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수가 되려면 영어면접이 통과의례?

2013.07.10 09:26:33

겉모습만 가장 아름다운 대학으로 가는 계명대총장님께

[그린경제=김슬옹 기자] 

행소박물관과의 아름다운 인연 

2010427. 저는 행소박물관 초청으로 훈민정음 특강을 위해 계명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학교 캠퍼스에 들어선 순간, 저는 얼떨결에 무릉도원에 빠진 사람 모양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실제 무릉도원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었다니. 그동안 가장(?) 아름답다는 여러 대학의 캠퍼스를 두루 보았지만, 그 어떤 대학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격이 달랐습니다. 마침 꽃피는 봄이라 더욱 아름다웠던 듯싶습니다. 제가 안 가본 수많은 외국 대학 캠퍼스를 합친들 이보다 아름다울까요? 

저는 저도 모르게 무릉도원의 신선이 되어 캠퍼서 여기저기를 누비었습니다.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는 발을 담그고 싶었으나 겨우 억제하고 기분만을 만끽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 흥에 겨워 저의 주특기인 명강의(?)를 신명나게 펼칠 수 있었습니다. 행소박물관장님을 비롯한 모든 직원 분들의 친절함은 캠퍼스 풍광만큼이나 포근했고 강연 참석자의 열의까지 더해 저는 제 생애 최고의 열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캠퍼스를 거닐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저도 잠시나마 이곳에서 강의하는 꿈을 상상하며 즐겁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의 상상속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실제로 찾아 왔습니다. 그해 12월 중세국어와 국어교육학 동시 전공자를 모집하는 광고가 저의 작은 눈을 파고들었습니다. 두 분야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양박)은 우리나라에 저밖에 없었고 논문 실적, 학술 단행본 출판 실적으로 보아서도 그 누구의 업적보다 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사학위가 두 개라서 문제 삼는 대학교가 많은 터에 이를 더욱 요구하는 대학교. 이제 이 대학에 뼈를 묻어야겠구나.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위상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신명을 바치리라 생각하며 부푼 꿈을 안고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꿈은 20101127일 토요일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2차 강의와 면접을 위해 다시 찾은 계명대학교 성서 캠퍼스는 저의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이 잔뜩 찌푸리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데다 토요일이라 빈 캠퍼스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시강을 위해 교실에 들어선 순간, 아프다가도 강의만 하면 신명이 나는 저의 체질은 금세 풀죽은 개처럼 온 몸에 힘이 빠져 나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섯 분의 한국어문학과와 교육대학원 교수님들 옆에 젊은 영어 원어민 교수(국적은 모름)가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다섯 분의 한국인 노교수님들은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젊은 외국인 교수만 눈에 밟혀 사실 무엇을 강의했는지도 기억에 잘 나지 않습니다. 중세 한국어 전공자를 뽑는 상황에서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럼에도 제가 마치 죄인이나 된 듯이 느껴지는 그 모멸스러운 현실이 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 시강을 하고 한국인(?) 교수님 면접을 치르자 역시 예상했던 영어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이의 무덤이 된 아름다운 성서 캠퍼스 

   
▲ 국어교수에게조차 영어인터뷰와 영어강의를 요구하는 잘못된 대학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 순간의 모멸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훈민정음 관련 강의(중세문법)를 하고 왜 외국인 면접을 보아 대학교수가 되어야 하는지 참담한 심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계명대학교만의 문제는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어교육을 가르치는 교수도 외국인이 영어 면접을 통해 뽑으면 대학 가산점을 준다는 교육부 지침이 이런 제도를 부채질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명대학교는 외국인과 따로 면접을 치르는 다른 대학교와는 달리 내국인 교수 앞에서 공개 모욕을 주는 면접이라 더욱 심하였고 그것도 2차뿐만 아니라 3차에서 다시 영어 면접을 보는 등 영어에 대한 평가 영역이 다른 대학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물론 저도 영어를 잘하고 싶고 계속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훈민정음학을 해외에 제대로 알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7개 국어(러시아어, 중국어, 에스페란트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영어 회화 능력이 국어 전공 교수를 뽑는 주요 척도가 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계명대학교를 향한 저의 짝사랑과 꿈은 산산조각 났지만 총장님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고 싶습니다. 계명대학교처럼 오랜 역사와 무릉도원과 같은 아름다운 대학교에서 어째서 모국어를 멸시하고 모국어를 가르치는 이에게 모멸감을 주는 처참한 일이 벌어져야 합니까? 그래서 얻고자 하는 계명대학교의 꿈은 무엇입니까? 

무릉도원 계명대학교에서 다채로운 꿈들이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기원하며 이만 줄입니다.

김슬옹 기자 tomul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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