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 등록 2014.11.03 15:49:21
크게보기

유감스런 재능기부

 [그린경제/얼레빗=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함께 공연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공연이 끝나면 의례 받았던 꽃다발들을 차에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던 말이다.

"아빠, 엄마! 공연을 하면 사람들은 돈은 안주고 왜 꽃다발만 주나요?
꽃만 받아서 어떻게 살아요.
차라리 돈이나 과자 아니면 장난감으로 주면 더 좋을 텐데요"

그렇다. 우리 부부는 꽃을 먹고 산다. 오래 전 아내가 독창회를 했었을 때는 화환과 꽃다발이 하도 많이 들어와 연습실 1층 유리문 주위의 안팎으로 빼곡히 진열해 놓았더니 어떤 여인이 앞을 지나다가 화원인 줄 알고 꽃을 사러 들어왔던 적도 있다.

공연이 점점 늘어나는 것은 음악가로서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제적으로 실속이 없는 공연 의뢰도 참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문화 행사들이 예산이 열악한 상황에서 준비되다 보니 소위 재능기부를 청하는 경우가 많고 작은 거마비가 미안하니 꽃다발이라도 큰 것으로 준비하여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일이겠다.

그러다 보니 어린 두 아이들도 어느새 분위기를 파악하고 예술가 부모의 애환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꽃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투덜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럴 때면 우리가 가진 예술적 재능도 경제적 용어로는 하나의 재물이니 부자들이 돈으로 남을 돕는 것처럼 우리가 노래를 불러 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좋은 기부라고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 가족이 함께 공연하고 있는 K팝페라 그룹 듀오아임(주세페김, 구미꼬김)

우리 부부는 재물도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니 우리가 비록 가난하더라도 쌓아 두기보다는 남에게 베풀며 살자는데 생각을 같이 하며 산다. 또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 아껴서 무엇 하랴" 는 생각으로 젊고 건강할 남에게 베풀자는 마음으로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는 그냥 부르면 노래하러 오는 재능기부 가수들로 각인된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주위의 지인들도 우리 부부가 좋은 사람들이지만 실속을 못 챙기고 사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분들도 많았었다.

그러다 아차 싶어서 우리도 이제는 음악으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공연기획사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 부부를 초대했던 사람들의 재능기부 인식은 수 년 간 쉽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를 한탄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우리 부부가 베푼 재능이 받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의 마음 속에 아직까지 시들지 않는 꽃으로 피어 있고 때로는 보석으로 영롱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많이 얘기하는 재능기부에 대하여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이 시대에 재능기부라는 용어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부적절한 표현일 수 있으니 제발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한다.

최근 문화융성의 정책을 표방한 시대를 맞아 은근히 기대감을 가졌던 주위의 동료 예술가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여러 불만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뭔가 문화융성의 분위기는 있는 듯은 한데 대부분 재능기부를 요구 무료 출연을 요구하며, 때로는 강요까지 하는 상황까지 있어 참으로 골치가 아프다는 것이다.

재능기부 영수증으로 쌀도 바꾸어 먹고, 아이들 장난감도 사주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도 할 수 있는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공연장 대관료도 공제해 주는 그런 재능기부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

기부의 원리는 간단하다. 기업이 좋은 일을 위해 돈이나 현물을 기부하면 기부금 영수증으로 세금의 혜택을 주기에 부의 사회 환원을 위해서는 참으로 권장되고 더욱 발전되어야 할 제도이다. 그런데 소위 예술가들의 재능기부는 어떠한가. 우리들 중에 재능기부영수증을 발급받은 예술가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그 근본적인 문제이다.

좋은 의도로 만든 재능기부가 실제로는 자칫 재능착취로 전락되고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않고 봉사해 온 예술가들의 순수한 마음을 높이 인정해 주자는 취지로 마치 기업이나 부자들을 명예롭게 하는 기부라는 용어를 예술가들에게도 부여했다는 의도는 존중되어야겠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재능기부에도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방식의 기부영수증 같은 제도가 기본적으로 도입되어야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 김 동규 (예명_ 주세페 김 Giuseppe Kim)

   
주세페 김동규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팝페라테너, 예술감독,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음악칼럼니스트).
소프라노 구미꼬 김(Gumico Kim)과 함께 팝페라그룹 '듀오아임'이라는 예명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duoaim.com
유튜브(듀오아임) www.youtube.com/duoaim 
 

김동규 음악칼럼니스트 duoaim@naver.com
Copyright @2013 우리문화신문 Corp. All rights reserved.


서울시 영등포구 영신로 32. 그린오피스텔 306호 | 대표전화 : 02-733-5027 | 팩스 : 02-733-5028 발행·편집인 : 김영조 | 언론사 등록번호 : 서울 아03923 등록일자 : 2015년 | 발행일자 : 2015년 10월 6일 | 사업자등록번호 : 163-10-00275 Copyright © 2013 우리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ine996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