의 별 따기에 견줄 정도로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전승교육사 과정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해당 분야의 으뜸 권위를 상징하는 예능보유자(藝能保有者), 세칭 <인간문화재> 반열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바늘구멍과 같은 제도가 근래에 와서는 다소 완화되어 이수자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있다. 예능보유자에 도전할 자격을 이수자들에게도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하튼 젊은 소리꾼, 노은주가 성창순 문하에 들어가 그 실력을 인정받고, 해당 종목의 이수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기본기가 탄탄하여 남을 지도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라 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