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는 등운산(騰雲山)이 있다. 구름으로 오른다는 뜻인데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허리에 늘 구름을 이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등운산에는 고운사(孤雲寺)라는 절이 있다. 절 주변은 일품으로 평가받는 멋진 송림이 있고 거기서는 송이버섯 또한 많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고운사는 넘북국시대(통일신라) 신문왕 때인 681년에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고 원래 이름은 고운사(高雲寺)였는데 나중에 신라말 고운 최치원(857~ 미상)이 스님들과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란 두 건물을 지은 후 절 이름도 최치원의 호인 고운(孤雲)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 절을 대표하는 건물인 가운루는 절 입구 계곡의 양쪽 기슭을 가로질러 세운 누각이다. 계곡 가장 낮은 곳 암반에 돌기둥을 새우고 그 위에 다시 나무기둥을 올린 다음에 마루를 놓아 하층을 이루고 상층은 공포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다. 이 누각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큰 규모임에도 계곡과 조화를 이루어 앞뒤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결구가 지극히 아름다워 멋진 운치를 자랑하였다. 우리나라 절에는 계곡을 가로질러 세운 누각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지난해 7월 보물로 승격된 이 가운루와 조선왕실의 기념건축물로 단청과 벽화가 아름다운 대형 건물 연수전이 이번 의성 산불로 모두 타버려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고운사에 소장 중이었던 보물 제246호 석조여래좌상 등 유형문화유산은 경북 각지로 옮겨졌지만, 전각만은 어쩔 수 없이 불길에 내주고 만 것이다.
이번 경상도 지역의 산불로 5개 절의 전각과 요사채 등 40여 동이 전소한 것으로 불교 조계종은 집계하고 있다. 엄청난 피해다. 산불이 영남지역 곳곳으로 확산하는 추세를 보이자 산불이 향하는 지역에 자리 잡은 절들은 성보를 지키기 위해 동산 문화유산을 서둘러 이운했다. 화재로 전각이 소실되는 피해를 본 절들도 이운이 가능한 불상, 탱화, 불서 등은 모두 인근 박물관 등으로 옮겨 산불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래되고 유서 깊은 문화재급 건물 전각들이 재가 된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꼭 20년 전 이맘때 강원도 양양 일대에서 이런 산불이 있었다. 양양군 일대를 휩쓴 산불로 모두 45만 평 규모의 야산이 불에 타버렸다. 그 와중에 낙산사는 원통보전을 포함해 대다수 전각을 불에 잃고 말았다. 봄철 동해안에 부는 바람의 기세는 수십 미터의 도로 폭도 넘길 정도로 강하다. 그 불에 낙산사는 크고 작은 전각 13채와 보물 제479호였던 동종을 잃었다.
낙산사는 유독 화마가 많이 지나갔다. 고운사보다 10년 앞선 671년에 창건된 이 절은 1231년 몽골 침략 때 흔적도 없이 불에 탔고 조선의 세조가 크게 중창하였지만, 임진왜란의 전화를 피해 가지 못했고 구한말에 와서 다시 중창되었지만, 6·25전쟁 때 이번엔 아군에 의해 태워졌다가 다시 세워졌다. 그것이 다시 2005년 식목일에 일어난 양양 산불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낙산사는 여느 절보다도 더 ‘불’을 경계하는 절이 되었다고 한다. 불이 난 원통보전은 2년 뒤인 2007년 11월에 다시 복구했다. 복구된 새 전각에는 불에 대비해 철저하게 소방시설을 갖추었다고 발표되었지만, 당시 우리 언론은 일본의 한 시골마을과 견주면서 충분치 않다고 지적했다. 바로 기후현(岐阜県) 시라카와촌(白川村)에 있는 시라카와마을(白川郷)의 소방훈련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면 이 마을에서는 불이 날 경우 높이 20미터로 물이 솟아올라 건물을 아예 위에서부터 바로 불을 끌 수 있는 설비를 마을 곳곳 50군대에 갖추고 실제로 늘 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통보전이 복원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1년이 막 지난 2008년 12월 10일 밤 국보 1호 숭레문에 방화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무리 밖에서 물을 퍼부어도 문 안쪽 목재의 불은 죽지 않아 결국엔 문이 완전히 붕괴하는 사건이 뒤따랐다. 이 화재를 통해 목조건물은 밖에서 물을 뿌리는 것으로는 화재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새로 짓는 건물들에서도 건물 자체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저 주위에 소화전을 설치하고 소화 호스를 비치하는 식에 머물고 있다.

낙산사에 화마가 덮치고 난 뒤에 언론들은 절 문화재의 방화설비에 대해 많은 보도를 했고 문제점도 지적했다. 낙산사는 평소 화재 방지대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자연재해가 아닌 작은 불씨에도 쉽게 소실 될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이고,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방염제는 6년에 한 번씩 도포돼야 하지만 낙산사의 경우 7년이 지났는데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소화기도 스님들이 직접 산 것으로서, 화마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등등 문제점이 거론되었다.
우리나라 도심에 많은 목조건물이 있지만 방재시설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소방차 진입조차 쉽지 않은 산중 절의 경우는 더 그렇다. 갑작스러운 산불과 강풍이 몰아치면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전에 전각이 불에 휩싸인다. 고운사의 전소에 놀라 하회마을과 병산 서원을 지키기 위해 소방차들이 대거 동원돼 물을 뿌리고 해서 불의 피해를 막았지만 그만큼 인근 지역에서의 소방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근본적으로 방재에 대한 개념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불이 나도 문화재가 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불을 끄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불을 효과적으로 끌 수 있는가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