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의 지원 약속, 지켜지지 않았다

2020.11.23 22:55:51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9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미국은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다민족 사회이어서 각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키워 감으로써 미국문화의 다양성이 미국의 국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 미국악원 정기연주회에는 이동엽 외 13명이 궁중악무와 민속악무를 발표하였는데, 윌셔이벨 극장 1,200석 좌석이 교포와 외국인들로 만석이어서 이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한국인 민속보존단체의 탄생 이야기를 소개한다.

 

 

1977년 1월의 일이다. 미주의 국악인들이 어떻게 하면 전공분야를 살려가며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해 오던 김동석은 고민 끝에 로스앤젤레스시 커미셔너로 있던 이천용 씨를 통해서 당시 지역사회의 유색인종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있는 CCDS(Community Care Development Service)의 회장을 소개받게 되었다. 그를 통해서 <한국민속보존단체>-(Korean-American Ethnic Heritage Group)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업 보장 프로그램의 하나인 CETA 기금을 신청하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 CCDS는 연 7백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운영하는 기관인데, 주 임무는 어린이보호와 지역사회의 건강문제, 고용의 증대와 영양식 배급, 그리고 불우아동의 지원 등 사회사업을 하는 단체인 것이다. 그런데 유색 인종들의 고용 증대라는 차원에서 재미국악원 외에 새로운 국악인들을 포함, <한국민속보존단체>라는 이름을 짓고 당당하게 회원단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문화단체의 이름이 바로 <한국인 민속보존단체>이다.

 

당연히 김동석은 예술감독이 되었고, 연방정부로부터 12만 달러의 운영자급을 받게 되어 10여 명, 국악인의 생활비로 지급이 시작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국악인들의 생계지원금을 받기가 어려운 실정인데, 미국의 주정부를 설득하여 이러한 사업을 성사시켰다는 점은 그의 타고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다음 해에는 10여 명의 2배인, 20여 명의 단원이 혜택을 입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한국민속보존단체>의 단원들은 연방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고 주당 40시간 근무를 이행해야 해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방문,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비롯하여 한국의 역사, 한국음악의 실제 연주와 춤 공연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역의 불우이웃을 위해 사회단체의 봉사활동도 해 왔다고 한다.

 

 

 

 

아마도 미주 땅에서 처음으로 한국음악을 전공한 국악인들에게 우리의 전통음악과 무용을 공연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일이 아닌가 한다.

 

그동안 모든 공연은 한국사회 미디어에는 <재미국악원>이란 이름으로 해 왔고, 또한 미주 사회에는 <한국인 민속보존단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하였다. 1980년 말까지 이 프로그램을 통해 거의 60여 명의 국악인이 혜택을 입었다고 한다. 그동안 월 20회 이상의 공연을 하게 되어서 프로그램이 계속된 2년 동안, L.A 근교의 모든 행사장과 학교 등, 많은 장소에서 200회 이상의 공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9년의 일이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인 지미 카터 대통령에 (1977-1980) 의해 만들어진 소수민족 우대 정책 가운데 하나였던 이 CETA program 제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1977~80년 사이에는 민주당 카터 대통령이 재임했고, 그 후로는 공화당의 레이건(Ronald Regan)이 대통령이 되어 공화당의 새로운 정책으로 인해 이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끝나게 되었다.

 

더불어 <한국인 민속보존 단체> 예산도 1980년을 끝으로 종료하게 되었다. 그동안 2년에 걸쳐 받아왔던 모든 혜택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 혜택을 받아오던 동료들의 앞길이 다소 난감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한국 전통음악과 춤이 미주 땅에 걱정없이 정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에 대해 고심하게 된 것이었다.

 

1980년 3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한국에서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단원이 환영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 음악을 듣게 된 당시 국방장관(주영복)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우리 “한국인 민속보존단체”가 미 정부의 예산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 공화당 집권으로 인해 이 단체가 12월 말로 해산되게 되었다고 하니까 이 단체가 영구히 미주에 정착하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가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신중하게 그러나 심각하게 “한해에 30만 달러가 필요하다.”라고 했더니 그는 아주 흔쾌히 그 정도야 “대통령과 상의해서 매년 30만 달러의 기금을 확보하여 주겠다”라고 약속을 하여 단원들은 모두 환성을 지르게 되어 한국정부에 감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를 어쩔 것이냐!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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