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장부한>이란 단가에는 매희(妹姬)를 비롯하여, 달기(妲己), 하희(夏姬), 서시(西施), 식(息)부인, 채문희, 오강낙루(烏江落淚)의 우미인(虞美人) 등, 일등 미색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는 외양(外樣)은 특출하나 마음씨가 곱지 못한 요화(妖花)로 매희, 달기, 포사(褒姒), 양귀비(楊貴妃)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다시 정리해 보면, 매희(妹姬)는 그녀를 위해 매일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아서,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고, 달기(妲己)는 임금의 총애를 등에 업고, 황후와 마음에 들지 않는 충신들에게 형벌을 가하면서 웃고 즐겼다는 악녀였다.
포사(襃姒)는 미모가 뛰어나 후궁이 되었으나 웃지 않는 미인이었으나. 궁녀의 비단옷이 찢기는 장면을 보면서 웃었다는 여인이다. 그래서 임금은 그녀를 위해 날마다 비단을 찢기 시작하였고, 또한 그것이 싫증이나자 진쟁의 신호탄인 봉화를 잘못 올렸을 때도 그녀가 크게 웃었다고 하는데, 이탓에 정작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아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가 포사와 관련하여 전해온다. 양귀비를 만난 당 현종(玄宗)은 정치를 돌보지 않아, 안록산의 난으로 외역에서 죽었다고 전한다.
그밖에 재색이 뛰어나, 오(吳) 임금을 유혹하는 주인공이었던, 월서시, 식국(息國)을 멸한 초(楚) 나라 임금이 그를 부인으로 삼자, 생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하는 식(息)부인과 <호가(胡笳) 18박>을 지은 음률(音律)에 능한 한(漢)나라 여인, 채문희(蔡文姬), 항우(項羽)의 애인으로 항우가 전쟁 통에 포위당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자살해 버렸다는 우(虞)미인의 이야기도 소개해 보았다.
단가, <장부한>을 감상하게 듣게 되면 이러한 여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재미를 더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잠시 소개해 보았다.

이번 주에는 유명한 단가, <소상팔경(瀟湘八景)>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소상팔경’이라 함은 중국의 호남성 동정 호수 남쪽의 소수와 상강이 모이는 곳에 보이는 8곳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관동8경이라든가, 단양8경 등, 지역의 아름다운 광경을 자랑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 동정호에도 8경이 유명하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소상야우(瀟湘夜雨). 2. 동정추월(洞底秋月), 3.원포귀범(遠浦歸帆),
4.평사낙안(平沙落雁), 5. 어촌석조(漁村夕照), 6.강천모설(江天暮雪),
7.산시청람(山市晴嵐), 8연사만종(煙寺晩鍾) 또는 한사모종(寒寺暮鍾) 등이다.
이 <소상팔경>은 우리의 옛 시가에도 자주 등장함은 물론이고, 판소리를 비롯한 여러 장르에서도 다양한 모습으로 확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이 대목은 판소리 <심청가-沈淸歌)> 가운데, 심청이가 인당수의 제수가 되어 깊은 바다로 향하는 도중, 등장하는 유명한 대목이다. 가야금병창으로도 부르고, 사설 내용이 아름다워, 단가로도 불러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래에는 무대 위에서 이 노래를 만나기가 쉽지 않아 점점 잊히는 노래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단가로 부르는 <소상팔경>은 헌종-철종-고종 때, 활동했다는 정춘풍(鄭春風)에 의한 더늠이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에 남아 있어 그가 만들고 불렀다는 점을 짐작하게 만든다. 소리꾼, 정춘풍(1834~1901?)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충청도 양반 가문 출신의 비가비(전문적인 광대가 아니면서 판소리에 능하여 광대처럼 행세하던 사람) 출신으로 남쪽 지방의 신재효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던 판소리 전문 가객이었다. 다만 신재효는 이론 중심이고, 정춘풍은 충청도에서 태어난 양반광대로 한학(漢學)에 조예가 상당했으며 판소리, 곧 창극조(唱劇調)에 대한 이론과 실기에 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와 동시대 소리꾼으로는 박만순, 김세종, 이날치 등이 유명하다.
정춘풍이 지은 단가, 소상팔경은 그의 후배 제자들인 박기홍, 송만갑 등이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현재는 부르는 이가 거의 없어서 이 소리를 무대 위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로 단가, <소상팔경>은 소상강의 밤비 내리는 모습을 묘사한 <소상야우-瀟湘夜雨)>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내고 있다.
“1. 산악이 잠형(潛形-산악이 구름과 안개 속에 싸여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는 표현)하고 음풍(陰風-흐린 날씨에 음산하게 부는 바람)이 노호(怒號-
세차게 소리를 내는 형태)하니 수면에 듣는 소리, 천병만마(千兵萬馬-수 없
이 많은 군사와 말), 서로 맞아 철기도창(鐵騎刀槍-마차, 칼, 창으로 무장한
용맹한 기병)이었는 듯, 처마 끝에 급한 형세, 백척 폭포 쏘아 있고, 대 수풀
흩뿌릴 제, 황영(皇英-요 임금의 딸로 순 임금의 아내가 된 아황과 여영을
말함)의 깊은 한(恨)을 잎잎이 호소하니, 소상야우(瀟湘夜雨-소상에 내리는
밤 비)라 하는데요.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