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침략 반성하는 도쿄 '고려박물관'

2013.10.02 06:53:18

도쿄 신오쿠보 쇼쿠안도오리에 있다

[그린경제 = 이한꽃 기자]


“일본과 코리아(남한과 북한을 함께 부르는 말)의 역사,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풍신수길의 두 번에 걸친 침략과 근대 식민지 지배의 과오를 반성하며, 재일 코리안의 생활과 권리 확립에 노력하며, 재일 코리안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전하기 위해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도쿄 고려박물관을 세운 사람들은 약 80%가 일본인이며 20여 년을 준비해서 2009년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운영은 순수 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글은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 방문해서 쓴 글임을 밝힌다. -편집자주-.

 

도쿄 신오쿠보 한인타운 중심가에는 고려박물관이 있다. '고려'라는 말에 한국인이 세웠나? 하는 생각을 언뜻하게 되지만  그러나 위의 설립취지문 처럼 왜곡된 한일역사를 바로 잡아 나가려고 애쓰고 있는 양심있는 일본시민들이 세워 운영하는 박물관이 고려박물관이다.


   

▲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일본인이 세운 고려박물관 입구


 한국의 2호선처럼 도쿄 순환선이라고 해도 좋을 야마노테선(山水線)을 타고 신오쿠보역에 내려 쇼쿠안도오리(직업안정소거리)라고 불리는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광장이라는 한국 슈퍼가 눈에 띈다. 쇼쿠안도오리(職安)는 곧 직업안정소의 준말로 2차 대전 이후 이곳에 직업을 소개해 주는 직업 안정소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패전 이후 폐허가 된 도쿄에서 신오쿠보의 직업안정소를 통해 일자리를 찾아다니던 일본사람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신오쿠보를 고층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는 도시로 만들었다.

 이곳에 한인타운이 있는데 길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즐비하고 지나다니면서 부딪히는 사람들도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 고추장, 된장, 새우젓은 물론이요, 각종 라면, 김, 밑반찬에서부터 곰탕, 사골국, 삼계탕 등 봉지만 따서 데우면 즉석요리로서 먹을 수 있는 온갖 음식과 한국 물건을 살 수 있는 슈퍼가 광장슈퍼이다. 그 바로 건너편에 고려박물관이 자리한다.


 평소 한국에서도 평생 박물관과는 담쌓고 살던 사람이라면 도쿄 땅에 보고 즐길 것도 많은데 하필 박물관이냐고 하품할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신오쿠보의 고려박물관은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말이 박물관이지 박물관 공간만으로 보면 작은 오피스텔을 연상시키는 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는 일은 크고 다양하다. 일 년 내내 이뤄지는 행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 기증받아 전시 중인 백제금동대향로(왼쪽)과 신라 금관(오른쪽)


 또한, 굵직한 각종 기획 전시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도자기 기획전, 약탈된 문화재 판넬 전시를 비롯하여 한국 전통악기 다뤄보기, 전통 옷 입어보기 등을 통한 한국문화 역사 체험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민족시인 윤동주 시 낭독회, “재일(在日)의 의미를 말한다.”와 같은 기획 강연과 공연 등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고려박물관은 언뜻 한국인이나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듯해 보이지만 이사장을 비롯해 회원 80%가 일본인이며 20여 년을 준비해서 2009년으로 문을 열었다. 박물관 운영은 순수 회원들의 회비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한일문화답사단이 이곳을 찾은 것은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오후였다.

때마침 이곳에서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인 위안부의 기록물이 상영되고 있었고 이어서 조수옥 씨의 살풀이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사전에 예약을 하지 못한 관계로 우리 일행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대신 다음 날은 일요일임에도 우리를 위하여 부이사장 다사키(田崎敏孝) 씨가 박물관을 안내해주는 친절을 보였다. “누구에게 돈을 받았으면 박물관은 안 만들었을 것이다.”라고 하는 부이사장 말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좋아서 하는 일이라 회원들이 신명을 다바쳐 박물관 운영을 하고 있으며 기획전 등에 대한 조사를 꼼꼼하게 하고 있다” 고 덧붙이는 말에서 고려박물관을 이끌어 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열이 물씬 느껴지며 일요일 임에도 쉬지 않고 나와 박물관을 지키는 그들의 봉사 정신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양심있는 순수한 일본인들이 고려박물관을 만들어 운영


 전시관 안에는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이 있는데 답사단이 방문했을 때는 기획전시관에서 조선자기의 유래와 일본 내의 조선자기 분포를 임진왜란 때의 도자기 약탈 등을 포함한 상세한 기록과 사진을 판넬 전시로 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정리하여 《임진·정유재란과 한일 도자기, 조선자기 그 처음부터 다시 살펴본다, 2008.6.4》라는 책자도 만들었다.


 이러한 자료를 위해 박물관 회원들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도자기로 유명한 큐슈의 가라츠(唐津), 하기(萩), 사츠마(薩摩), 아리타(有田) 등지를 자비를 들여 취재를 하고 자료를 구했다는 말 끝부분에서 다사키 부이사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부이사장의 도자기 취재와 뒷이야기가 이어졌다. 회원들이 발로 뛰어서 만든 책에는 각 지역의 도자기 역사와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 사진, 임진·정유재란 때 조선도공 납치와 그 역사, 가마터와 대대로 가업을 잇고 있는 명문 도예가 집안이 아주 세밀하고 꼼꼼하게 기록되어있다.


   

▲ 임진왜란 때 도자기 관련 사진, 이 자료는 <임진,정유재란과 일한(日韓)의 도자(陶磁)>라는 일본어판 고려박물관 발행 책에 자세히 나옴


 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서 펴낸 책에는 우리가 미처 접하지 못했던 중요한 이야기도 들어 있었다. 고려박물관에서 펴낸 《잃어버린 조선문화유산 : 식민지하에서의 문화재 약탈,유출,그리고 반환 공개, 2009.8.22》에는 추사 김정희의 자료를 수집한 후지츠카 부자(父子)이야기가 일본어로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한번 들어보자.


 아키나오의 아버지는 일본동경제국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한국으로 건너가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서울대의 전신)에서 교수로 지내면서(1926-40) 전공인 논어를 가르쳤다. 그는 논어를 고증학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 1921년 1년간 중국에 건너가 중국고서적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중국문인과 조선문인의 문화교류 사실을 알았고 이때 처음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높은 학식과 인품에 매료되어 추사 김정희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울에 부임한 뒤 추사에 관한 것이라면 빠짐없이 수집했다. 그가 평생 모은 추사자료와 기타 자료들을 보면 추사 친필 글씨 26점, 추사 관련 문인들의 서화류 70여 점, 경학(經學)관련 주요자료 2,500권, 근대 양본책(洋本冊) 1,500여 권, 실물 사진 1,000여 점과 후지즈카 집안의 고문서 200여 권 등이다. 이 방대한 자료와 아들인 아키나오가 모은 프랑스 영화필름 테이프 100여 점을 합해 약 1만여 점이 2006년 2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과천시에 기증되었다.


“no wife, no son, no daughter” 라는 말은 일본잡지 동양문화 (東洋文化, 復刊 第97号)에 실린 아키나오의 글로 그는 이글에서 마누라도, 아들딸도 없는 94살의 늙은이가 아버지로 받은 귀중한 자료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참에 마침 과천시에서 추사 김정희 기념관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모은 자료들을 추사 김정희의 연구에 쓰도록 기증하게 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현금 200만 엔도 연구 기금으로 함께 전달했다.”


 이 이야기는 2006년 2월 3일 국내 각 일간지에도 “어느 일본인 부자(父子)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추사 김정희 유물 기증”이란 기사가 그것이다. 일본인 부자란 다름 아닌 후지즈카 아키나오(藤塚明直·94)와 그의 아버지 후지즈카 치카시(藤塚隣,1879∼1948)의 이야기다.


 개인이 모은 추사 관련 직접 자료만 2,600여 점이라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일제강점기 하에 조선 땅에 건너온 교수 한 명이 추사 기념관을 채우고도 남을 자료를 모았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아키나오의 아버지는 그래도 ‘내재한 신념’으로 조선의 귀한 문화재를 모아 훗날 돌려주는 아름다운 미덕을 보였으나 당시 헐값에 거의 주워가거나 강탈해가다시피한 귀중한 문화재는 돌아오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숫자도 알 길이 없다.


   

▲ 하마터면 일본인이 가지고 귀국하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뻔한 세한도


하마터면 한줌의 대로 변할 뻔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더욱이 아찔했던 일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그림에 관한 이야기다. 세한도 역시 아키나오 아버지 손에 들어갔는데 한국에서 교수직을 마친 그는 세한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한국인 손재성 씨가 병상을 두 달간 쫓아가서 세한도를 한국에 돌려달라고 설득한다. “세한도는 조선에 있어야 하는 보물이다.”라는 끈질긴 간청에 그의 아버지는 세한도를 조선으로 돌려주는데 그로부터 3개월 후 미공군의 도쿄대공습으로 후지츠카가 소장하던 상당수의 유물이 불탔다고 한다. 하마터면 김정희 불후의 명작 세한도는 한 줌의 재로 날아갈 뻔 한 것이다.


 이러한 자세한 이야기를 일본인에게 알리고자 고려박물관 사람들은 부지런히 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또한 《잃어버린 조선문화유산 : 식민지하에서의 문화재 약탈,유출, 그리고 반환 공개, 2009.8.22》에는 ‘조선왕조유산파괴’라는 항목을 만들어 경복궁 동궁 내전으로 세자가 왕이 되기 위한 학문 수양을 하는 유서 깊은 건물인 자선당(資善堂)을 뜯어다가 도쿄 아카사카의 오쿠라(大倉)씨 개인 사택으로 이축된 유래와 사진 공개(10쪽), 조선왕조의 상징인 궁궐 건물들을 파괴하여 총독부 관사와 광장, 공원들을 만들어 그곳에서 박람회를 하는 만행을 폭로했다(12쪽).


 장물아비 이등박문(이토히로부미)가 조선의 왕릉에서 도굴한 고려청자를 비롯한 숱한 문화재를 본국에 있는 명치왕과 그 일가 친족에게 선물로 했다는 이야기(16쪽), 도쿄국립박물관 오구라(小倉)콜렉션에는 1,110점에 이르는 조선의 보물들이 있다는 이야기와 조선의 도자기에 걸신들린 일본인 들이 가야시대의 고분을 뒤지려고 몰려든 사진(17쪽), 정선과 강세황 등 조선 최고의 화가 작품 68점 (19쪽), 조선 3대 통감이었던 데라우치가 전선의 고문헌 1만8천 점을 약탈해다가 데라우치 문고를 만들었다는 이야기(21쪽) 등등 일제의 악랄한 노략과 약탈 행위를 낱낱이 밝혀 놓은 것도 고려박물관의 일본인들이다.


 고려박물관 사람들은 또 《시민이 만드는 일본·코리아 교류의 역사, 明石書店,2002》등 한일 교류를 위한 많은 책을 만들어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으며 《민족교육의 오늘을 생각한다, 고려박물관 간행, 2009.3.30》에서는 재일조선인의 유래와 2세 교육, 왕따 문제, 현재의 교육 여건 등을 소상히 다루어 재일조선인 민족교육의 현주소를 밝히고 있다.


 이 밖에도 정년퇴임을 한 뒤 고려박물관이 제2직장이나 되는 듯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고 말하는 다사키 부이사장의 고려박물관 사랑은 각별하다. “정말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라며 돕는 길이 무엇인가 둘러보니 운영비에 보태려고 만들어놓고 판매 중인 각종 책이 눈에 띈다.


 우리는 이곳에서 책 몇 권을 샀다. 내용도 충실하지만 역사왜곡을 밥 먹듯이 하는 일본인 그들의 나라에서 그것의 부당성과 잘못을 지적하는 하는 이들의 용기와 시간과 주머니를 털어 어려운 경영을 하면서도 한일친선교류를 위해 365일 쉬지 않고 뛰는 이들의 아름다운 헌신과 봉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일조하는 마음에서였다.


   

▲ 재일조선인의 차별과 학교교육문제를 다룬 책 중에서 ‘찢어진 저고리의 소녀’ (그림 재일조선인화가 박정문)


 입만 열면 일본의 각료들은 “식민지는 정당한 것이었다.”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아 우리 한국인들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그런가 하면 멀쩡한 남의 땅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등 전혀 과거 식민지경영에 대한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일본에 실망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조선침략은 날강도 짓이었다. 일본은 조선에서 숱한 문화유산을 약탈해왔으며 백성을 괴롭혔다. 그런 행위를 낱낱이 기록해두겠다.”라는 용기로 뭉친 시민들이 신오쿠보 한인타운에 세운 것이 고려박물관이다.


 이들의 목소리는 아직 미미하지만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시냇물을 만들고 그리고 또 이것이 모여 강과 바다를 이루듯 이들의 작은 땀방울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한일간의 왜곡된 역사를 일본인들의 손으로 따스한 가슴으로 한올 한올 풀어나가는 고려박물관은 신오쿠보를 찾는 한국인들도 많은 관심을 둬야 할 것이다.

  

★고려박물관 찾아 가는 길★

JR 야마노테선(山手線)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내려 쇼쿠안도오리(職安通)

한국'광장'수퍼 건너편 광장 건물 7층

*전화:도쿄 03-5272-3510

 

 

이한꽃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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