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헌시] 배화(培花), 불멸의 함성으로 피어나다
- 3.1절 107돌에 부쳐 -
얼어붙은 교정에 노도(怒濤)의 함성 휘몰아칠 제
열여섯 서슬 퍼런 단심(丹心)으로 침략의 밤을 베어
박경자, 가냘픈 어깨 위로 민족의 운명을 짊어진 그 함성이
배화의 담장 넘어 민족의 심장에 닿았노라.
철창의 냉기마저 녹여낸 김의순의 서슬 퍼런 눈빛은
제국의 심장을 꿰뚫는 일격의 화살이 되었고
서대문 형무소 좁은 창살에 갇히지 않은 그 기개는
천만 민중의 횃불이 되어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타오르리라.
문상옥이 토해낸 옥중의 노래는 비장한 결전가(決戰歌)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초 속에서도 끝내 꺾이지 않은 그 신념은
식민의 사슬을 부수고 일어선 민족의 거대한 해일이 되었으니
그 고결한 의지가 역사의 맥동이 되어 오늘을 깨우노라.
최난씨, 님의 이름 석 자에 맺힌 통한의 세월은
압제의 겨울을 부수고 기어이 승리의 봄을 열었나니
아아, 배화의 이름이여! 그대들의 웅장한 투혼 위에
자유로운 조국의 해가 영원히 지지 않는 영광으로 빛나리라.
박경자(본적 강원 김화),김의순(경기 경성), 문상옥(본적 경북 김천). 최난씨(본적 경기 가평)는 4명 모두 1903년 생으로 1920년 배화여학교 재학시절의 나이는 17살이다. 배화여학교는 1919년 3월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1돌이 되는 1920년에 3월 1일에 일어났다. 그렇다고 1919년 3월 1일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거국적인 거사날인 3월 1일을 이틀 앞둔 2월 27일 밤, 기숙사생들이 잠든 사이 배화학당의 학생 대표인 김정애, 김해라, 최은심 등은 식당에 모여 거사날에 전교생을 동원할 방법을 모의했다. 이에 앞서 김정애는 당시 여학생의 연락본부인 이화학당 지하실에서 등사한 독립선언문을 두 번에 나누어 가져와 배화학당에 몰래 숨겨두었다. 독립선언문의 일부는 배화학당에서 쓸 것이고 일부는 거사날 시내 시위에서 쓰려고 준비 해놓은 것이었다.
이들은 2월 27일과 28일 밤, 기숙사 뒤편 철망을 넘어 시내 상가에 선언문을 미리 배포해 놓고 3월 1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거사날인 3월 1일에는 정작 만세운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당시 스미스 교장선생은 만세운동으로 학생들이 잡혀갈 것을 우려해 학생들이 모이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 이날 오후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쳐 만세시위 사전 주모학생들을 찾기 시작하는 바람에 배화여학교는 1919년 3.1만세운동에 참여하지 못했다. 상황은 여의치 않아 곧바로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는 통에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야했다.
이후 수업이 재개된 학교에서 남궁 억, 김응집, 차미리사와 같은 민족의식이 투철한 교사들은 상해임시정부의 소식 등을 전하며 “썩은 줄과 같은 일본 정책을 끊고 일어서라.”는 격문을 지어 배화학당의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키워주는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1920년 3월 1일 배화학당의 학생들이 ‘3.1만세운동 1돌에 맞춰 만세운동’의 불을 지필 수 있게 된 것이다.
1920년 3월 1일 새벽, 배화학당의 여학생 40명은 학교 뒷산인 필운대로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새벽을 깨우는 이들의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우렁찼다. 그러나 이들의 시위 소식을 들은 종로경찰서 소속 헌병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어린 여학생들을 줄줄이 잡아갔다. 이날의 주동자는 고등과 김경화와 보통과 이수희 학생이다. 이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학생들은 모두 24명으로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이수희, 김경화 :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
손영희, 한수자, 이신천, 안희경, 안옥자, 윤경옥, 박하경, 문상옥, 김성재, 김의순, 이용녀, 소은숙, 박신삼 지은원, 소은명, 최난씨, 박양순, 박경자, 성혜자, 왕종순, 이남규, 김마리아 :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그러나 이 가운데 헌시에 나오는 4명 곧 박경자, 김의순, 문상옥, 최난씨 지사는 2026년 3월 1일 현재 아직 미서훈자로 남아 있다. 국가보훈부는 서둘러 이들의 독립유공에 포상해야할 것이다.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하지 않았다라면, 꽃같은 나이의 10대 학생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지방에서 올라와 학업에 정진했을 터인데 죄수복을 입고 차디찬 감옥살이를 해야했으니, 모든 것의 원죄는 일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이었음을 어찌 잊으랴. 107돌 3.1절 아침을 맞고보니 더욱 가슴이 애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