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선생님의 고난일생 지성일념이 이러했거늘
마지막에 원수 아닌 동족의 손에 피를 뿜고 가시다니요.
이것이 선생님에게 바친 최후의 보답입니까?
동포 형제여, 가슴을 치고 통곡하십시오.
선생님! 천지가 캄캄하고 강산이 적막합니다.
무대에서 임진택 명창이 오열한다. 어제 3월 1일 낮 3시 3.1절 105돌을 맞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와 백범김구기념관, 김구재단이 함께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백범 김구' 창작판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판소리 ‘백범 김구’는 백범 김구 선생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은 창작판소리다. 창작판소리의 핵심 내용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으로 조국의 독립과 광복 이후 분단과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막기 위해 노력하다 안두희의 총탄에 삶을 마감한 김구의 일생을 담았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를 기반으로 임진택 명창이 판소리 대본인 창본을 직접 쓰고 장단을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첫 공연은 2009년 백범 서거 60주년 당시, 김구재단과 함께 제작한 것으로 1부 '청년 역정', 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3부 '해방시대' 모두 3부로 구성돼 이후에도 지속해서 공연을 진행해 오고 있다.
맨 먼저 무대에 오른 이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이면서, 국립민속국악원장을 지낸 왕기석 명창으로 김학용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빼앗긴 나라 – 청년역정”을 맡았다.
왕기석 명창의 제1부는 1장 ‘황해도 아기접주’, 2장 ‘나라의 치욕을 씻어보리라’, 3장 ‘새로운 독립정부를 세우리라’로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부터 망명생활의 시작까지다. 왕기석 명창의 오랜 소리 내공이 폭발하면서 청년 김구가 국모 시해의 원수를 갚는 장면을 기백있는 목소리로 품어내 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제2부 <대한민국임시정부> 1장 ‘한인애국단 특무공작’, 2장 ‘조국 광복은 우리 힘으로’를 전계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춰 우지용 명창이 소리했다. 우지용 명창은 국립창극단 중견단원으로 문화체육부 우수예술인으로 뽑힌 소리꾼이다. 우 명창은 지난해 말 대본을 받아 2달을 정신 없이 매달렸지만, 아직 소리가 익지 않았다면서 공연 중 땀을 끊임없이 흘려 청중에게서 손수건을 받아들고 땀을 닦으며 열창했다.
마지막으로 창작판소리 대가 임진택 명창이 무대에 올랐다. 제3부는 1장 ‘우리나라는 자주독립국가다’, 2장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3장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4장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다.
3장에서 임 명창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고 새로운 문화의 힘이라
나는 우리 대한민국이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하오”라고 했던
백범의 염원을 간절하게 토해냈다.
이윽고 무대는 절정에 달한다. 백범 김구가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다. 임 명창은 숨이 넘어가면서 선생의 죽음을 비통해한다. 선생의 죽음에 알맞은 성악은 판소리뿐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임 명창은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열창했다. 그러면서 선생의 죽음에 그저 비통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선생은 비록 가셨으나 결코 가신 것이 아니로세”라면서 “선생님 가신 발자국 따라 이름답고 힘찬 그 길로 함께 손잡고 걸어가세. 자주 민주 평화 평등 문화상생의 새 역사를 함깨 열어보세”라는 염원을 간절히 비손한다.
판소리 공연장에서는 흔히 ‘잘헌다, 그렇지, 아먼’ 등의 추임새로 온통 뒤덮이는데 이날은 백범 김구 선생의 비장함이 흘러넘치는 까닭인지 객석은 숨을 죽인 채 순간순간 오열하는 소리와 그저 끊임없이 손뼉 치는 것으로 추임새를 대신 했다. 그리고 모든 소리가 끝나자, 감동을 전해준 소리꾼과 고수의 공력에 말없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이날 문래동에서 왔다는 정설희(61) 씨는 “삼일절을 맞아 김구 선생님 판소리를 한다길래 와봤는데 공연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이 가슴을 치며 눈물만 흘렸다.‘라면서 ”삼일절을 맞아 곳곳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열리는데 그 어떤 행사보다도 더욱 뜻깊은 공연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공연, 김구 판소리를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