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포레, 무언가

2020.11.25 12:16:45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사랑하는 음악 듣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7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늦은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요즈음 나를 사로잡은 음악이 하나 있다.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무언가 3번’이란 피아노곡이다. 3분 안쪽의 짧은 곡인데 한 번 듣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포함해서 몇 번이고 듣지만 주로 이 한국인의 연주를 우선 듣는다.​

 

무언가라면 무언(無言). 곧 가사가 없는 노래라는 뜻이겠지. 피아노곡은 원래 노래 없이 연주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라고 하면 무언가 정말 드러내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프랑스 사람인 작곡자 포레가 붙였을 원제목은 불어로 ‘Trois romance sans paroles’라고 해서 ‘무언의 3개 로망스’라고 뜻인데 그냥 무언가라고 부른단다. 포레의 작품번호 17번인 이 곡은 3곡인데 그중에 3번째 곡이 글자 그대로 로망스의 분위기가 나는 곡이다.

 

 

‘로망스’라고 하면 우리는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장조를 처음 듣고 그 두근거림과 달콤함에 곧 빠진 기억이 새로운데 이 곡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런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느낌과 함께 이 곡과 관련된 어느 한 분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에게 이 곡은 파리에 거주하면서 유럽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백건우 씨가 연주한 것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 자켓 사진으로 올라와 있는 백건우 씨와 평생을 같이한 분, 짐작을 하겠지만 바로 배우 윤정희 씨다.

 

이 곡을 들으며 왜 왕년의 여배우가 생각나는 것일까? 바로 윤정희 씨가 이 곡을 가장 좋아해서 남편에게 자주 연주해달라고 했다는 소문이고 그래서인지 백건우 씨가 한국에서 음반을 내거나 연주회를 할 때 이 곡을 빠지지 않고 연주하고 있다는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5년 전 이맘때인 2015년 11월 23일, 그날도 올해와 같은 월요일이었는데, 예술의 전당에서 뮌헨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연주한 백건우는 기립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에게 이 포레의 무언가 3번을 연주해주었다. 그날 그 연주를 들은 사람들에게 백건우 씨는 화려하고 웅장한 베토벤의 협주곡보다도 이 포레의 곡이 진정으로 내가 사랑하고 자신을 대변하는 곡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보다 앞서 2007년에 파리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프로코피예프를 연주하고 나서 앙코르곡 요청을 받고 연주한 곡도 바로 이 곡이었다. 당시 음악평을 보면 역시 방금 전의 치열한 전투를 잊게 하고 차분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로 모두를 평안한 안식의 시간으로 인도했다고 했다. 2001년 백건우 씨는 포레의 곡만으로 앨범을 하나 냈는데, 그 앨범의 첫 곡을 역시 포레의 이 무언가로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부인인 윤정희 씨에게 헌정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처럼 이 곡을 백건우 씨도 좋아한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2016년에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백건우 씨는 말한다;​

 

“가브리엘 포레의 음악세계를 늘 귀하게 생각하고 아껴왔어요. 같은 프랑스 작곡가들과 비교해도 고상하고 성스럽기도 한 귀공자 같아요. 그럼에도 쉽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음악이죠. 고전주의도 인상주의도 아닙니다. 옛 것과 현대의 감각을 절충해서 자신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이룬 포레 같은 예술가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 곡에 대해서는 음악학자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나로서는 이 곳이 멘델스존의 피아노 곡 ‘무언가’ 중에서 ‘베니스의 뱃노래’를 많이 연상시킨다고 느꼈다 ‘무언가’라는 형식도 멘델스존이 먼저 시작한 것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개 왼손으로는 반주를 하고 오른손으로 가볍게 멜로디를 연주하는 기법이 쓰여지고 있다. 멘델스존의 뱃노래는 클래식 기타를 배울 때 나도 기타 용으로 편곡된 것을 연습하고 외워서 치기도 했는데 베니스의 바닷물이 출렁이는 느낌의 반주음에 차분한 멜로디가 둥둥 곤돌라처럼 떠다니는 듯한 그런 곡이 여러모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멘델스존의 무언가 중에 베니스 뱃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1830년대 초라고 한다면 포레의 이 곡은 그가 파리의 '니데르메이에르' 음악학교 재학 시절인 1863년에 작곡한 것이니 충분히 멘델스존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곡의 왼손 화음은 기타의 아르페지오처럼 분산음으로 올라가는데 그 기법으로 본다면 천재 기타리스트인 스페인 출신의 페르난도 소르(1778~1839)가 쓴 OP 29-13 연습곡과 아주 이미지가 일치한다. 이 곡도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 아르페지오만으로 곡을 진행하면서 거기에 멜로디를 얹어놓아 물 흐르는 듯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곡이다. 아무튼, 이 말은 포레의 이 무언가 3번이 기타로 편곡해도 좋을 정도로 서정적이고 편안하고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가브리엘 포레라고 하면 독일의 고전파 음악을 많이 듣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작곡가는 아니지만, 스승이자 친구인 카미유 생상의 뒤를 이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로서 주로 피아노곡을 많이 쓴 분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피아노곡들은 화려하거나 요란한, 혹은 몹시 어렵게 하는 식의 거창한 스타일이 아니라 프랑스적이라고 할,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함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이 곡은 포레의 작품 가운데 맨 처음으로 출판된 곡이라는데 그때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런 순수한 감성의 세계를 잘 그려냄으로써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애청곡이 된 것이라 하겠다. 포레도 70에 접어들면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가운데에 작곡을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 조금은 곡이 현란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요란해졌다고 하는데, 그러기 전에 10대 후반의 청순한, 청명한 감성의 풍경화가 이 작품의 매력이 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내가 이 백건우 씨의 이 곡에 대해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일종의 죄송함에 대한 보상심리와 연결되어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1988년 겨울에 나는 파리에 가서 이응로 화백을 다큐멘터리로 취재해서 그 다음해 초에 그의 미술세계를 중심으로 방송을 했는데, 방송이 나간 후에 백건우 윤정희 부부가 왜 이북의 앞잡이로 간첩노릇을 한 사람들을 KBS가 미화하는 방송을 하느냐고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물론 나는 이 방송을 만들면서 두 사람이 간첩이 아니라거나 윤정희 씨를 납치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니라고 말한 것은 없고 이응로 화백이 동베를린 사건이라는 정치적인 사건에 휩쓸려서 오랫동안 우리 대한민국이란 조국을 잊고 살아온 점을 지적하고 그의 예술적인 귀향(歸鄕)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인데, 백건우 윤정희 두 분은 아마도 KBS가 방송한 것 자체가 마치 이들을 정당화시켜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그 방송은 ‘납치사건’과 관련된 것은 없었지만 당사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데서, 두 분을 보면 미안한 마음을 가졌던 그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다가 백건우 씨가 연주한 포레의 이 곡을 듣게 되면서, 또 두 분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니 이 곡을 더 듣게 되고 그러다가 어느새 좋아지게 된 것이다.​

 

요즈음 윤정희 씨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이 가을의 을씨년스러운 날씨처럼 좋은 소식은 아니다. 가끔 만나는 건축가 김원 씨는 두 부부와 무척 가까운 사이로서 중요한 음악회에는 국내건 나라 밖이건 되도록 참석해 응원을 해주는 사이인데, 치매에 두 종류의 치매가 있다면 윤정희 씨는 말하자면 착하지 않은 치매여서 부군인 백건우 씨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는 말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

 

최근 부인 윤정희 씨가 백상예술대상의 공로예술인상을 받게 된 자리에서 대신 수상을 한 백건우 씨가 기어코 눈물이 터지면서 “윤정희는 항상 90세까지 영화 촬영을 하겠다고, 하고 싶다고 습관적으로 말했습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기억력이 없어지면서도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가슴에 안고 살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라고 한 말이 정말로 가슴에 와닿는다. 그만큼 백건우의 연주는, 그런 세월의 무게를 담아서 연주한 것인 양 느껴지면서, 더욱 가슴을 파고든다.

 

 

포레가 처음 이 곡을 작곡했을 때에는 가슴 속에 한창 새봄을 기대하는 달콤한 꿈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 늦가을로 가고 있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듣는 백건우 씨의 연주는 늦가을에 지나간 봄날과 여름날의 달콤한 추억을 조용히 회상하는 듯한 씁쓸한, 그러나 역시 달콤한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같은 곡이 이렇게 듣는 나이, 시간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우리는 그동안 두 분이 정말로 예술의 동반자로서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아왔다는 소식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 세월이 가서 두 분의 아름다운 사람을 회상하는 시간이 되었기에 지금 백건우 씨의 연주로 다시 듣는 포레의 무언가는 세월의 길이와 무게를 담아 더 명징하고 진중하고 사색적이고 회고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벌써 아침저녁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남아있던 풀잎 위로 흰 서리가 내리는 이 계절에, 영원할 수 없는 사람 삶의 길이, 그러나 그 속에서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애틋한 사랑과 환희, 또는 고통과 애환을 이 곡을 들으며 되새기는 것이다. 하나의 음악, 하나의 노래는, 정말 주인을 잘 만나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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