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산자동차 '포니 Ⅱ' 캐나다에 상륙하다

2014.09.07 09:48:37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⑱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폭발적인 인기를 끈 포니, ‘당나귀란 뜻을 지닌 포니라는 이름은 한국 최초의 독자적 자동차답게 공모에 의해 결정된 이름이었다. 아리랑, 새마을, 무궁화, 진돗개 등을 물리치고 뽑힌 이름 포니는 빠르거나 중후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이름처럼 귀엽다는 느낌을 지니고 있어 어쩌면 그 이름도 성공요인의 하나였는지 모른다. 그때 현대자동차 사장이었던 정세영은 국제사회에서 포니 정이란 애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포니의 인기는 지칠 줄 몰랐다. 197719847대를 팔아 시장점유율 54.1%로 내수시장을 석권하더니 197838411, 197946971대로 판매대수가 점점 늘어났다. 한국 실정에 잘 맞는 자동차라는 점 말고도 포니는 한국 최초의 국산자동차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덕이기도 했다.

포니는 한국경제 구조가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농업과 경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포니의 성공으로 관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됨과 더불어 2차 산업 곧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2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촉발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천하의 정주영이 포니를 한국의 자동차로만 안주하게 내버려둘 사람은 아니었다. 1994년 한국인 최초로 야구 메이저리거가 된 박찬호처럼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 당당히 서야 했다. 물론 현대는 국내 판매만이 아닌 나라밖으로 이미 포니를 팔기 시작했다. 1976년 현대는 드디어 나라밖 에콰도르행 화물선에 포니 6대를 실었다. 이를 시작으로 19761019, 19777421, 197818317대 등으로 발 빠르게 세계시장을 넓혀나갔다. 남의 나라 브랜드 코티나를 조립 생산하던 처지에서 이제 자동차 수출국으로 당당히 선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 당당히 서지 않고는 그저 3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자동차의 왕국 미국은 그 역사만 봐도 1세기가 넘을 뿐 아니라 생산판매량에 있어서도 그 어떤 나라도 넘볼 수 없는 당당한 위치를 자랑한다. ‘싸구려 제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미국.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은 그만큼 다른 나라 자동차회사들에겐 높은 벽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주영은 미국에 분명히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난공불락인 미국시장에 현대 포니는 어떻게 상륙하고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을까? 고민 끝에 철옹성을 직접 뚫기 보다는 우회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것은 미국의 인접국 캐나다 시장에 먼저 진출하는 것으로 자동차시장에 손자병법의 전략을 써 보는 것이었다.

19832월 현대는 캐나다에 ‘Hyundai Auto Canada Inc.’라는 이름의 현지법인을 세우고 차량 테스트를 받았다. 이때 캐나다 상륙을 결정한 차종은 디자인 꽁지 빠진 닭같다는 포니에서 각진 느낌이 드는 부분을 둥근 맛으로 변형한 후계 차 포니였다. 포니는 새로운 형태의 5도어 해치백 스타일로 캐나다에서 판매를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고, 훗날 미국 시장진출을 위한 기반을 닦은 차가 되었다.

포니는 길이 4029, 너비 1566, 높이 1327이며, 배기량은 120014002종류의 엔진을 얹었고, 각각 2모델씩 총 4개의 모델을 출시하였다. 자동차전람회에서 포니동방에서 온 새로운 별(New Star from the East)’이라는 구호로 캐나다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처음엔 동방에서 온 한국을 알지 못하는 캐나다인들에게 한국과 현대를 알리는 일만으로도 입이 부르틀 정도였다.

하지만 전람회 내내 각고의 노력을 쏟은 결과 1500여 장의 대리점 신청서를 접수했고, 이 가운데 50여 곳을 뽑아 전국적인 판매에 돌입했다. 그리곤 석 달 동안 무려 200만 캐나다달러의 광고비를 집중 투입했다. 그러자 경쟁사들은 겨우 몇 천 대 팔려고 그렇게 많은 광고비를 투자하다니 미쳤다며 ‘Crazy Hyundai’라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정주영의 생각은 남달랐다. 캐나다 공략이 단순히 캐나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미국을 공략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음을 그들은 알 리가 없었다. 그리고 캐나다 자동차시장이란 것이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캐나다는 나라땅이 9984670로 세계 두 번째이며. 남북한 포함 한반도의 45배나 되어 지역에 따라 기온차가 큰 나라다. 짧고 달콤한 여름이 지나면 겨울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갈아 끼우다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영하 20~30도의 맹추위가 거의 반년이나 지속되는 나라다. 게다가 안전법규는 매섭게 규정되어 있고, 소비자보호단체의 영향력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그러니 캐나다에서의 뒷손질(애프터서비스)은 철저해야만 한다. 그래서 현대는 다음과 같은 광고로 캐나다 사람들의 정서를 노렸다.

First winter on sail, second winter in Canada.

(출시된 첫해부터 혹한에 견딜 만큼 강했으며 이듬해부터 캐나다에 판매할 정도로 인정받은 포니)

Earlier today, this car carried groceries across the Sahara, Transported a family over Andes and tucked into a space near Picadilly circus. Canada meet the Pony.

(아침에는 사하라사막을 달리고 낮에는 한 가족을 싣고 안데스산맥의 험난한 길을 달렸으며, 지금은 런던의 피카디리 서커스 공원에 주차될 정도로 험난한 곳도 거뜬히 달리는 포니를 캐나다에서도 만나보라)


   
▲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이 광고들은 1984캐나다 최우수 광고로 뽑힐 정도였는데 90개 신문, 4개 잡지에 올린 것은 물론 선간판들을 설치하여 집중적으로 홍보하였으며, 현대여자배구단이 캐나다 전국을 순회하며 인상적인 경치를 펼쳐 포니의 인기는 날로 더해갔다. 그리고 현대는 확실한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현지 판매법인부터 판매상(딜러)까지 24시간 안에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했다. 또 간단한 고장이나 부품교환은 운전자가 직접 수리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감안하여 소모성 부품 따위는 10~30% 정도 값을 낮췄다.

이렇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 현대자동차는 캐나다 진출 첫해 25123대를 팔아 단숨에 수입차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108000여 대를 팔아 일본차를 제치고 수입차 판매 1위의 기염을 토했다. 그야말로 캐나다에서의 포니돌풍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20여 년 동안 팔아온 도요타와 혼다가 캐나다에서 연간 5만여 대를 팔 때였으니 현대가 이렇게 성공한 것을 두고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일본자동차 대리점협회는 캐나다 정부에 한국자동차의 독주를 규제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자동차가 뒤늦게 방방 뛰었지만 현대는 오히려 토론토에 25000달러를 투자해 캐나다 사람 300여 명을 고용하는 자동차부품공장을 설립하는 합의각서에 서명하여 일본자동차 회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혼다, 도요타가 캐나다에 자동차공장 건설을 설립한다고 뒷북치는 발표를 하였으나 이미 캐나다에서는 한국 Good boy, 일본 Bad boy’와 함께 한국은 몰라도 포니는 안다.’라는 말이 돌아 버렸다. 더 나아가 현대는 1985년 봄 대리점 사장단 336명을 한국에 데려와 현대자동차 공장은 물론 울산 조선소와 경주 등 유적지 등을 돌아보게 하여 현대가족으로서 분명한 도장을 찍어주었다.

현대가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승승장구했지만 정주영의 목표는 캐나다가 아니었고, 미국이었기에 이제 서서히 미국의 문을 두드려야만 했다. 든든한 캐나다를 배경으로 하여 현대자동차는 19854월 드디어 미국 LA600만 달러를 투자하여 현지법인 ‘Hyundai Motor America’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미국마케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캐나다와 달리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현대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처럼 축하를 받으며 당당하게 설 수 있을 것인가?(계속)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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