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 등록 2025.02.23 10: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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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들어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86]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할 생각으로 운전대를 놓았으나, 걸으면서 점차 걷기의 맛이 느껴졌다. 그러다가 걷는 것이 건강에도 좋다는 생각에 아예 하루에 12,000보 걸음 목표를 설정하였다. 이는 손목에 차는 갤럭시워치에 찍히는 걸음 수를 기준으로 한 것인데, 화장실 가는 등으로 소소하게 찍히는 걸음수를 2,000보 정도로 생각하여 12,000보로 설정한 것이다.

 

이렇게 걸음 목표를 세우고 나니까 단순히 출퇴근 걸음 수만으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어 점심 식사 뒤에는 사무실이 있는 코엑스를 한 바퀴 돌고 때로는 근처 봉은사도 산책하였다. 그리고 걷는 것에 점점 맛 들여지니까 약속장소가 사무실 반경 2.5km 이내일 때는 약속장소까지 걸어가고, 약속장소에서 집까지 2.5km 이내일 때는 끝나고 집에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또 약속장소가 그보다 먼 곳일 때는 전철은 한 번만 타고 약속장소에서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 걸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렇게 하니 목표 걸음 수 12,000보는 가뿐히 달성하게 되고, 약속이 있는 날은 15,000보도 넘어가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데 단순히 평지를 걷는 것만으로는 운동이 많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계단도 오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실천의 방법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면 내 사무실이 8층에 있으니까, 기본으로 최소한 하루에 두 번(출근할 때, 점심 식사 뒤)은 계단을 오르게 된다.

 

그런데 새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이 원칙을 지키기 어려워졌다. 새로 이사 온 집이 30층이라, 매번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집 엘리베이터는 하루에 적어도 1번은 타는 것으로 원칙을 바꾸었다. 이렇게 하니 지하철 계단 오르는 것도 있어서 하루 기본 50층은 오를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면서 또 하나 생긴 버릇이 있다. 사무실에서 서면을 검토할 때 걸으면서 검토하는 것이다. 어느 날 번개글(이메일)로 송달된 상대방 서면을 모니터에 띄어 놓고 유심히 보다가, 이왕 볼 것이면 걸음 수도 올리면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서면을 출력하여 계단으로 오르면서 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옥상인 26층까지 걸어 올라가며 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코엑스로 내려와서는 코엑스를 돌면서 보고, 계속하여 사무실로 걸어 올라가면서 서면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어떤 날은 하루에 두세 번 이렇게 걸으면서 서면을 보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다 보니 그런 날에는 저녁에 집에서 손목의 갤럭시워치를 보면 누적 층수가 100층을 넘어서게도 되었다. 내가 이렇게 걸으면서 서면을 본다고 하니까 그러다가 넘어진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걷다 보니 한쪽 눈은 서면을 보면서도 한쪽 눈은 발 앞을 보는 요령이 생겨, 처음 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이후로는 지금은 그럴 일이 없다.

 

그럼 걷는다는 것에 무슨 매력이 있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걷는 것일까? 우선 이렇게 걷기 시작하면서 차를 타고 다닐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 이를테면 거리를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이, 거리의 재미있는 간판이나 특색있는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또 열심히 일하는 노점상의 땀도 보인다. 그리고 길가의 가로수도 그저 한 묶음의 보통명사가 아니고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고유명사임이 자각되었다.

 

 

또한 다양한 모습의 구름이 계속 변화하면서 만들어내는 하늘의 모습이 마치 하느님이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하늘도 자주 올려다보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어느 날에는 불타오르는 듯한 노을에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나도 모르게 “야~아~~”하는 감탄사를 내뱉고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황홀한 표정으로 노을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더욱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면서부터는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물의 아름다움에 눈에 뜨이고,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눈에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도 찾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내가 계속 차만 타고 다녔으면 이런 생활 속의 아름다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냥 스치며 지나갔겠구나.”

 

그리고 어디 빨리 가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려놓고 걷는다면, 또 할 일이나 계획, 걱정거리 등 늘상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을 비워놓고 걷는다면, 처음에는 가정, 친구 등 일상의 잡다한 생각이 계속 구름처럼 피어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잠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던 삶의 근원이나 구원 등 종교적, 철학적 생각도 뒤이어 피어난다.

 

걷기를 좋아한 루소나 니체도 걸으면서 자신의 철학을 차근차근 빚어냈고, 틱낫한 스님도 걷기 명상을 얘기하지 않았는가? 산속을 걷는 것도 그렇다. 홀로 산속을 걷다 보면 무언가 산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 나 자신이 자연으로 녹아들면서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온다. 그래서 나는 여럿이 같이하는 산행도 좋지만, 홀로 산행도 좋아한다.

 

이렇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게다가 걸음으로써 건강도 좋아지지 않는가?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되다 보니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는 때에 예전에는 “차가 없이 저 긴 거리를 걸어야 하나?”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것이 “흐~음~ 걸음 수 올릴 수 있게 되었구나.” 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걷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걷는 맛에 취하니 더위에 땀이 줄줄 흐르는 것도, 추위가 뒷골을 쑤시고 들어오는 것도 괘념치 않는다. 비가 올 때도 예전에는 비에 옷 젖는 것이 성가시고 짜증스러웠지만, 지금은 옷이 젖으면 젖는 대로 걸으면서 보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모습도 즐거이 바라보며 걷게 된다. 걷는다는 것! 참 매력적이다. 당신도 이런 걷기의 매력에 한 번 빠져보면 어ᄄᅺᆯ까?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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