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이지요(5월 5일에)

2021.05.05 11:06:17

현생의 자식은 전생의 부모?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내 나이 어느덧 올해 47살

아이를 낳아 이제야 부모가 되었구나

기르고 가르치는 건 진실로 내 몫이나

수명과 자질은 너에게 달려있다.​

 

내가 만일 70살까지 산다면

25세 된 내 아들 모습 보겠구나

나는 네가 대현이 되기를 바란다만

하늘의 뜻이 어떨지는 나도 모르겠다.​

 

我今行年四十七 生男方始爲人父

鞠育敎誨誠在我 壽夭賢愚繫於汝

我若壽命七十歲 眼見吾兒二十五

我欲願汝成大賢 未知天意肯從否

 

                    ... 소옹(邵雍), 《소씨문견록(邵氏聞見錄)》​

 

소옹(邵雍, 1011~1077)은 중국 송나라 때의 대유학자이자 정치가, 문장가였다. 그의 호를 따서 흔히 소강절(邵康節)로 더 유명한데, 특히 동서고금을 통틀어 주역(周易)에 완전히 달통하여 천지가 돌아가는 운수와 사람의 길흉화복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한 손바닥에 꿰고 있었다고 알려져 그에 따른 일화도 많다. 소강절은 가난 속에서 공부에 심취하여 45살의 늦은 나이에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제자의 누이와 혼인하여 47살에 첫 아이 백온(伯溫)을 낳았다. 늦게 본 자식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시에 절절히 나타난다.

 

신규야 부르면,

코부터 발름발름

대답하지요.​

 

신규야 부르면,

눈부터 생글생글

대답하지요.

 

 

우리 시대 가장 순수한 시인 가운데 하나였던 박목월 선생이 쓴 ‘아기의 대답’이란 이 시는 언어를 배우기 이전 갓난아기 때 말보다 표정이 앞서는 아기의 귀여운 정경이 몽실몽실 전해진다. 신규라는 이름의 이 아기는 박목월 선생의 넷째 아들이자 5남매의 막내로서 1953년생이니까 필자와는 동갑이다. 아직 말을 하기 전의 아기 때라고 본다면 아마도 1954년 언저리에 이 시가 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시(동시)가 쓰인 지 반세기가 훨씬 더 지나도 그 감동은 여전한 것이, 그것이 변하지 않는 천륜을 다룬 것이기 때문이리라.

 

경남 고성 태생으로 젊을 때 고생을 많이 하신 박목월 선생은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식에 대한 애정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때의 애틋한 심정을 자주 시로 남기셨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 박목월, ‘가정’ 중에서

 

아버지나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처럼 세상에 애틋한 것이 없다. 그것은 꼭 수많은 소설과 연극과 영화의 주제가 되어서만이 아니라 인간, 가족, 가정이 존재하는 한 결코 변할 수 없는, 뗄 수 없는, 버릴 수 없는 관계이자 연분이자 감정인 때문이다. 얼마나 자식 때문에 마음이 애틋했으면 현생의 자식은 전생의 부모였다는 말까지 나올까?

 

마누라가 아프다고 하면

짜증 섞인 말투로

또 어디가 아픈데 하면서

아들이 아프다 하면

애잔하고

불쌍한 마음부터 든다.​

 

마누라가 옷 사달라 하면

옷장에 넘쳐나는 것이 옷인데

또 사느냐고 핀잔

아들이 사달라 하면

그래 알았다 하고

아빠 돈 하면

얼른 지갑에 손이 간다.

 

​자식이 뭔지

전생에

자식은 부모

부모는 자식이었다지​

 

그 말이 맞아

부모의 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불평 한마디 못하니

 

               ... 이문조, ‘자식’

 

사람이 커서 나이가 들어 혼인하고 얘기를 낳으면 그 애가 아들이건 딸이건, 그 애가 부모에게 얼마나 끔찍한 존재인지는 아기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우리 말로 끔찍하다는 그 말이 뜻하는 바는, 아기는 그 부부, 곧 부모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인 동시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사랑의 목적이며 축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 아기, 곧 2세를 낳고 키우기 위한 것임은, 나중에 애들이 다 장성해서 내외간의 정과 마음이 과거보다 옅어질 때 느끼게 된다. 조물주의 조화는, 남녀 간에도 애를 낳고 키울 때 가장 많은 정과 사랑을 느끼도록 했고 그 뒤에는 각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예정한 것임을 나이가 들어서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누구라도 태어나서 5살이 될 때까지의 그 귀엽고 사랑스러움으로 해서 충분히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일본의 아베 죠지(安部讓二)라고 하는 작가가 그의 소설 '감옥 안에서'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한 말이지만 그만큼 자녀가 어릴 때 그 자녀가 주는 행복감은 일생 그 부모의 삶의 윤활유이자 힘이 되고 있음을 알겠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그런 귀여운 자식을 위한 날이자, 자식을 생각하는 날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동시에 자식을 생각하면 할수록 부모가 생각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자 천륜이라면 어린이날이 있다가 사흘 뒤에 어버이의 날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생뚱맞기도 하다. 기왕이면 나란히 붙어있으면 하루는 자식을, 하루는 부모를 생각하는 그런 날,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어서 지금보다도 훨씬 좋지 않을까?

 

내 품에 있던 자식들이 거의 다 커서 이제 훨훨 내 품을 떠나 또 다른 가정을 꾸미고 사는 것을 보면서 어린이날을 맞으니 자식들의 그 옛날 어린이 때 모습이 생각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늙으신 부모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등걸만 남은 두 분이 더 생각나는 것이다.​

 

애들이 오면

자투리 시간조차 아까워한다.​

 

피로 대신 웃음이 가득한 어깨는

춤사위 같아​

 

마주 누우면

바람이던 세월만 서럽다.

 

​등걸만 남은 여생을 모두

아이들을 위해 내놓고는​

 

우리는 서로서로

마음을 얹고 잔다

 

                     ... 김영천, ‘자식 사랑’

 

요즘 독신으로 있다가 늦게 결혼하는 남녀가 많아진 시대, 그 옛날 근 50이 다 되어 결혼하고 애를 낳은 소강절을 생각하면 결혼이 늦었다고 한탄하거나, 혹 결혼이 안된다고 비관할 일은 아니다. 결혼하고 애를 낳아 기르는 일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책임이고, 그 아이를 낳으면서 누리는 기쁨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결코 맛볼 수 없는 권리다. 오늘 어린이날, 이제 아들들이 낳은 손주들을 보면서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를 다시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어린이날을 맞아 이 시대에 애를 낳고 기르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걸핏하면 어린 자식을 때리거나 굶겨 숨지게 하는 이상한 부모들이 많아진 이 모진 세상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자식을 위해서 부지런히 먹이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어미 왜가리

 

이동식 인문탐험가 ld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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