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 해 설 > 방천의 사전적 의미는 둑을 쌓거나 나무를 심어 냇물이 넘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을 말한다. 그 둑을 방천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각주를 달아 “두만강이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지역. 중, 조, 러 3국 국경이 인접해 있다. 중국 쪽으로는 해변에 닿을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어 사전적인 의미와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방천’은 훈춘 지역의 한 지명으로, 3국의 국경이 인접해 있는 한 마을의 이름이다. 국경 초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이 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로 많은 유람객들이 찾고 있다.
우리에게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라는 노래로 잘 알려져 있는 두만강은 양강도 삼지연군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0킬로메터의 긴 강이다. 두만강은 수세기 동안 한국ㆍ중국ㆍ러시아의 세력 각축장인 동시에 완충지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두만강은 또한 중국ㆍ러시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국경하천으로서 수많은 우리 선조가 이 강을 건너 간도지방으로 이주했기에 민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강이다. 이 강의 의미를 시인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방천에 와서 짚어보는 것이다.
화자가 바다를 향해 외치는 식으로 전개되어 시의 호흡이 굵고 시의 흐름이 당당하다. 이 시가 의미심장한 것은 이런 호탕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 쪽에서는 해변에 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다가 바로 지척이지만 “햇볕에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바로 국경경비선이라 시인은 월경할 수 없다. 강물은 아무 거리낌 없이 동해로 가지만 시인의 발걸음은 이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 자신의 몸은 분명히 한민족 조선인이지만 국적은 중국인이다.
그래서 두만강을 따라 죽 오다가 동해에 닿을 찰나에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가시철조망을 만나니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는데, 그것이 소금 맛이다. 입술 깨물어 삼키는 맛 또한 짜디짠 소금 맛이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이다. 민족과 국적이 동일하지 않은 데서 오는 한이 이 시에 절절이 배어 있어 진한 감동을 준다. [이승하(한국 중앙대 교수) <연변조선족 시인의 자기 정체성 찾기 노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