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등불을 켜고

  • 등록 2025.11.19 11:4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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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갈무리하여 내년 봄에 거름으로 삼을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32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여름 지독히도 비가 많이 내려 단풍이 물들 10월까지 햇살을 본 날이 손꼽을 정도고, 그러다 보니 사과 등 과일이 빨갛게 색이 나지 않아 과수농가들이 한숨을 많이 쉬었다. 과연 올가을처럼 가을같지 않은 가을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달력이 이미 11윌도 하순이니 그야말로 예년 기준으로 보면 가을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미 가을이 다 갔다고 해야 할 터다.

 

 

문득 가을이란 계절의 이름은 무슨 뜻이고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진다. 더듬어 보니 사람들은

 

가을을 한자 ‘추(秋)’ 자로 많이 설명한다.

 

곧 ‘벼. 화’와 ‘귀뚜라미’의 합성어라고 말이다 ‘秋’ 자에 붙어있는 ‘火’ 자는 원래는 귀뚜라미 모습인데 획이 복잡해 火자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 우리말 '가을'이 있음에랴.

우리 말 어원이 있을 터인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를 알려면 또다른 계절 ‘봄’과 ‘여름’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 ‘봄’은 동사 ‘보다’에서 왔다고 한다.

봄이 오면 모든 생물체는 겨울의 긴 휴지기를 끝내고 새롭게 태어난다. 식물은 싹을 돋우고, 동물들은 겨울이 끝났다고 기지개를 켠다. 따라서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싹틈을 ‘보다’는 뜻이 나왔다는 것이다

 

여름은 동사 ‘열다’에서 왔단다. 여름이 되면 각종 열매가 열리기 시작한다. 따라서 ‘열다’는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열린다’는 뜻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우리말 ‘가을’도 이의 연장선에서 왔을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곡식이나 과일을 수확하려면 식물 몸체에서 열매를 끊어내야 한다. 바로 가을은 ‘ㅇㅇ을 끊다’의 고어인 ‘갓다’에서 왔다고 한다. 그것이 명사형의 ‘갓을’이 ‘가슬’로 변했고, ‘가슬’에 시옷 탈락현상이 생기면서 ‘가을’로 변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남부지방에서는 ‘추수하다’의 방언으로 ‘가실하다’는 말을 쓰고 있고 국이사전을 보면 ‘가을하다’라는 동시가 있는데 그것을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어쨌거나 가을은 가을이다. 들판에서 거두어들이는 계절로서의 가을이다.

돌아보면 아직 미처 여름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나무들도 있지만 계절은 그런 가을을 잠깐 보여주고 곧 겨울로 들머갈 채비다. 그러니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들판을 보고 밤하늘을 보며 가을을 느꺼야 하는 때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옴죽이네

벼 이삭 수수 이삭 으슬으슴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 <저무는 가을>, 이병기​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 <별 헤는 밤>, 윤동주

 

 

그런데 언어학자도 아닌 필자는 가을을 줄여서 쓰는 '갈'이란 말에서 갈무리를 한다는 뜻의 갈이 들어있다고 생각된다. 곧 가을은 수확만이 아니라 그 수확을 갈무리하는 때라는 것이다. 천자문에 보면 4자성구 다섯 번째에​

 

한래서왕 寒來暑往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며,

추수동장 秋收冬藏 가을에 거두어 겨울에 갈무리한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도 갈무리한다는 뜻의, 가을의 의미가 겨울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그런데 정작 이 가을에 무엇을 갈무리한다는 말인가? 무언가를 갈무리할 만한 것을 만들어놓았어야 갈무리할 것이 아닌가? 올해 글도 재법 쓰고 책도 한 권 펴냈지만, 그것으로 올 한 해 뭔가 했노라고 자부심을 품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그러니 뭘 갈무리한다는 것인가?

 

그런데 사실 고래희(古來稀, 70살)의 경지로 들어서서 무언가를 굳이 이루려 한다는 것 자체도 조금은 과욕 아닌가? 지금 내가 무엇을 더 성취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가? 돈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건강인가? 물론 그쪽으로 원하던 만큼 다 얻지 못했으니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노력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역시 이기적인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굳이, 노욕이라고까지는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문제는 이제 시대가 바뀌어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얻은 지혜를 우리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전해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고, 그들을 무릎 앞에 앉혀놓고 이래야 이래라저래라 하려 해도 이미 인터넷이니 인공지능(AI)이니 이런 것들이 우리가 알고 배운 것의 몇 수천 배나 알고 있으니, 애들도 거기에 물어보면 되지. 나이 든 할아버지에게 물어볼 생각도 이유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불안한 것은 아무리 시대가 그렇고 애들이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실행할 일들이 눈 앞에 산적해 있지만 지금같이 깊은 지식이 아니라 단편적인 단답만을 찾다 보면 정작 세상의 문제에 맞닥쳤을 때 그것을 헤쳐 나갈 방법까지는 인공지능이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어떻든 우리 같은 연배의 사람들이 그동안 놀고 즐기느라 다 보낸 시간이 아쉬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길어 보이던 2025년 한 해도 어느새 다 보내고 겨울 한 달 남짓 남았음에랴

 

돌아보면 지난여름 비가 많이 오기도 했지만, 무더위도 상당해서 다들 땀과 씨름을 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가을은 날씨도 서늘하고 기온도 적합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에 가장 졿은 때라고 예로부터 알려져 왔는데, 요즘에는 책을 보라는 말 보다는 멋진 단풍을 즐기는 말이 더 많아진 세상이 되었다. 손말틀(휴대폰)을 켜면 온통 어디 어디 놀러 가기 좋은 명소만을 계속 소개한다.

 

그래서 자손들이 우리 말을 들을까 걱정하면서도 그래도 혹 이 글을 읽을 자식들 손주들이 있다면 이들에게 가을은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어 교양과 지식과 삶의 양식을 갈무리하는 때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싶다. 일찍이 당나라 때의 문인이자 학자인 한유(韓愈 768~824)가 한 말이 있지 않은가?​

 

금이나 구슬이 비록 귀중한 보배지만 쓰고 나면 모아 두기는 어려운 일이고 학문은 몸 안에 갈무려 두는 것이니 몸이 있다면 언제나 넉넉한 법이로다. 도랑물은 근원이 없으니, 아침에는 가득해도 저녁에는 다 없어진다. 사람이 고금을 통하지 않으면 소나 말에 옷을 입혀 놓은 꼴이다. 때는 가을이라 장맛비도 걷히고 새로 시원한 바람이 교외에서 불어온다. 등불을 가깝게 할 만 하니 책을 펼쳐 읽을 만하구.

                                                      ... 한유, 성남으로 공부하러 간 아들에게( 符讀書城南)

 

 

나도 늦었지만, 글자 한 자라도 더 읽고 생각을 다듬어 볼 일이다. 앞으로도 적다면 적은, 그렇나 많다면 많은 시간이 우리 같은 연배에게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해서 잘 갈무리하여 내년 봄에 거름으로 삼을 작심을 다시 한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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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 인문탐험가

전 KBS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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