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에 배 있는데 왜 까막까치를 기다리나

2022.06.11 11:15:58

박지원, <산행(山行)>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9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산행 (山行)

 

                                                                                               - 박지원(朴趾源)

 

叱牛聲出白雲邊(질우성출백운변)  이랴 저랴 소몰이 소리 흰 구름 속에 들리고

危嶂鱗塍翠揷天(위장린승취삽천)  하늘 찌른 푸른 봉우리엔 비늘 같은 밭골 즐비하네

牛女何須烏鵲渡(우녀하수오작도)  견우직녀 왜 구태여 까막까치 기다리나?

銀河西畔月如船(은하서반월여선)  은하수 서쪽 가에 걸린 달이 배와 같은데

 

이 시는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지은 <산행(山行)>이라는 한시로 지은이가 산길을 가면서 아름다운 정경을 동화처럼 노래한 것이다. 연암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로 청나라 고종의 칠순연에 사신단의 한 사람으로 따라가 열하(熱河, 청나라 황제의 별궁)의 문인들, 연경(燕京, 북경의 옛 이름)의 명사들과 사귀며 그곳 문물제도를 보고 배운 것을 기록한 여행기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썼다.

 

 

정조 등극한 지 5년째 되는 해인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 장장 5달 동안 사신단은 애초 목적지인 청나라 서울 연경(북경)까지 2,300여 리를 한여름 무더위와 폭우 뒤 무섭게 흐르는 강물과 싸우며 가고 또 간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연경에 황제는 없다. 그래서 열하의 '피서산장'에 머물고 있었던 황제를 만나려고 다시 목숨을 건 700리 길을 더 간다. 서둘러 오라는 황제의 닦달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나흘을 꼬박 눈을 뜬 채 가고 또 가 당도한 열하. 드디어 18세기를 빛낸 《열하일기》는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열하일기》를 현대어로 뒤쳐서 책을 펴낸 이들은 한결같이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는 훈장을 달아주었다. 박지원은 요동벌판 하늘과 땅 사이에 탁 트인 경계를 보고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 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호곡장(好哭場)]”라고 외쳤다. 그 '당대의 천재' 연암은 여기 <산행(山行)>이라는 시에서 깊은 산중에서 일어나는 노동(勞動)의 현장을 승화(昇華)시켜 동화(童話)의 세계로 끌어가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푸른 산봉우리에는 계단식 다랑이논이 비늘처럼 즐비하다. 그리고 서쪽 하늘 은하수에는 조각달이 배처럼 걸려있다. 연암은 견우직녀에게 까막까치가 다리를 놓아줄 칠석까지 기다리지 말고 저 조각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라고 한다. 운명을 기다리지 말고 운명을 만들라는 연암의 귀띔이 아니던가?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pine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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