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其四(기사)
士本四民之一也(사본사민지일야) 사(士)도 본래 사민 가운데 하나일 뿐
初非貴賤相懸者(초비귀천상현자) 처음부터 귀천이 서로 두드러진 것은 아니었네
眼無丁字有虗名(안무정자유허명)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헛된 이름의 선비 있어
眞賈農工役於假(진가농공역어가) 참된 농공상(農工商)이 가짜에 부림을 받네
이 시는 조선 후기 시ㆍ서ㆍ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진 문신ㆍ화가이며, 서예가인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1820년 나이 52살에 춘천부사(春川府使)에서 물러나 경기도 시흥의 자하산장(紫霞山莊)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현실세계에 대한 인식을 노래한 것 가운데 한 수다.
신위는 초계문신으로 발탁될 만큼 촉망받았다. 초계문신은 37살 이하의 당하관(정3품 아래의 벼슬아치) 가운데 젊고 재능 있는 문신들을 의정부에서 뽑아 규장각에 위탁 교육하고, 40살이 되면 졸업시키는 인재를 양성하던 제도다. 신위는 1815년 곡산부사로 나갔을 때 피폐한 농촌의 현실을 확인하고 농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조정에 세금을 탕감해달라는 탄원을 하였으며, 1818년에 춘천부사로 나갔을 때는 그 지방 토호들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맞서다 파직당할 정도로 백성을 사랑하는 벼슬아치였다.
시인 신위는 노래한다. 선비[사, 士]는 본래 사농공상(士農工商) 가운데 하나일 뿐임은 물론, 사농공상(士農工商)은 각자의 일이 다르며, 선비만 귀하고 나머지는 천하다는 의식이 처음부터 있어서 서로 두드러지게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아치 선비가 있어, 나머지 참된 백성 농공상(農工商)을 지배하고 맘대로 부리고 있다고 꾸짖는다. 공직자라면 신위처럼 선비도 사농공상의 하나라는 인식으로 봉직하여야 할 일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