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송산지역 독립운동가 마을을 걷다

2021.06.22 11:22:18

송산 3.1만세운동, 사망 2명ㆍ부상자 8명ㆍ주동자 20여 명 6~12년 옥살이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경기도 중서부 서해안에 닿아있는 송산 사강지역은 알이 성글고 단맛이 풍부한 송산포도로 유명하며, 서해안 갯벌에서 채취한 굴과 맛조개 등 여러 풍부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횟집들의 사강시장이 있다. 요즘은 시화호로 막혀 좀 더 멀리 나가서 해산물을 잡아 온다고 하는데 철도나 육로가 발달하기 전엔 한양으로 가는 물류가 인근 마산포에서 배에 실려 올라가 한강을 거슬러 한양의 여러 포구에 내려놓고 다른 물자를 바꾸어 돌아왔던 중심지였다. 인근에는 서해를 건너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했던 당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로 이 지역에 1919년 3.1만세 운동 때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몇 년여에 걸쳐 기획하고 준비하여 작년 말에 조성된 송산지역 독립운동가 마을을 탐방했다. 송산농협 사강지점에 차를 대고, 독립운동가 후손 두 분의 안내를 받으며 걸었다. 3.1만세운동 당시 적극적으로 참여ㆍ주도하신 홍면옥, 왕광연 두 분의 손자이신 홍사용, 왕의항 선생님과 함께했다.

 

 

 

 

 

《송산지역 독립운동가 마을 백서》를 손에 들고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공간에 세워진 조형물과 안내판을 참고하며 사강재래시장, 마을회관, 송산 초등학교, 송산 중학교, 송산주재소 자리, 송산 삼일공원, 독립운동가 집터를 둘러보았다. 그 밖에 출옥 뒤에도 독립의지를 꺾지 않고 서당이나 강습소를 운영했던 유적지들이 있다고 한다. 이곳 송산지역에는 많은 독립운동가 생가와 집터에 모두 21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송산지역 삼일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6에서 28일에 걸쳐 일어났다. 다른 지역과 달리 공세적이며 폭력의 양상도 띠었다. 해안 일대의 농경지와 염전, 간척 인력동원 수탈에 원한이 컸다.

 

고종의 인산에 참가하고,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게 된 몇몇 사람들이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시위를 주도했다. 사강 장날을 기하여 인근에서 모여든 2,000여 민중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저항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이에 일본 순사 노구치 고조가 쏜 총이 홍면옥의 어깨를 관통하자, 흥분한 군중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일본 순사를 향해 돌을 던지며 쫓아가 처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일제의 보복은 철저했다. 일제는 자기 나라 관원의 죽음에 대해선 상상을 초월하는 보복을 감행했다. 송산 마도 서신면의 마을 20여 곳에서 닥치는 대로 군중을 체포ㆍ구금ㆍ폭행하고 민가에 방화하였다. 그 당시 가옥 200채 이상이 불에 탔고 사망 2명 부상자가 8명이 발생했다. 그리고 주동자 20여 명이 6~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날 사건은 지식인과 시장상인 농민들이 합심, 주도하여 화성 전 지역으로 확산시킨 적극적인 만세운동의 발화점으로, 발안장터 만세운동과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 화수리주재소의 습격 방화와 일경 가와바다를 처단하는 등의 동기가 되는 성격을 띠었다. 일신을 바쳐 '독립은 온다.'라는 믿음을 선물한 독립운동가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민중이 움직였으며,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 오늘이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마을을 걷다 보면 다소 아쉬움도 남는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선조들의 독립운동을 되새겨 볼 수 있도록 의자라도 놓여있었으면 좋겠다. 또 공간 확보가 쉽지 않겠지만, 주차된 차가 벽화를 막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옥의 티였다.

 

사강 시장일대에는 독립정신을 기리며 삶을 영위해 온 후손들의 삶의 흔적이 더러 남아있다. 또 고무신가게, 철공소, 고추가루 방앗간, 세탁소, 이발소 ··· 다방, 기름집, 한의원, 목공소 ~~우리의 옛 정서를 느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다. 그런데 '도시재생 뉴딜 사업선정'이란 펼침막을 보며 덜컥 걱정이 앞선다. 부디 독립정신을 살리고, 옛것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재생사업이 되길 빌어본다.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사를 알수록, 일본의 야만성과 반성하지 않는 뻔뻔스러움에 치를 떨게 된다. 절대 버리지 않는 일본의 침략야욕에 오늘도 우리는 늘 긴장하고 대비해야 될 것이다.

 

 

 

 

 

 

만세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철저히 빼앗기고 파괴된 터에서, 독립운동하신 분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로 도와가며 살아 온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 늦기 전에 연로하신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의 얘기를 구술ㆍ정리해 독립운동가 마을 백서를 만든 연구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독립운동사실이 뚜렷한데도, 수형기록 미비나 혹은 출옥 뒤 사회주의 운동등으로 미서훈 상태인 독립운동가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분들도 똑같이 그 높은 뜻을 기리고, 서훈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인선 기자 gaunc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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