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마고할미는 하늘에서 내려온 여인이며(충북 단양), 본디 하늘에 살던 하느님의 딸이었다(지리산).
② 키가 하늘에 닿아서 해를 가리고(경남 통영), 한라산 꼭대기를 베개 삼아 베고 누우면 발은 제주 앞바다 관탈섬에 얹혔고(제주), 옷을 입고 춤을 추자 삼남 지방에 그늘이 져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충남 바닷가).
③ 자연을 만드는 힘이 있어서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다가 터진 구멍으로 흘러서 오름들이 되고, 마지막 날라다 부은 흙은 한라산이 되었으며(제주), 임금님에게 쫓겨나서 주리고 목이 말라 흙을 먹고 바닷물을 마시다가 설사를 하였더니 우리 강산이 되었고(충남 바닷가), 치맛자락에 담아 오던 금은보화를 다급하게 바다에 내버려서 장좌섬이 되었으며(경남 통영), 장독 바닥에 깔려고 치마에 싸서 가져가던 모래가 해진 치마 구멍으로 흘러서 신선너덜이 되었고(경남 산청), 잃어버린 비녀를 찾느라고 손으로 땅을 헤집은 것이 아흔아홉 마지기 논이 되었다(충북 단양).
④ 힘이 엄청나게 세어서 커다란 바위로 공기놀이를 하고(경남 산청), 평평한 바위는 머리에 이고 길쭉한 바위 둘은 겨드랑이에 끼고 뭉툭한 바위는 등에 지고 와서 고인돌을 만들어 살았으며(황해 봉산), 고생하는 장수들을 돕느라고 바위를 날라다 고인돌을 만들어 주고(평남 영덕과 맹산, 전북 고창), 물렛돌을 하려고 치마에 싸서 가져가다가 작다고 내버려서 돌장승이 되고(경남 진주), 선돌이 되고(충북 제천), 고인돌 핑메바위가 되었다(전남 화순).
⑤ 신통력이 놀라워서 도술을 부려 하룻밤에 폐왕성을 쌓고(경남 거제), 혼자서 성을 쌓아 독녀성이 되고(경남 산청), 할미성이 되었다(경기 용인).
⑥ 오줌발이 굉장히 힘차서 성산 바닷가에서 일출을 감상하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식산봉과 일출봉 사이에 발을 디디고 앉아 오줌을 누었는데 오줌발이 파낸 곳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우도가 섬으로 떨어지고(제주), 하룻밤에 성을 다 쌓고 나니 날이 훤히 새고 소변이 마려워 오줌을 눈 것이 냇물이 되어서 지금까지 흐르고 있으며(경남 통영),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인 핑메바위 위에 앉아 오줌을 누어서 구멍이 뚫려 있다(전남 화순).
⑦ 옷을 벗고 살아서 속곳 한 벌만 만들어 주면 뭍(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했는데, 속곳 한 벌에 명주 백 통이 들어 제주 백성이 있는 명주를 모두 모았으나 아흔아홉 통밖에 안 되어 속곳을 만들지 못하니까 다리를 조금 놓다가 그만두어 그 자취가 조천읍 앞바다에 남아 있고(제주), 키가 무척 커서 나뭇잎으로 겨우 아랫도리를 가리고 살면서 옷을 해 입는 것이 소원이라 임금님에게 빌었더니 삼남의 공포 한 해 치를 모두 주어서 옷을 해 입고는 좋아라고 춤을 추자 삼남 지방이 온통 햇빛을 보지 못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충남 바닷가).
⑧ 도사 반야를 사랑하여 딸 여덟을 낳아 팔도 무당의 시조로 만들었고(지리산 반야봉 전설), 불제자 법우화성을 남편으로 맞아서 여덟 딸을 낳아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게 했다.
─ 이능화, 《조선무속고》
이처럼 우리 강산 곳곳에 ‘마고할미’가 이야기로서 널리 살아 있지만, 가장 깊이 뿌리박힌 자리는 아무래도 지리산일 것이다. 지리산은 우리 겨레에게 가장 줄기찬 우러름을 받아 오는 뫼다. 백두산보다는 사람이 다가들기에 한결 부드럽고, 한라산보다는 언저리에 붙어 살아가는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지리산은 곧 마고할미의 터전이다. 마고할미는 지리산의 산신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리산을 우러른다는 말은 지리산 산신령인 마고할미를 우러른다는 뜻이다.
이런 우러름이 언제 비롯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예로부터 삼한의 백성들이 하도 굳은 믿음을 걸고 살았기 때문에 나라를 다스리는 왕실이 지리산 마고할미를 끌어안기에 안간힘을 다했다.
먼저 신라는 삼한을 통일하면서 지리산을 남악으로 삼고 산신령 마고할미를 시조 박혁거세 임금을 낳아 준 ‘서술성모(선도성모)’라며 끌어안았다. 그래서 꼭대기에 ‘남악사’를 세우고 남쪽 등성이에 ‘노고단’을 무어서 왕실이 봄가을 제사에 게으르지 않았다. 신라를 이어받은 고려는 산신령 마고할미를 왕건 태조 임금을 낳아 준 ‘위숙성모’라며 끌어안고는 남악사를 헐어 내고 ‘성모사’를 세워 노고단 제사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이렇게 통일신라나 고려 왕실이 마고할미를 그들 시조의 어머니로 끌어안은 이야기는 그분의 위력이 시들해진 뒷날의 자취에 지나지 않는다. 고조선 시절에는 이보다 훨씬 드높고 힘센 신격으로 우러름을 받았던 자취가 있다.
중국 하북성 천진의 발해만 바닷가에도 ‘마고성(麻姑城)’이 있는데, 한나라 무제(기원전 141년~87년까지 다스림)가 동녘을 둘러보면서 여기에 이르러 마고할미에게 제사를 올렸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권3, 1461). 제사를 올리던 때가 한 무제의 고조선 침략 앞인지 뒤인지 알기는 어렵지만, 고조선 사람들이 믿고 우러르던 마고할미의 위력을 한 무제까지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마고할미’는 과연 누구일까? 신라 충신 박제상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는 ‘마고할미’를 ‘지상에서 가장 높은 마고성에서 현세 만물을 만들어 낸 창세의 어머니’라고 했다. ‘마고’는 선천을 남자로 삼고 후천을 여자로 삼아 배우자 없이 궁희와 소희라는 두 여인을 낳고, 또한 궁희는 선천과 후천의 정기를 받아 배우자 없이 황궁씨와 청궁씨를 낳고, 소희는 백소씨와 흑소씨를 낳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들 네 천인과 천녀가 율려로써 세상과 사람과 그것들이 살아가는 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갑골문의 권위자인 유창균 교수는 ‘하늘과 땅을 춤추고 오르내리며 이어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린 갑골문 ‘巫(무)’의 소리가 ‘마기’인데 그것이 곧 ‘마고’라고 했다(2007년 5월 26일, 우리말교육대학원 특강 끝에 필자와 나눈 대화에서). 그러니까 ‘마고할미’는 ‘하늘과 땅을 춤추며 이어 주는 사람’, 곧 태초의 무당이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