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보골”이란 말은 이미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지 퍽 오랜 것 같다. 하나의 말도 사회발전과 더불어 더 널리 펴져 사용되는가 하면 또 어떤 말들은 차츰 저절로 소실되어 가고 있다. 이를테면 정치 술어들인 ‘대약진’, ‘인민공사’나 생활 술어들인 ‘방치돌(다듬잇돌)’, ‘대명대(홍두깨)’, ‘윤디(인두)’, ‘가대기(밭을 가는 기구의 하나)’, ‘곡괭이’ 등 수두룩한 가운데 “보골”도 어느덧 사라져 버렸구나!
“보골”은 지금 “례물”로 대체 되어 쓰이고 있지만 사실 “보골”과 “례물”은 다른 점이 있단다. “보골”이란 곧 시집간 딸이 첫걸음으로(삼일에 오는 것이 아니란다.) 본가 친정집에 왔다가 다시 시집으로 돌아갈 때 딸한테 “사돈집에 보내는 첫인사”란다. 그것은 “떡보골” 이렇테면 찰떡보골, 증편*보골, 만두기*보골 등등 “떡보골”이 있는가 하면 그보다 더 인기 있고 고급스러운 “엿보골”이 있었단다. 지금 보면 별로 가치도 없고 우습게 보이지만 엄마네 그 시대엔 아주 고급이었다고 하는구나!
상상하여 보렴. 그때엔 사탕 구경만 하자고 해도 5-6리밖의 농촌공소합작사*에 가야 했단다. 물론 먹으려는 생각이야 못하였지. 혹여 한족 “홀롱재”(그때는 그런 장사군을 왜서인지 홀롱재라 불렀단다.)들이 약간의 아이들 먹을 것을 멜대에 메구 “딸랑딸랑” 혹은 “딩동댕동”하면서 방울소리를 내면 동네 아이들은 좋아라고 그 “홀롱재”를 졸졸 따라다니며 눈구경 하였다 하는구나! 그러니 그 시절에 “엿 한 소래”가 얼마나 인기였겠니? 하기에 엄마도 시집갔던 언니가 집에 왔다 갈 때면 그 “보골”에 성의를 쏟았겠지.
언니는 우리 집에서 큰딸로 태어나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사랑까지 독차지하면서 곱게 자랐단다. 아버지를 똑 떼여 닮았다는 반양머리*, 쌍겹진 커다란 두눈, 동그스럼한 얼굴형의 언니는 일어, 조선어, 한어를 제법 잘하였고 운동도 퍽 잘하는 명랑한 아이였단다. 그러나 할머니,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시자 그 운명이 바뀌어 “밥 한 술 더 줄이자”는 삼촌의 뜻에 따라 조양천 근민중학교 (지금의 조양천1중)에 다니던 언니는 시집가게 되었단다.
언니는 엄마보고 “엄마, 나 공부 다 하고 시집가면 안돼요?”
“당사자가 좋다는구나! 집에서 고생말고 가거라.”
엄마의 서글픈 대답이었단다.
“나 공부 더하고 싶은데……”
“동생들도 많은데 엄마 혼자서 어떻게 공부시키겠니?” 삼촌의 대답이었단다.
하여 언니는 설움에 목이 꽉 메더란다. 언니는 19살에 “이십오시*”타고 시집이라 갔단다. 그때 나는 겨우 네댓 살이어서 그저 “꽃을 단 마차”가 왔었댔다는 기억밖에 없구나! 그때 고아로 삼촌집에서 자랐다는 남편한테 시집간 언니는 시삼촌네와 잠시 같이 지냈다는구나! 남편은 연길에서 공작하여 언니는 면목없는* 집에서 시집살이하였단다. 그래서 언니는 집에도 자주 못 왔다는구나!
그 후 퍽 오래되어 언니가 집에 처음 왔는데 엄마는 언니가 아까워 울더구나! 언니가 돌아갈 날이 되었더란다. 엄마는 “보골” 준비에 돌아쳤단다*. 옥수수를 맷돌에 보드랍게 갈아 누룩을 넣어 삭히고 엿물을 짜서 천천히 끓여서 걸쭉한 물엿을 만들었단다. 그다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그 물엿을 치고 당기여 흰색으로 되면 가위로 고르게 베어 엿가락을 지었단다. 그 엿가락을 고운 그릇에(그때엔 꼴로 곱게 바구니를 만들어 담아 주었단다.) 오붓이 담아 정성 들여 고운 보자기에 꼭 싸서 “엿보골”로 딸한테 이워* 보냈단다.
이렇게 엄마의 사랑과 정성까지 이고간 그 “엿보골”은 시집에 가면 “며느리 자랑”, “사돈집 자랑” 보따리로 변하여 온 동네가 맛을 보면서 “새며느리” 칭찬에 열을 올린단다. 그때면 언니도 마음이 흡족하고 시집에서도 잘 대해 준단다. “보골”의 차이에 따라 며느리급 대우도 다르다고 하더구나! 하기에 친정 엄마들은 그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그 “엿보골”엔 정성을 들여 딸에게도 좋고 사돈집에도 기분 좋은 인사를 올렸다는구나! 이 풍속은 우리 백의민족의 문화풍속 하나로 오랫동안 전해졌다 한다.
이렇게 전해져 내려온 “엿보골”은 사랑과 정이 넘쳐나는 “보골”이였고 사돈 친척들에 공경을 표시하는 “보골”이였으며 딸을 극진히 사랑하고 또 사돈들도 딸을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에서 올리는 “행복의 보골”, “사랑의 보골”이었단다.
이런 “보골” 풍속은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 무대에서 스스로 퇴출되었지만 백의민족의 그 하얀 빛은 아직도 고스란히 우리들 마음속을 비추고 있단다.
<낱말 풀이>
* 증편 : 여름에 먹는 떡
* 만두기 : 멥쌀가루를 반죽하여 찐 것을 얇게 밀어 팥이나 강낭콩으로 만든 소를 넣고 반달같이 빚은 떡
* 농촌공소합작사 : 한국의 지역농협
* 반양머리 : 반곱슬
* 이십오시 : 꽃마차
* 면목 : 남을 대하기에 번듯한 도리
* 돌아치다 : 분주히 돌아다니다.
* 이우다 : 얹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