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권효숙 기자]
재 너머 성권롱(勸農) 집의 술 닉닷 말 어제 듯고
누운 쇼 발로 박차 언치 노하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座首) 왔다 하여라
조선시대 낭만적인 대문학가 송강 정철은 참으로 술을 사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동별곡>,<사미인곡> 등의 작품을 남긴 가사문학의 대가로 윤선도와 함께 한국 고전문학을 대표하지요. 그러나 술을 좋아한 탓에 실수도 많아 유배를 떠날 때 선조임금이 은술잔 하나를 하사하며 ‘이 술잔으로 하루 석잔만 마시면 술로 인한 실수로 남의 미움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 송강 정철 |
▲ 송강 정철의 대표적인 가사 <관동별곡> |
위 정철의 시조에서 ‘재 너머 성권롱’은 파주 우계에서 살고 있는 성혼을 말하는데 어찌 알았는지 그의 집에 술이 익어간다는 말을 듣고는 소에 언치를 놓아 타고 찾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 정철은 현재의 고양시 신원동 송강마을에서 부모님의 묘를 2년 간격으로 연이어 쓰고 시묘살이를 4년 7개월간이나 하며 살았습니다. 벼슬에서 물러나 있을 때도 간간이 내려와 이곳에 머물렀고 죽은 후에는 부모님 근처에 자신의 묘가 마련되기도 했지요. 지금은 충북 진천으로 묘를 이장해 가서 부모님의 묘와 그를 사랑하던 기생 강아의 묘만 남아 있답니다. 물론 선산이라 다른 가족의 묘도 있구요.
송강이 살던 고양시 신원동에서 파주 우계(현 파평면 늘노리)까지 가려면 상당히 먼 거리라 하루 종일 걸어가야 해서 아마 소를 타고 갔나 봅니다.
아무튼 파주에 살고 있던 성혼의 집에서 술향기를 풍기며 익어가던 그 술은 과연 어떤 술이었을까요? 아쉽게도 파주의 거족 창녕성씨 문중에서 빚었던 가양주는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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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악산 머루주 생산공장 |
▲ 감악산 머루주 저장공간-감악산 자락 지하에 있다. |
▲ 감악산 머루와인을 저장하는 옹기로된 술춘
▲ 감악산 머루주
평양의 명주 감홍로주, 파주에 자리잡다.
감홍로(甘紅露)는 평양에서 많이 사랑받던 술입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로 감홍로·이강고·죽력고를 꼽았습니다. <춘향전>에도 <별주부전>에도 감홍로가 나오고. 18세기 문헌 ≪고사십이집≫을 비롯하여 19세기 문헌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에도 등장한답니다.
▲ 감홍로주 |
지금 파주 부곡리에서 감홍로를 빚고 있는 사람은 이기숙씨 부부인데, 이기숙씨 아버지 이경찬(1918~1993)씨는 문배주로 문화재청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지요. 장남 이기춘 씨가 이어받아 김포에서 문배주를 빚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경찬 씨는 문배주 말고도 감홍로도 자주 빚었는데 막내딸 이기숙 씨가 오빠와 함께 곁에서 돕다보니 자연스럽게 감홍로 빚는 법을 배웠겠지요. 오빠가 감홍로로 명인 지정까지 받았으나 병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이기숙 씨는 감홍로가 잊혀질 것이 안타까워 마침내 주류면허를 받고 술을 빚게 되었답니다.
▲ 감홍로주 원료 좁쌀을 고르고 있다 |
달고 붉은 술 감홍로....이 술을 빚기 위해서는 좁쌀누룩 30%와 멥쌀 70%이 들어가고 이외에 약재로 용안육, 정향, 계피, 진피, 자초, 생강, 방풍, 감초 이렇게 여덟가지가 들어갑니다.
감홍로의 술맛은 참으로 오묘합니다. 강한 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쓴 것 같으면서도 단맛이 혀끝을 감돌아 가슴을 적시며 깊은 향취를 느끼게 합니다. 그 빛깔은 어찌 그리도 성숙한 붉은 빛깔을 띄고 있는지요.
감홍로는 인생의 쓰고 단 맛을 아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술입니다. 한여름 더운 열기가 가라앉고 반짝이는 별들이 하나둘 눈빛을 보낼 때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마당에 앉아 감홍로 한잔 혀 끝에 머금어 보시면 세월의 깊은 맛이 우러나올 겁니다.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의 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해석을 하자면
술 한잔 먹세그려 또 한잔 먹세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헤아리며 끝없이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으로 덮어서 졸라매고 가든
아름답게 꾸민 상여 뒤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뒤따르든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무덤을 말함]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소슬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할까?
하물며 원숭이가 무덤 위에서 휘파람 불 때, 뉘우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단원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가운데 "주막" |
[그린경제/한국문화신문 얼레빗=권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