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총각 복만이 전설의 도쿄 심대사 <1>

2013.09.06 07: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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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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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동의 오래된 절 심대사와 오미쿠지의 창시자 원삼대사, 큰스님 만공상인의 조부모 사당 고하쿠신사와 조후시(調布市) 일대는 고대 조선인의 독무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밝히고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지 일본사람들이 밝혀내어 널리 알려줄 리가 없다. 오히려 있는 것을 감추고 없애지나 않으면 다행인데 그런 기대는 점점 멀어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답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무사시노 평야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와 집들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껴본다. 해가 지고 온 세상이 어두워지면 집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면 초원 위에 펼쳐지던 평야와 그 평원 위를 달리던 용맹의 상징 고구려 후예들과 뛰어난 선진문화의 전달자 백제와 신라인들의 영원한 로망이 밝은 햇살을 받으며 언제까지나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빌어본다. 이 글은 2010년 1월 23일 답사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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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고구려 총각 복만 씨의 전설과 마귀 쫓는 원삼대사의 전설로 잘 알려진 심대사(深大寺)는 관동지방의 천년고찰로 도쿄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사이타마의 고마(高麗, 고마로 읽으며 고구려를 뜻함)마을 이라면 하루 잡아야겠지만 심대사는 반나절만 시간을 내도 갔다 올 수 있는 절이다. 점심 무렵에 가서 그 유명한 심대사소바(메밀국수) 한 그릇을 먹고 온다면 기분전환은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곳이다. 더욱이 애인과 데이트라도 한다면 좋을 것이고 이곳이 한반도계 조상들과 관계가 있는 곳임을 안다면 그 의미는 더욱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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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총각 복만이 전설이 깃든 심대사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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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한일문화답사단이 이곳을 찾은 것은 2010년 1월 23일 토요일로 날씨는 청명했다. 한 며칠 쌀랑하던 도쿄 날씨가 풀려 포근한 날 우리는 숙소 출발을 느지막하게 잡았다. 연일 강행군에 지친 회원들을 새벽같이 깨워 유적지 답사를 하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전세버스 없이 지하철과 다리품으로 다니는 답사여행은 3일이 되면 아무리 굳은 각오를 했다 하더라도 슬슬 지치게 마련이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음식이 안 맞는 등 환자 아닌 환자가 하나 둘쯤은 나오게 마련이다. 심대사는 이럴 즈음 찾아가는 게 좋다. 숙소를 11시쯤 나오는 것만으로도 회원들은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 신주쿠에서 주오선(中央線)을 타고 미타카 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심대사 앞까지 간다 해도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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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버스 종점에서 내리면 바로 심대사 경내이다. 안내서에 “산자수려하고 물이 풍부한”이라고 밝힌 것처럼 경내에 들어서기 전부터 작은 도랑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귀엽다. 가마쿠라의 장곡사(하세가와데라)나 교토의 청수사(기요미즈데라) 같은 곳은 입장료를 받지만 심대사(진다이지)는 733년에 세워진 상당히 유서깊은 절이지만 입장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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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절의 입장료는 특별히 문화재 가치가 있는 곳을 들어갈 때 내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본의 절은 누구나 무료로 들어가게 하는 곳이 많고 그 절 안에서도 특별한 보물이 있는 곳만 돈을 받고 있어서 그런 시설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저 경내만을 산책하고 나가도 될 수 있게 해둔 곳이 많다. 본받을 일이다. 그 대신 기도하는 사람을 많이 확보하고 기념품을 판다든지 일본 특유의 각종 부적(교통안전, 학업성취. 소원성취, 건강증진….) 판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절의 수입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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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후시(調布市)관광협회에서 만든 심대사 경내도. 빨간 표시 부분은 국수집이며 절 안팎으로 즐비해서 절과 국수집의 경계가 없다.
  16.   기념품점과 메밀국수집들이 절 경내에도 있고 밖에도 있어서 어디부터가 절이고 어디부터가 음식점인지 알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일본 절들은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편하다. 깊고 깊은 심산 속의 절을 진짜 절로 생각하는 우리네 머릿속의 절의 개념과 심대사는 많이 다르다. 심대사 뿐만 아니라 아사쿠사에 있는 센소지(浅草寺)도 절 입구부터 즐비한 가게(나카미세)를 지나야 본당이 있는 등 그야말로 승가가 속가요 속가가 승가인 것이 일본 절의 특징이다. 절의 위엄을 한바탕 털어내서 그런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경내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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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단희린 교수는 《일본에 남은 고대 조선(日本に残る古代朝鮮), 1978》에서 심대사 연기(緣起)를 소개하기를, “심대사는 고구려 귀화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창건 한 절로 부근에서는 드물게 옛 기와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 절에는 유명한 백봉불(白鳳佛, 650~654)인 동조(銅造)석가상이 있으며 더욱이 이 부근에는 고구려 귀화인이 거주했음을 알려주는 고마에 (狛江라고 쓰며 이는 고마 곧 고구려를 나타냄)라는 지명이 있고, 고마씨(高麗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석가상이 다른 지역에서 옮겨 온 것이 아닌 한 아마도 이 부근에 살기시작한 귀화인들이 그 기술을 살려서 절을 짓고 불상을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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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그러나 심대사 안내문 어디에도 “고구려”가 이 절과 관계가 있다는 말은 없다. 누리집도 마찬가지다. 이렇다 보니 심대사를 보고 간다 할지라도 이 절과 한반도를 연상시키기가 어렵다. 고구려인의 향기가 발끝마다 묻어나는 곳에 다녀갔으면서도 전혀 그런 사실을 모르게 되어 있는 게 오늘날 일본의 유적지이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밝힌다고 해서 품위가 깎이는 것도 아닐 텐데 일본은 왜 이렇게 한반도 관련 사실을 지우기에 급급한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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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의 신 심사대왕당(왼쪽)과 심사대왕당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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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좀 더 심대사 연기(緣起)를 살펴보자. 심대사에는 아주 재미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한래문화의 후영(韓來文化の後榮), 김정주, 1963》 상권 “고마향과 심대사(狛江鄕と深大史)” 에 보면, “나라시대 성무천황 때 일이다. 이곳 고마노(狛野, 고마는 고구려를 뜻함) 마을에 성을 알 수 없는 우근(右近)이라는 사람이 충청남도 온정리(溫井里)에서 건너와 일본인 호랑이 처녀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다. 이 아가씨가 12살쯤 되었을 때 이 근처에 살고 있던 복만(福滿)이라는 고구려계 총각과 사귄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딸의 부모는 화를 내며 연못 안에 작은 집을 짓고 딸을 이곳에 가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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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복만이는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낭자에게 가고자 했으나 물을 건너갈 수 없었다. 그래서 물의 신(水神)인 심사대왕(深沙大王)에게 기도하기를 만일 이 연못을 건너서 낭자를 만나게만 해준다면 이 연못과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영원히 숭배하며 모시겠다고 빌었다. 그러자 홀연히 한 마리의 거북이가 물속에서 나타나 등을 내미는 것이었다. 복만총각은 즉시 거북이등을 타고 가서 낭자를 만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고 이들 사이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자라서 출가하여 중국에 건너가 대승 법상종을 배워 귀국하여 이 절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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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만공상인(万功上人)이 이분이며 성무천황 5년의 일이다. 이후 만공상인은 심사대신을 물의 신(水神)으로 모시고자 했는데 그 모습을 알 수가 없어 고심하던 중 신라에서 건너 온 화가가 그려준 모습 그대로 심사대왕 상(像)을 조각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불상을 깎을 나무가 없어 한숨짓자 그날 밤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 다마천에 가면 뽕나무 3그루가 있다고 알려줘 이 나무로 조각하여 무장(武藏), 하야(下野), 출우(出羽) 세 곳에 나눠서 모시게 했다. 이것이 이 절에서 모시는 본존불인 심사대왕이다.”라고 나와있다

   
▲ 아오키야(靑木屋) 집의 대표 음식 심대사소바, 포장해서 파는 국수, 식당 안 모습, 아오키야(靑木屋) 집 전경(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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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를 입증하듯 심대사 본당 산문(山門) 앞에는 복만교가 있고 복만교 안쪽에는 연못이 있으며 낭자를 가두었음직 한 작은 섬이 있다. 지금은 도랑 폭이 크지 않고 복만교 주변에도 메밀국수집들이 즐비하지만 그 옛날엔 배를 타지 않으면 건널 수 없는 연못이었는지 모른다. 복만교에 이어 이 연기(緣起)를 입증해주는 곳이 있으니 다름 아닌 호랑이 처녀와 고구려 총각의 신을 모시는 고하쿠(虎狛, 호랑이와 고구려를 뜻함)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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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고하쿠신사(虎狛神社)는 심대사에서 약 20여 분 되는 곳에 있어 우리는 일단 그 유명한 심대사 국수를 먹고 심대사를 더 살펴본 뒤에 고하쿠신사로 가기로 했다. 심대사 경내에 기념품 가게에서 “심대사안내도”를 달라고 하면 내어주는데 이것은 절에서 만든 게 아니라 조후시(調布市)관광협회에서 만든 것으로 보아 시에서 심대사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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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안내도에 보면 “소바(そば)”라고 쓴 빨간 표시가 이곳저곳에 있는데 절 안에도 있고 절 밖에도 있다. 소바란 메밀집 표시인데 메밀집 동네 속에 절이 있는 것인지 절 속에 메밀집이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일본 절은 자유분방하다. 우리는 복만 총각에게 거북이를 보내주었다는 심사대왕당 가까이에 있는 메밀국수집 아오키야(靑木屋)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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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47년 된 메밀우동집 안은 다다미를 깐 내실과 식탁 6개 정도를 갖춘 외실이 있었는데 신발을 벗는 것이 번거로워 그냥 식탁에 앉기로 했다. 뚱뚱한 아주머니는 후덕하게 생겼는데 뭐가 맛있느냐는 일행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심대사소바를 소개해주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없이 통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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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가다랭이포 국물 냄새가 물씬 나는 메밀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복만 총각의 고향인 충남 온정리 이야기를 나눴다. 일행 중에 온양온천이 고향인 회원이 있어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심대사 명물 메밀국수가 나와 후루룩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밀집을 나와 심대사 경내로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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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당보다도 원삼대사당 앞에 유난히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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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심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원삼대사당이다. 원삼대사(元三大師 912∼985)는 오미쿠지(신사나 절에서 점치는 것)의 창시자로 잘 알려졌으며 액막이대사로도 유명한 분으로 신라계 출신 고승이다.  일본의 신사나 절에 가면 하얀 종이를 접어 주렁주렁 걸어 놓은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것을 오미쿠지라 한다. 절마다 “오미쿠지”를 파는 방법은 다양하고 요즈음은 자동판매기용 오미쿠지도 등장하고 있지만 전통방식의 오미쿠지라면 신사 경내 기념품 파는 곳에 메줏 덩어리 만한 나무통을 놓아두고 흔들면 작은 구멍에서 번호를 단 쇠젓가락 같은 것이 나오는데 미코(巫女, 신사 직원)에게 돈과 함께 주면 그에 해당하는 오미쿠지(운세풀이 종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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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운세풀이 종이에는 남녀 애정 문제, 길흉, 승진, 건강, 직업, 학업, 대인관계, 이사방위 등이 적혀있다. 우리가 재미로 치는 운수 점과 비슷하다. 대개 오미쿠지를 읽은 사람들은 신사 경내에 묶어 놓고 가도록 설치한 곳에 얌전하게 묶어 놓고 간다. 앞으로 좋은 괘는 이루어지고 나쁜 것은 신사의 신이나 절의 부처가 잘 돌봐줄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신사나 절에 오면 일본인들은 누구나 운세풀이 점인 오미쿠지를 뽑지만 그것을 만든 이가 신라출신 원삼대사가 만든 것인 줄 아는 사람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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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오미쿠지” 창시자 원삼대사는 어떤 분일까?  홍윤기 교수는 《히에이산 그 종교와 역사, 1970》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토국립박물관의 가게야마(景山春樹) 박사는 간산대사(元三大師) 료겐 대승정의 발자취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료겐은 서기 912년 오우미(近江·지금의 오쓰시 일대) 땅의 히가시아사이(東淺井)에서 신라인 출신인 명문 모노노베씨(物部氏)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12살에 히에이산 서탑보당원(西塔寶幢院)이라는 절에 입산함으로써 고승 직에 오를 수 있는 ‘일산대중’(一山大衆)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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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일산대중의 길은 우선 중앙 또는 지방의 이름난 명문 출신의 자제에게만 한정됐다. 료겐은 55세인 서기 966년에 히에이산 엔랴쿠지 대가람의 제18대 천태종 좌주(天台宗座主·최고위 스님)가 되었으며, 서기 985년 음력 1월 3일 입적하기까지 19년 동안 교학(敎學)의 번성과 대가람의 부흥 업적 등 실로 눈부신 발자취를 보였다. 그러기에 후세의 전기에서 그를 가리켜 ‘권자’(權者·신 또는 부처가 인간 모습으로 나타난 사람)라고 찬양했다. 그가 1월 3일에 입적하여 원삼(元은 1월을 나타내므로 元三)대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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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미쿠지를 매다는 일본인(왼쪽), 소원을 적은 에마
  22.  신라인 명문가 집안의 고승 원삼대사를 모시는 심대사는 그러나 이런 내용을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심대사 누리집 첫장에 액(厄)을 제거해주는 원삼대사 사찰임을 자랑스럽게 표시하고 있다. 심대사를 찾은 날도 유독 원삼대사당 앞에만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원삼대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일본인들은 그저 액막이로 용한 큰스님인줄 알고 합장하며 기도 올리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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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만일 한국땅에 일본인 조상이 뿌리를 내린 사찰이 있다면 일본인들은 숱한 논문과 책을 펴내고 보도하고 방송하고 드라마까지 만들어 냈으리라. 사상과 철학을 떠나 인간의 기쁨을 발원해주고 나쁜 액을 막아주는 분은 국적을 떠나 숭앙받을 일이다. 만일 600년간 이어진 조선의 불교탄압과 억제 정책이 없었더라면 원삼대사는 조선 땅에서도 재조명 받았을 터인데 유교를 숭상하는 바람에 모든 절은 없어지고 스님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경전조차 일본 땅으로 건너간 게 부지기수인 상황은 누굴 나무랄 것도 못 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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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538년 백제 성명왕 때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후 (552년 설도 있다) 일본땅으로 건너갔거나 일본땅에서 태어난 한반도 출신 큰스님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위 승직에 오른 한국계 출신 스님들의 훌륭한 삶에 대한 발자취에 대한 변변한 논문 한 편, 책자 하나 없는 게 현 실정이다.
  27.  원삼대사당을 나와 뒷산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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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다음 이야기는 <2>에 이어집니다.

 

★찾아 가는 길★

 신주쿠나 도쿄역에서 JR미타카(三鷹) 가는 전철을 타고 미타카역(三鷹駅)에서 내려 남쪽 출구로 나와 3번 버스승차장에서 심대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이한꽃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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