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만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위는 나희덕 시인의 <소만>이라는 시 일부인데 오늘은 24절기 가운데 여덟째로 ‘소만(小滿)’입니다. 소만이라고 한 것은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차기[滿] 때문이지요.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습니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해 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 것도 별미입니다.
입하와 소만 무렵에 행했던 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습니다. 봉숭아(봉선화)가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입니다. 이 풍속은 붉은색[赤]이 악귀를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동지팥죽, 산수유열매, 혼인하는 신부가 찍는 연지곤지도 같은 풍속이지요.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선화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이 무렵엔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보릿고개’ 때였으며, ‘죽추’ 현상이 나타나는 때기도 합니다. “죽추(竹秋)” 곧 ‘대나무가을’이란 대나무가 새롭게 생기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느라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소만 때는 겉으로 보기엔 온 세상이 가득 차고 풍족한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굶주림의 보릿고개와 대나무 빛깔이 죽어가는 죽추의 계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