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의 한 페이지로 남은 엄마의 학교

  • 등록 2019.05.15 11: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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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12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학교”하면 누구든지 백양나무 우거진 넓다란 운동장,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화단, 글소리 랑랑히 들려오는 아담한 교실, 뽈소리, 노래소리,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들려오는 유리창문의 큰집을 눈앞에 그려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우리 엄마들은 학교를 얼마나 부러워했을까? 그러던 1954~1955년 가을이라고 기억되는구나! 하루는 엄마가 나보고 “정부에선 문맹퇴치를 하라는구나. 우리를 눈뜨게 해준단다.” 하시면서 환한 웃음을 피우시더구나. 나는 어리둥절하여 “엄마, 문맹퇴치가 먼데?”

“우리를 글을 배우라는구나. 눈을 뜨라구…”

“머요? 그럼 엄마두 나와 같이 학교에 붙어요?”

“글쎄, 나두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기회에 배워야겠는데… 후유…”

 

며칠 후였단다. 엄마는 웃으면서 “됐다. 나도 글을 배우게 되였단다. 이젠 우리집이 ‘엄마의 학교’로 되는 거야.”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말똥말똥 엄마만 쳐다보는데 엄마는 “내가 집일도 해야겠기에 우리집을 내놓아 엄마네 학교로 하자구 하였단다.” 하시더구나. 이튿날 엄마는 산에 가서 보얀 흙을 파다가 집벽을 깨끗이 매질하고 집 깔개도 말끔히 닦더구나.

 

또 그 이튿날엔 글쎄 내가 학교 갔다 오니 우리집 뜨락에서 숱한 마을 엄마들이 왁작 웃으며 떠들지 않겠니? 내가 어른들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와- 멋쟁이 우리 엄마가 서있었지. 흰 저고리, 검은 짧은치마, 얼굴엔 담뿍 미소를 담고 있었는데 쪽쪘던 그 머리는 보란 듯이 굽실굽실 파도를 치는 것이 딱 시내 아재들 같이 멋쟁이더구나! “와~ 우리엄마 시내 엄마처럼 멋있구나!” 내가 좋아서 퐁퐁 뛰는데 “너네 엄마 시집간단다.”하고 누군가가 퉁명스레 폭 소리 지르더구나.

 

“머람둥? 우리엄만 안가. 아니 못가” 하면서 나는 눈물범벅이 되였단다.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는 중에 엄마는 얼른 나를 끌어안고 “나두 시대를 따라 멋있게 하고 공부하려구 그런단다.”

 

내가 눈물을 씻고 일어나 보니 과연 엄마 말고 또 다른 두 명의 동네 엄마들도 멋지게 파마머리를 하였더구나! 과연 그 이튿날에는 마을의 쪼므래기들이 수수댕기를 휘두르며 소리치는 중에 마을 청년들이 “문맹퇴치 야학실”이라는 커다란 나무간판을 우리집 바깥벽에 정중히 걸어 놓더구나! 나는 좋아서 손벽 치며 퐁퐁 뛰고 동네 할아버지들두 저만치에서 “세월이 좋구나!” 하시더구나!

 

그때는 농한기여서 첫날 공부는 오후에 하시더구나! 그날은 우리 80여 호인 백의민족 다부락에 큰 경사가 있는 날이었단다. 맑게 개인 하늘의 햇님도 방실 웃어주고, 울타리 안의 금전화(가을에 피는 담황색의 꽃)도 방실방실, 애들도, 강아지들도 좋아서 뛰놀아대였지. 마을분들은 마당에 들어서면서부터 지휘자도 없건만 노래도 부르고 덩실덩실 춤도 추면서 웃음꽃을 피웠단다.

 

 

이윽하여 교실로 들어가서 흑판을 마주앉았단다. 선생님은 서른 살도 채 안 되는 마을의 김만수 삼촌이었단다. 선생님은 웃으시며 문맹퇴치를 위해선 곤란을 극복하고 열심히 하여 글 못 배운 설음을 이겨 눈떠보자고 하시였단다. 그리고 자기도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하시더구나!

 

첫 시간에는 “아리랑” 노래를 배워주셨는데 얼마나 열심히들 부르시는지 “지금도 “아리랑”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단다. 두 번째 시간부터 우리글 자모부터 배우더구나! 이렇게 그 다음날부턴 혹은 낮에 혹은 저녁에 등잔불 두개씩 켜놓구 글을 배우더구나.

 

이렇게 한 글자 두 글자씩 배우고 련습시간이 없을 때면 일하다가 휴식시간에 나무오리로 땅에다 혹은 모래에다 글 쓰는 련습도 하더구나! 그리고 그때는 학비를 내는 법도 없었고 또 선생님도 돈을 받는 법이 없었지만 모두들 즐거움으로 행복감에 사로 잡혀 있었다는구나!

 

엄마도 끝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단다. 엄마는 마치 지금의 그 어느 중점대학교 통지서나 받은 것처럼 그 졸업증을 보고 또 보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엄마의 학교는 비단 엄마의 인생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전반 사회가 문맹을 퇴치하던 영원한 추억으로 력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김영자 작가 15694331966@16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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