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에 그친 '정도령'의 통일대통령 꿈

2014.10.20 06:45:11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24>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해에는 역술인들이 앞 다퉈 '정도령'을 점지하고 나섰다. 동시에 각 선거캠프에서는 ‘우리 후보가 정도령이다.’고 말하기 바빴다. 최고의 예언서라는 정감록에는 정작 “정도령”은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건만 이유가 어찌됐건 정도령을 차지하려고 서로들 무던 애를 썼었다. 1992년 대통령선거에 나선 정주영 측도 성씨가 같다는 연유로 정주영이 정도령이라 했고, 이 말은 삽시간에 퍼져나가기도 했다. 

도대체 정도령은 누구이며, 왜 서로들 정도령을 차지하려고 할까? 정도령은 예언서로 잘 알려진 《정감록(鄭鑑錄)》과 《격암유록(格菴遺錄)》에서 예언하고 있는 민족의 구원자다. 그가 정작 어떤 성씨를 가졌으며 언제 나타나 어떤 큰일을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까닭은 《정감록》과 《격암유록》이 온통 파자법(破字法, 여러 의미로 결합되어 있는 글자를 분해하여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는 법)으로 쓴 암호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그래서 수많은 정도령이 나오게 되는 법이다. 

어쨌거나 정주영은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을 외치며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 가장 절실한 것이 경제부흥과 통일이었음을 절감한 것이다. 정주영은 천 마리 소떼를 끌고 북한을 방문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고, 그로 인해 통일대통령으로서의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신했기에 정치가 망쳐놓은 경제를 다시 일으키기엔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주영의 공약 가운데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정작 “아파트 반값 공급”이었다. 만일 이것이 실현 가능하다면 내집 마련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서민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공약인 셈이었다. 그리고 정주영=현대건설이라는 등식으로 생각할 만큼 정주영은 곧 현대건설이라 생각했고, 현대건설은 한국 최고의 건설업체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겐 그 공약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대 후보의 하나인 김영삼은 터무니없는 공약이라며 정주영을 몰아세웠다. 가만있을 정주영이 아니었다. “나는 기업가로서 정직과 신용을 첫째가는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다. 내가 그동안 현대를 이끌어온 과정을 잘 안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 것이다.”라고 되받아쳤다.

 

   
▲ 정주영은 통일대통령 꿈을 꾸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그러면 그는 어떻게 반값 아파트가 가능하다고 한 것일까? 92년 대선을 집중 취재했던 월드스트리트저널의 스티브 글레인 기자에게 정주영은 “제도만 고치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토지공사가 땅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고 토지개발에만 전념하게 해도 30%는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거기에 법제도가 부실하여 각종 인허가 관련에 로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 15%, 건설회사 자체의 원가절감과 공기 단축으로 10% 등 최소 55%나 절감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뒤 2004년 2월, 정주영의 논리를 간접적으로 증명해주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공급하는 상암동 아파트의 분양수익이 분양가 총액의 40%에 이른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주영의 “반값 아파트” 공약은 다시 조명 받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면 혁명적인 일이 생길 뻔 했다. 그리고 국민은 싼 아파트에 집이 없어 눈물 흘리는 이들이 훨씬 줄어드는 일이 말이다.  

하지만 1992년 대선에 출마할 당시 정주영의 나이는 78살. 그가 그의 일생에서 추진했던 획기적인 사업을 발상했을 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식구들은 물론 그의 주위 모두가 반대하고 나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언론과 정치권은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부와 권력 두 마리 모두 소유하려는 노욕의 화신이다”, “노망의 증거다”, “오로지 기업 성공 경험만 있는 사람에게서 돌출된 오만한 행동이다.” 등 입에 담지 못할 거친 말들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가 만든 신생 국민당은 창당 45일 만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에서 총 득표율 16.3%인 400만 표를 얻어 31명의 의석을 확보하는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거기까지만 만족해야하는 한계를 지녔나보다. 그동안 뿌리가 깊이 내린 기존 정치권의 이해관계, 혈연, 지연, 학연, 동서 지역감정이 복잡하게 함께 얽혀있는 두터운 벽을 극복하는 데는 나라의 미래를 담보하는 명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고, 그런 그는 분명 아마추어 정치인이었다.

기성 정치권 특히 김영삼 측에서는 “기업으로 부자가 된 그에게 정치권력까지 주어서는 큰일 난다.”라는 주장과 반 기업정서를 증폭시킴으로써 유권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진짜 건강과는 상관없이 노망든 노인으로 매도하는 흑색선전이 불행하게도 많은 유권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다. 

결과는 낙선. 16.3%인 188만 표를 얻는데 그쳤다. 결국 정 회장이 그의 전 일생을 치열한 도전정신으로 점철된 일생의 마지막 단계에 선택한 대통령 출마라는 큰 모험은 그의 삶에 있어서 필히 거쳐야 할 팔자였는지도 모른다. 그 까닭은 그는 전 생애에서 그가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옳다고 믿었던 때는 가장 가까운 식구들이나 언론 등의 혹평이 심해도 두려워 행동에 옮기는 것을 외면해 본 일이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일생을 통하여 일관되었던 행동 선택의 기준은 그것이 쉬운 길이냐, 어려운 길이냐는 문제가 안 되었다. 그저 그 일이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냐, 아니냐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너무 충격이 컸을까? 그로부터 5년, 그는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심한 흑색선전에 시달렸던 그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는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흑색선전 만이었으면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헤쳐 나갈 정주영이 아니던가? 그는 당시 김대중 후보 보다는 김영삼 후보를 집중 공략했었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또 다시 민자당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나라가 망할 것이다. 경제도 모르고 권력으로만 경제인을 억누르려는 민자당 정권에게선 결국 집권 후반기 국가 경제가 대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게 말한 근거에는 계속해서 추락하는 경제성장률과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외채가 있었다.

이렇게 공격해대는 정주영 후보를 두고 민자당 쪽에서 가만있을 리 없었다. 정주영은 물론 현대에 극심한 압력을 넣었다. 대통령 낙선 후 현대그룹 계열사가 세무조사를 받고 정주영은 대통령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다. 1993년 2월 정 전 회장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했고, 정치 도전에 대한 꿈을 접었다. 어쩌면 낙선이라는 것보다는 이 거센 압력이 그를 무너져 내리게 하는 데 결정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그가 예언 능력을 가진 정도령이 맞았을까?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으로 보아서는 정도령은 될 수 없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겨우 면했지만, 1997년 12월 결국 한국은 금융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다. 이후 국가부도사태를 겨우 면했지만 국민은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빠졌다. 사람들은 이날을 씻을 수 없는 “경제 국치일” 쯤으로 여길 정도였다.

 훗날 정주영은 회고했다. 

“어떤 이들은 내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것을 두고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라는 나의 결정적 실패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낙선이라는 쓰라린 아픔도 맛보았고, 보복 차원의 압력을 수없이 받았지만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YS를 뽑았던 국민의 실패이며, 동시에 나라를 거덜 낸 YS의 실패다. 다만 내가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거기에서 떨어졌을 뿐이다. 따라서 내게는 후회할 일도 없다.” 

역시 정주영다운 말이다.

 

김영조 기자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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