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성에 부는 살랑이는 봄바람

2024.02.12 11:07:2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설 연휴가 시작된 9일, 인천광역시 계양구에 있는 계양산성(사적556호)엘 올랐다. 산성이라고 하면 언뜻 도심 외곽에 자리하고 있을 듯한데 계양산성은 도심과 맞닿아 있어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찾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아니, 도심에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엔 도심 외곽이었을 산성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게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입춘(2월4일)이 지나서인지 산성에 부는 바람이 겨울 느낌이라기 보다는 봄 느낌이 컸다.

 

 

 

“계양산 일대는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육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문인 이규보(1168~1241)의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에는 ‘계양군에서 나가는 길은 오직 한 길이 육지에 통할 뿐, 세 면이 모두 물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물가였던 계양산 주변은 조선 중, 후기에 이르러 모두 개간되어 육지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주변이 물가였을 정도로 지대가 낮았던 부평 지역에 솟은 계양산은 인근 지역이 한눈에 조망되는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인천의 북부와 한강 하류 지역을 통제할 수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59~1674)등의 문헌에 따르면 계양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석성(石城)으로 1,937척의 길이로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계양산성 박물관 자료-

 

삼국시대라면 꾀나 오래된 산성이다. 지금 이 산성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부서진 돌들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산성이 본래의 기능을 잃은 것은 이미 조선시대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1,937척인데 모두 무너졌다" 라는 기록에서 알 수 있다. 그나마 현재의 계양산성은 2000년대에 들어 발굴 조사가 시작된 이래 2019년까지 10차 조사가 완료되었고 일부이긴 하지만 복원 구간도 있어서 산성의 대강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성입구에는 계양산성박물관이 있어 계양산성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성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해놓아 산성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학습장이 될 것 같다. 특히 산성박물관에는 <팔도산성승람>을 만들어 전라도의 무주적상산성, 완주위봉산성, 담양금산산성, 장성입암산성, 광양미로산성, 진도용장산성, 흑산도상라산성을 비롯하여 충청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 경상도의 대표적인 산성을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삼국시대 대표적인 산성의 하나인 계양산성에 오르면 발아래 아파트 등 주거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찾은 날은 설 연휴 시작을 맞아 가족 단위로 산성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많았다. 계양산성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잘 다듬어 놓은 계단을 이용하면 그다지 힘들지 않게 산성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지대가 높은 산성 위로 불어오는 바람이 아직은 차게 느껴지지만 내리쬐는 햇살이 실어 나르는 바람 속에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듯하다. 모처럼의 산성 나들이에서 봄의 기운을 느껴보았다.

 

 

이윤옥 기자 59yo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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