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회상, 개인과 세상을 교화하는 수양 음악

2021.12.07 11:37:11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5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영산회상>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 음악은 전문 국악인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큰 고개라는 이야기, 영산회상과 관련하여 1970년대 중반, 서울 음대에 출강하고 있던 서한범과 김선한(거문고)은 김정자의 제안으로 정악 공부 모임인 【정농악회】를 조직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농악회】의 원로 사범으로는 김천흥(해금), 김성진(대금), 김태섭(피리, 장고), 봉해룡(단소), 이석재(피리, 장고) 선생 등으로 이분들은 오로지 영산회상 중심의 정악만을 연주해 온 정통음악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더했다.

 

또 크고 작은 소리의 대비, 강하고 약한 소리, 잔가락이나 표현적인 시김새의 처리, 장단과의 호흡, 관(管)가락과 현(絃)가락의 조화, 내 소리와 다른 악기와의 조화 등등, 우리는 원로들과 함께 연습하면서 그분들로부터 배운 경험은 지금도 소중한 자산이 되어 후진 양성에 큰 교훈이 되어 왔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예기》 중에서 악기(樂記)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음악의 생성은 음양의 기(氣)가 흘러 하나 되고, 화(化)하여 일어나며, 만물의 변하여 이루는 것이 곧 악(樂)이요, 악을 천지의 화합이라고 한다. 또한 소리에는 역기(逆氣)가 형상을 이루어 음란한 악이 있고, 순기(順氣)에 의한 화평한 악이 있는바, 군자는 모름지기 몸과 마음으로 하여금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 바른 것을 행한 후에야, 비로소 소리로써 나타내야 한다.”

 

조금은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들리나 자세히 음미해 보면 그 진정한 뜻이 엿보이는 것이다. 곧 소리에는 역한 기운으로 인한 음란한 악(樂)이 있고, 순한 기운에 의한 화평한 악이 있는데, 군자는 순정에 의한 바른 소리를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의 음악이란 개인이 몸과 마음을 위해 수양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이야말로 곧 사회와 국가로 이어지는 교화(敎化)의 수단이며 방법으로 보는 것이 조선조를 이끌어 온 유학사상이 아니었을까? 조선조 선비들은 「악기(樂記)」의 음악정신을 신봉하여 그들의 생활 속에서도 지나친 감정의 표출을 억제하며 중화(中和, 덕성이 중용을 잃지 아니한 상태)를 이상으로 삼던 유교적 윤리에 철저했던 계층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즐기던 음악, 또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던 그들의 생활 습속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선비 계층이 즐기던 음악의 멋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난 아래와 같은 생활철학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세속의 영화(榮華)란 실상은 고기가 낚시를 무는 것과 같다. 그러하니 영화를 바라지 않는다면 명리(名利)의 향기로운 미끼에 현혹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벼슬자리란 본디 서로가 다투어야 올라가는 것이거늘, 벼슬자리에 있지 않으면 올라가고 내려가고, 상 타고 쫓겨나고, 하는 그 안타까운 위태로움이 있을 리 없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쟁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철학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한낱 뜬구름으로 여기고, 초야에 묻혀 살며 좌서(左書) 우금(右琴), 곧 한 손엔 책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거문고를 뜯으며 인생을 유유자적하던 선비들의 삶은 어떤 음악이 어울릴 것인가?

 

이들이 즐긴 음악이란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고, 음의 변화가 심한 음악보다는 여유 있으면서도 유연한 곡선미를 느낄 수 있는 <영산회상>이나, 또는 <전통가곡>과 같은 느긋한 성악이 적격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선비들이나 문인들이 그들의 문집 속에 남긴 그들의 음악관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조선후기 문집의 음악사료》의 원문과 번역문 일부를 인용하여 그들의 인생관과 음악관을 음미해 보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문집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2000년, 이지양(李知洋) 강사가 강독회 학생들에게 강의한 내용을 엮은 자료로 동 예술원의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 강독회에서 편집한 내용이다. 또 《태호집(太湖集, 조선후기 학자 홍원섭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40년에 펴낸 시문집)의 <서김생화후(書金生畵後)>편에 나오는 금슬상화(琴瑟相和)에 관한 내용이다.

 

 

“슬(瑟)을 타는 자는 슬에 뜻을 두되, 금(琴)과 더불어 조화되는 것을 즐거워 하고, 금을 타는 자는 뜻을 금에 두되, 슬과 더불어 이루는 것을 즐거워 한다. 무릇 뜻을 오로지 하는 자는 예속됨을 당하게 되니 즐거움 또한 넓지 못하며, 뜻이 예속되지 않은 자는 즐거움이 한없이 넓다. 듣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가 능히 알겠는가?”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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