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름다운 깨달음

  • 등록 2025.04.30 11: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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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미소로 가득 채우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0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장의 사진에 나의 시선이 꽂혔다. 붉은색 천 조각을 기어서 만든 장삼 차림의 한 스님이 활짝 웃는 모습이다. 입가의 미소가 입술 끝을 한껏 끌어 올렸고 두 눈초리는 초승달처럼 휘어서 반대로 아래로 있다. 누가 봐도 웃는 얼굴이요, 온몸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주부터 어제까지 서울에서 열린 한 사진전에서 만난 정말 티 없이 맑고 순수한 멋진 웃음이다. 사진 설명은 '가섭의 미소'라고 했다. 전라남도 고흥 능가사라는 절의 응진전에 있는 16나한 가운데 한 명이다. 가섭은 누구인가? 바로 부처님의 '염화시중(拈華示衆) 의 미소'의 주인공이 아닌가?

 

2,600여 년 전,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다가, 문득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연꽃 한 송이를 들어서 설법을 듣고 있던 대중에게 들어 보였다. 이는 연꽃을 보여줌으로써 말을 넘어서는 깨달음의 의미를 대신 전하고자 한 것인데, 그 자리에는 수많은 대중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었지만, 오직 가섭 존자만이 연꽃을 들어 올린 부처님의 뜻을 이해하고 빙긋이 웃어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부처님도 빙긋이 웃음을 보이며 가섭존자를 자신의 앞으로 오게 하여 자신이 앉아 있던 방석을 나누어 주고 가섭의 깨달음을 인가해 주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능가사에 주석하던 색난이라는 스님이 만들어 절에 봉안한 부처님과 16나한상은 그 표현수법이 뛰어나 보물로 일괄 지정돼 있다. 그 가운데 가섭존자는 부처님과 보살의 가장 가까운 왼편에 자리 잡고 있다. 부처님 깨달음의 이심전심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조각인데, 부처님 양옆 16 나한의 복장과 얼굴상도 다 특색이 있다. 색난 스님은 가섭 존자에게서 최고의 웃음을 빚어내었고, 그 스님의 솜씨를 불교 전문사진작가로 유명한 안장헌 씨가 절묘한 빛의 투영으로 포착해 냄으로써 시대를 넘는 깨달음의 미소가 이번에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던 싯다르타 태자는 깊은 명상을 통해 불생불멸하는 진리를 깨쳤다. 이 깨달음으로 인간이 생로병사의 상대 세계에서 깨어나 영원한 행복의 절대 세계를 갈 수 있음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불교의 성립이고 출발이다.

 

과연 그 깨달음은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기 위해 경을 읽고 절애도 간다. 참선을 하고 동안거도 한다. 나도 해마다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 날에 즈음하여 그러한 질문을 되뇐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내 나름대로 답은 이렇다.

 

​사람은 생명이다. 생명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수 있고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고 영원을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눈앞에서 돈과 재산과 권력과 건강과 쾌락을 최대한 가지려 하고 이런 생각 때문에 욕심을 내고 시기심을 내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위력을 행사한다. 그 연장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살육과 희생도 일어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나의 삶이나 다른 사람의 삶이 다 같은 값어치를 지니고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기에 자기 삶에 대한 욕심에 취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다 같이 잘 살게 하는가가 목표가 된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삶의 매 순간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 없다. 이 삶이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바꾸어 생각하게 되면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매 순간이 즐겁고 기쁘다. 그 깨달음이 곧 미소로 나타난다.

 

그런 생각으로 필자는 방송국 기자였던 1985년, 딱 40년 전에 우리들의 웃음에 대한 다큐멘터리 <한국탐구 잃어비린 웃음을 찾아서>를 제작해 방송하고 웃음에 관한 생각을 많이 나누었다. 우리들 한국인들이 원래 밝은 성격이어서 삶을 긍정하고 남도 도와주며 즐겁게 사는 민족인데 어느 틈엔가 역사 속에서 서로 힘들게 빼앗고 빼앗기는 삶을 사느라 웃음을 잃어버렸으니 그 웃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많은 웃음을 찾아서 전국을 다녔고 그렇게 우리들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문화신문에서 한국불교사진협회가 30회 사진전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인사동 한국미술관 전시장을 찾은 것은 바로 이런 아름다운 미소들을 직접 보고 싶어서였다. 과연 "미소, 마음의 문을 열다"라는 전시회의 부제처럼 우리나라 곳곳에 불심으로 새겨진 다양한 부처님과 보살상. 수행하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행복한 얼굴이 모아져 있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마음을 이심전심 전해 받는 것 같았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해 받는 순간 우리들은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을 알게 되어 저절로 얼굴에 웃음이 나온다. 그것은 곧 우리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들'이라는 공동운명체라는 자각, 그러기에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자각인 것이다. ​

 

그것은 어느 특정 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어느 종교건 고등종교는 그렇게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준다. 사랑을 행하는 것이 으뜸 값어치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선종하신 교황이 그렇고 신의 사랑을 믿고 행하는 모든 종교인도 그렇다. 사랑, 그것을 행할 때 우리들의 얼굴은 아름다운 미소로 채워진다. 인도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어루만지며 일생을 보낸 태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증오로 살기엔 기나긴 권태요, 사랑으로 살기엔 짧은 환희입니다."

 

​사랑으로 살면 이 세상이 짧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사랑으로 살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들은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테레사 수녀의 말이다;

 

​"불행은 굶주림, 주거 박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야말로 불행 가운데 가장 큰 불행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엄마가, 아빠가 쉽게 이혼을 선택함으로써 자식들에게 고통을 준다. 경제적인 이유라며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을 동반하는 자살이 이어진다. 그런 것을 보며 사랑의 가장 큰 형태인 혼인과 출산을 포기한다. 우리 한국은 지금 마음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물질을 갖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고 주저 않는다. 우리가 삶의 본질을 깨닫지 못해서인가? 입으로 말하는 사랑을 실제로 나누고 행하지 않아서일까? 그래서 진정한 웃음이 없어지고 있는 것인가?

 

 

 

부처님이 들어 보인 연꽃을 보고 그 뜻을 알고 빙긋이 웃어 보임으로서 부처님과 가섭은 서로 뜻을 이해하였고 마음이 통하여 그것이 미소로 나타났다. 불교의 연꽃 한 송이는 바로 이처럼 삶의 근본 이치를 대변하고 있을 터다. 미소는 세상은 나만이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것, 같이 짐을 나누고 고통을 덜어주며 살아가면 거기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교과서다.

 

다음 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예수가 부활한 부활절도 얼마 전에 지났다. 아득한 것 같은 성탄절도 곧 온다. 각 종교 모두 삶이 어둡고 힘들다는 생각에 빠지지 말고 서로서로 사랑의 삶을 살라고 말해준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행하여 우리 주위를 미소로 가득 채우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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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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