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원산지 산수유, 일본 정원서 만나다

2021.02.23 22:25:13

[맛있는 일본 이야기 589]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산수유꽃은 전남 구례 산수유 축제를 비롯하여 양평 등지에서도 꽃잔치가 열리는 꽃으로 한국에서는 정원수나 가로수 등으로 흔히 보는 꽃이지만, 일본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이번 글은 일본 교토의 우에노 미야코 시인이 보내온 글이다. 마침 아파트 정원에 심어진 산수유꽃이 활짝 폈다면서 우에노 시인은 산수유꽃에 관한 글과 사진을 여러 장 보내왔다. 아랫글은 일본어 원문을 필자가 한국어로 뒤친 것(번역)임을 밝힌다.

 

 

집 근처에 산수유나무가 두 그루 있다. 이 나무는 관상용으로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심은 모양인데 키가 3미터다. 노란 꽃봉오리를 가지에 붙여 놓은 듯 작은 꽃이 지금 활짝 폈다. 이른 봄 주변의 가로수들은 아직 싹을 틔울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데 산수유는 저 홀로 밝게 피어있다. 햇빛을 독차지한 듯이 환하게 피어있는 산수유 꽃봉오리를 보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산수유꽃을 감상하는데 나무 앞에 산수유가 한반도가 원산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어 있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읽어 보았다. “산수유 : 층층나무과, 한반도가 원산으로 에도시대에 한약으로 쓰기 위해 전해졌다. 이른 봄, 잎에 앞서 자잘한 노란꽃을 피운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한국의 불국사에서 산수유 군락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나무 이름도 몰랐지만 썰렁한 이른 봄, 산수유꽃이 유난히 선명했던 기억이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산길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고 있었는데 참배 길의 안내원이 위험하니 두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걸으라고 손짓까지 하며 거듭 주의하라고 한다. 일본 같으면 “발밑 주의”라는 안내판으로 대신할 텐데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위험하다.”라는 친절한 안내원의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개나리의 노란색을 따라 하지 않은 산수유!” 이는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 계절에 맞는 낱말을 넣어 5.7.5조로 짓는 일본 정형시) 작가 고토우 히나오(後藤比奈夫, 1917~2020)가 노래했다. 그렇다. 봄에 피는 꽃에는 노란색이 많다. 유채, 민들레, 머위 … 그 가운데서도 대지에 왕창 황금빛을 쏟은 듯 활짝 핀 개나리의 존재감이야말로 봄의 여왕 같다.

 

그런데 이 시구에서 작가는 산수유가 개나리의 노란색을 따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말하자면 고토우 히나오 작가는 “따라 하거나 흉내 내지 않고도 노란색을 띠는 산수유에 대한 깊은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흉내 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가지가지마다 꽃을 피웠다. 아직 한기(寒氣)가 남아 있지만, 계절보다 한발 앞서 피는 이른 봄의 선명한 노란색은 산수유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흉내 내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오로지 때가 되어야 피는 꽃은 어느 꽃이나 똑같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채는 작가의 느낌은 한층 늠름하다.

 

 

“산수유 바람에 흔들려 열매를 고집하지 않는다” 이이다 다코츠(飯田 蛇笏, 1885~1962)

 

다시 한번 산수유의 존재감을 더하는 계절이 있다. 바로 가을이다. 산수유는 가을에 젤리를 닮은 새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바람에 흔들린다’라고 한 것은 마치 열매를 맺지 못할 것 같은 발상이지만 이는 작가의 장난기 어린 표현이다.

 

산수유는 떫은 듯하지만 씨를 말린 과육은 생약으로 이용되고 있어 강장제, 지혈, 해열 작용이 있다고 한다. 만약, 하이쿠 시인이 열매를 땄다면, 이 구(句)는 촉감 그대로의 사실을 나타내는 구절을 표현했을 것이다. 작가가 만일 전전(戦前, 1945년 이전)에 이 시를 썼다면 약용 또는 산수유술을 나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 고풍스러움도 흥미롭다.

 

생각해 보면 가을 끝에 빨간 열매가 어떻게 썩어가는지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다. 푸른 잎이 우거진 계절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간다. 해마다 꽃이 필 무렵과 가을 산호색 열매에만 눈을 줄 뿐이다.

 

“노란 산수유는 마을의 옛사람처럼 느껴져” 오오노 린카(大野 林火, 1904~1982)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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