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암 강세황의 예술혼에 물들까?

  • 등록 2013.06.22 15: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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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 탄생 300돌 기념 특별전 연다

 


 

▲ 표암 강세황 특별전 포스터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올해 탄생 300돌이 되는 강세황은 보통 물러나 쉴 나이인 61살 노인과거에 장원급제한 뒤 능참봉(왕릉을 지키는 벼슬)으로 시작하여 6년 만에 정2품 한성부판윤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 강세황은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 푸른솔은 늙지 않고 학과 사슴이 일제히 우는구나.”라는 글을 쓴 다음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푸른솔처럼 자신의 예술이 영원히 사람들에게 기억되길 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의 염원대로 3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작품을 보며 찬사를 하게 될 특별전이 열린다. 오는 625일부터 825일까지 두 달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표암의 작품 100여 점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강세황은 시()와 글씨(), 그림()에 모두 능통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문예 전반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안목을 갖춘 비평가였다. 이번 전시는 ‘18세기 예원의 총수로 불리는 그의 생애에 대한 밀착 취재가 될 터이다.  

전시 작품으로는 강세황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대대로 가전된 유물이 있으며, 산수, 인물, 화훼, 사군자, 서예 등에서 그의 대표적인 작품을 망라한다. 그밖에도 그가 제찬을 남긴 다른 화가들의 작품과 예술적 동반자였던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강세황을 통해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며 화려하게 꽃피었던 18세기 문예의 한 단면을 흥미롭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60년을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했어도 스스로 대단한 학식과 포부가 있다고 생각하며 절치부심 자신을 닦았던 강세황. 올해는 봄추위 심하여(今歲春寒甚) / 복사꽃 늦도록 피지 않았네(桃花晩未開) / 정원의 나무들 적막하지만(從敎庭樹寂) / 꽃이야 붓으로 그려 피우리라(花向筆頭栽)”라는 시를 지어 꽃이 피지 않아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붓으로 꽃을 그린다는 마음가짐으로 꿋꿋하게 살아간 강세황의 <도화도(桃花圖)>는 그의 일생을 잘 말해주는 시이다.  


   

▲ 강새환의 자화상


저 사람은 누구인고? 수염과 눈썹이 새하얀데 머리에는 사모(벼슬아치들이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를 쓰고 몸에는 평복을 입었으니 마음은 산림에 가 있으되 이름은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있구나. 가슴 속에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학문이 있고, 또 소매 속의 손을 꺼내어 붓을 잡고 휘두르면 중국의 오악을 뒤흔들만한 실력이 있건마는 사람들이 어찌 알리오. 나 혼자 재미있어 그려봤다!” 


강세황(姜世晃)은 자화상(보물 590-1)을 그리고는 그렇게 스스로 화제(畵題)를 썼다. 그 자화상을 비롯하여 표암 강세황을 대표하는 작품을 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은 6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주제는 문인화가의 표상으로, 70살에 강세황이 스스로 그린 자화상, 강세황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기념하여 정조의 명으로 이명기(李命基, 1757~?)가 그린 초상, 궁중화원 한종유(韓宗裕, 1737~?)가 그려준 초상 등 강세황 초상을 한 자리에 모아 살펴본다.  


2부에서는 가문과 시대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일생을 담고 있는 각종 자료들을 소개한다. 현재 진주 강씨 문중에 전하는 강백년(姜柏年, 1603~1681), 강현(姜鋧, 1650~1733), 강세황 관련 자료들, 특히 관직 임명 교지(敎旨), 각종 필묵들, 유고(遺稿) 등을 통해 일생을 재구성해 본다. 또한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강세황까지 삼대가 연속으로 기로소에 들어가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라 불린 가문의 위상을 김정희가 쓴 것으로 알려진 글씨를 통해 살펴본다.  


3부에서는 문인의 이상과 꿈이라는 주제로, 안산에서 교유했던 여러 문사들, 화가들과의 만남을 살펴보았다. 안산에서의 활발한 문예 생활을 거쳐 강세황이 평생 문인화가로서 서화수련에 힘썼던 삶을 <지상편도池上篇圖>(개인 소장), <현정승집도玄亭勝集圖>(개인 소장) 등을 통해 살펴볼 것이다 


   

▲ 강세황,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 한 쌍의 오동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선비를 그린 그림


   

▲ 강세황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에서 <태종대太宗臺>


4부에서는 여행과 사생이라는 주제로, 실경을 그린 강세황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송도(지금의 개성), 전라북도 부안, 금강산 일대 그림, 건륭제 천수연(千叟宴)에 가는 길에 만난 중국 풍경을 그림 등을 선보인다. 또 강세황이 송도를 방문하고 그린 <송도기행첩><지락와도知樂窩圖>, <우금암도禹金巖圖>를 통한 인연을 확인해 본다. 강세황은 진경산수는 그곳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속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그림이라 생각했고, 그런 면에서 시보다는 기행문이, 기행문보다는 그림이 낫다고 믿었다. 


5부에서는 다양한 화목, 청신한 감각이라는 주제로, 소재와 채색 구사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추구했던 강세황의 면모를 조명한다. 봉숭아, 해당화 등 참신한 소재의 선택, 산뜻한 노란 색, 푸른 색 등의 감각적인 구사를 주목하였다. 강세황의 문인 필치와 감각적인 채색이 어우러져 독특한 미감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매난국죽을 한 벌로 그려 사군자의 의미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난죽도권蘭竹圖卷>(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시원시원한 구성과 완숙한 필력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강세황 사군자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6부에서는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라는 주제로, 강세황의 비평이 담겨있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겸재 정선, 관아재 조영석, 현재 심사정 등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많은 화가들의 그림에 강세황은 친필로 화평을 남겼다. 그는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 비평을 함으로써 자신만의 문예적 소양을 선보였다 


   

▲ 강세황, <무>,총 2권에 26폭의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수록된>《표암첩豹菴帖》에서


   

▲ 강세황, <난죽도권蘭竹圖卷> 78살 되던 1790년 봄에 그린 그림으로 모두 펼치면 3미터에 가까운 대폭의 두루마리이다


이번 전시는 18세기 대표적인 문인화가 강세황의 대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강세황이 역동적인 삶 속에서 평생 이어간 서화세계를 통해, 정조가 삼절(三絶)의 예술이라 칭송했던 그 예술의 정수를 느껴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300년 전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표암 강세황. 이제 우리는 그의 위대한 예술세계를 맛보러 가볼까?



푸른솔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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