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창과 촌은의 사랑

2021.05.22 11:03:03

그리운 마음, 가락지 얼마나 헐거워졌는지 보세요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6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교과서에도 나왔던 매창의 시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단지 매창의 시로 외우기만 하였지, 매창이 말하는 이별한 님이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매창이 말하는 님은 촌은(村隱) 유희경(1545~1636)입니다. 촌은은 원래 천민이었으나 13살에 아버지가 죽었을 때 시묘살이를 하다가 남언경의 눈에 띄어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촌은은 특히 상례(喪禮)에 밝아 상례에 대해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그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천민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통정대부까지 하사받았습니다. 그리고 광혜군 때는 인목대비 폐모 상소를 거절하여, 인조반정 후 인조는 이를 가상히 여겨 가선대부로 품계를 올려주었습니다.

 

 

촌은은 46살 때 부안의 매창이 시로서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부안으로 매창을 찾아갑니다. 당시 촌은은 백대붕과 함께 풍월향도라는 모임을 만들어 시를 나누었기에, 매창에게도 풍월향도의 소문은 들어갔었나 봅니다.

 

그래서 촌은이 찾아왔을 때, 매창은 촌은에게 ‘유희경과 백대붕 중에 어느 분이냐고 물었다는군요. 둘은 시로서 통하였을 뿐 아니라, 이성으로서도 끌려 28살이라는 나이 차를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아마 촌은이 천민이었다는 점이 동병상련으로 매창이 더 끌리게 된 요소였지 않았을까요? 촌은은 소문으로 듣던 매창을 만나자 <贈癸娘(증계랑)>이라는 시를 씁니다.​

 

曾聞南國癸娘名(증문남국계랑명)  남국 계랑의 명성 일찍이 들었지

詩韻歌詞東洛城(시운가사동락성)  그녀의 시운과 가사는 서울까지 울렸어라

今日上看眞面目(금일상간진면목)  오늘에서야 그녀의 참모습을 대하고 보니

却疑神女下三淸(각의신녀하삼청)  선녀가 선계에서 내려온 듯하여라

 

하~ 매창을 선녀에 비유하다니! 촌은이 매창에게 뿅~ 간 것 아닌가요? 아니면 매창에게 잘 보이려고 좀 과장된 수사를 한 것인가요? 아무튼 이들은 첫눈에 반하였지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 둘은 15년이 지나 다시 한번 만납니다. 중간에 임진왜란이라는 큰 환난이 둘의 만남을 방해하였지요. 그런데 어렵게 두 번째 만남을 이루었지만, 그게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3년 뒤인 1610년에 매창이 28년 연상의 촌은을 놔두고 38살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났거든요.

 

 

비록 둘의 만남은 짧았지만 매창은 촌은을 사랑하여 될 수 있는 대로 남자를 멀리했다고 합니다. 기녀로서 과연 매창이 자기 뜻대로 남자를 멀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지만, 하여튼 매창은 촌은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매창이 허균의 방에 자기 조카를 들여보낸 것도 촌은이 매창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서울과 부안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연인은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시를 씁니다.​

 

相思都在不言裡(상사도재불언리)  그리운 마음 말로는 못 하니

一夜心懷鬢半絲(일야심회빈반사)  하룻밤 시름에 머리가 다 반이나 세었지요

欲知是妾相思苦(욕지시첩상사고)  이 몸이 얼마나 그리는지 알고 싶거든

須試金環減舊圍(수시금환감구위)  금가락지 얼마나 헐거워졌는지 보세요​

 

<閨怨(규원)>이라는 매창의 시입니다. 매창은 그리움이 지나쳐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겠군요. 너무나 그리워하는 마음에 머리가 다 세어지고, 몸무게가 얼마나 빠졌으면 금가락지가 헐거워지나요. 매창은 이렇게 님을 그리워하는 시를 여러 편 썼습니다. 무정한 사람! 아무리 당시 교통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좀 더 부안으로 달려와 줄 수 없었나요? 이런 매창을 생각하며 촌은도 <懷癸娘(회계랑)>이라는 시를 씁니다. 촌은의 문집에는 이외에도 매창을 생각하며 쓴 시가 5편이 더 있다고 합니다.

 

 

娘家在浪州(낭가재랑주)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桐雨(단장오동우)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창자가 끊어지는 듯

 

촌은 선생! 그렇게 창자가 끊어질 듯 보고 싶으면 왜 부안으로 달려가지 않았나요? 집 뒤 시냇가에 침류대 짓고 다른 문인들과 노니느라고 매창을 잊은 건 아니었겠지요? 아무튼 현세에서는 너무 짧은 만남, 긴 이별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두 분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서로 시로서 화답하며 부창부수하시면서요. 두 분이 서로 그리워하며 피로써 쓴 시, 후학이 잘 보고 갑니다.

 

 

양승국 변호사 yangaram@lawlog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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