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도시에서 나누는 이야기와 주제가 다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만나면 주로 음식, 여행, 명품, 부동산, 재테크 등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며 걸으면서 두릅나물, 복숭아꽃, 돌배술, 진달래, 철쭉, 찔레, 당귀 등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황병무 선생의 고향이 횡성군 새말이고, 박명수 신부님의 고향이 정선군 임계라고 한다. 두 분은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풀과 나무와 농사 등에 관해서 경험과 지식이 많아서 대화를 흥미롭게 이끌어갔다.
둘레길을 걷다가 갈림길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효석문학100리길 표지판이 나타나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평창역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표지판이 없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 언덕길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표지판이 필요하다. 나는 며칠 전에 제2구간 코스를 사전 답사차 왔다가 여기서 헤매었다. 평창군 담당자가 이 글을 읽고서 적절하게 처리해 주기를 기대한다.
평창역 앞으로 지나가는 둘레길에 표지판 두 개가 서 있었다. 하나는 금당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고, 다른 하나는 카페921을 알리는 표지판이다. 카페921은 갤러리와 잔디밭, 그리고 정원이 있는 근사한 카페이다. 평창역에서 내려서 천천히 걸어가면 카페까지 15분 정도 걸린다.
길 따라 조금 내려가자, 둘레길은 기차선로 아래로 통과한다. 우리는 두 개의 터널을 지났다. 이제부터는 표지판이 서울대 평창캠퍼스를 가리킨다.
넓은 밭이 나타났다. 농부 세 사람이 농약을 뿌리고 있다. 나는 10평이 채 안 되는 손바닥만 한 텃밭에서 우리 식구가 먹을 채소만을 기른다. 아직까지 농약을 치지 않고 채소를 가꾸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기 위한 목적으로 농작물을 기르려면 농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요즘에는 분해성 농약이 개발되어 얼마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분해되어 독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시장에서 파는 친환경 농산물은 저농약이라는 뜻이지 무농약은 아니다. 지구에 사는 80억 인류에게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려면 무농약 친환경 농사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한 시간 이상 걸었다. 정자가 보이지 않는다. 쉴 곳이 마땅치 않다. 박명수 신부님이 일행보다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전진했다가 되돌아왔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조금만 더 가면 소나무 아래 쉼터가 있다고 알려준다. 신부님이 양 떼를 인도하는 목자 역할, 또는 전쟁에 견준다면 척후병 역할을 하였다. 신부님께 감사!
여울목을 출발한 지 80분이 지났다. 낮 11시 40분에 우리는 소나무 아래에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 김수용 선생이 커다란 등산 배낭에서 간식을 꺼냈다. 명이잎으로 싼 명이밥과 김으로 싼 김밥을 만들어왔다. 김밥이야 많이 먹어보았지만, 맛 좋은 명이밥은 처음이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면서 김수용 선생의 사모님 음식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누군가 박명수 신부님에게 “봉평 성당에는 수녀님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박명수 신부님은 “수녀들은 성당 소속이 아니고 수녀원 소속이다. 수녀가 필요한 본당에 파견을 내보낸다. 봉평 성당은 규모가 작아서 아직 수녀님이 나와 있지 않다.”라고 대답하였다.
소나무 그늘에서 15분 동안 휴식하고 11시 55분에 다시 출발하였다. 조금 내려가니 차가 많이 다니는 31번 도로가 나왔다. 우리가 내려온 길 입구에 거문ㆍ금당산 등산 안내도가 서있다. 등산안내도를 살펴보니 등산로가 모두 4개나 된다.
나는 몇 년 전에 친구들과 금당산 등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고대동교를 출발하여 법장사를 지나 거문산(높이 1,173m)을 찍고 금당산(높이 1,174m) 정상을 거쳐서 재재고개로 내려왔다. 거문산은 금당산과 높이가 같고 두 산은 평탄한 능선길로 연결되어 있다. 31번 도로 따라 조금 올라가니 고개 정상이다. 서울대학교 평창캠퍼스의 북문이 오른쪽으로 바로 보인다.
이 고개를 이곳 사람들은 재산재라고 부르는데, 등산안내도에는 재재고개라고 표기되어 있다. 길 조금 아래쪽에 재산재가 해발 600m임을 알리는 커다란 도로 표지판이 있다.
지질 측면에서 평창군에는 선캄브리아기, 고생대, 중생대의 3개 지질 시대의 암석이 분포한다. 재산재를 기준으로 하여 북쪽(봉평면 쪽)으로는 화성암 지층인 화강암 지대가 분포하고 있다. 재산재의 남쪽(대화면 쪽)으로는 평창읍을 거쳐 영월까지 퇴적암 지층인 석회암 지대가 분포되어 있다. 석회암은 단단한 화강암과 달리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석회암 지대에는 동굴과 탄광이 발달되어 있다.
수질 측면에서 보면 석회암 지대의 지하수는 칼슘이나 마그네슘 등의 무기물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석회암 지대의 물은 정수해서 먹는 것이 좋다. 봉평면은 화강암지대에 속하기 때문에 모래 하천이 많고 지하수 수질이 좋다. 이효석이 태어난 봉평은 수질 측면에서도 살기 좋은 고장이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큰길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섰다. 금당산 아래에 있는 마을 풍경이 시원해 보였다. 서울대 평창캠퍼스가 멀리 보인다. 커다란 돌배나무가 서 있고 철쭉꽃이 예쁘게 핀 멋진 시골집이 길 오른편에 나타났다. 작은 연못도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집이 크지 않고 작았다는 점이다.
부자가 시골집을 크게 짓는 것은 시골 생활을 잘 몰라서다. 시골집은 작아야 한다. 텃밭도 작아야 한다. 시골집이 크면 유지관리가 어렵고 할 일이 많아진다. 텃밭이 크면 중노동을 해야 한다. 시골에서 전원생활 즐겨 보려고 서울에서 내려왔다가 쉬지는 못하고 일만 하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환경주의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구호가 가장 잘 적용되는 곳이 시골집이다.
밭 사이로 난 작은 길을 따라 둘레길이 이어진다. 여기저기에 꽃이 만발한 나무가 서 있다. 화초를 잘 가꾼 예쁜 집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야 작은 풀꽃을 발견할 수 있다. 천천히 걸어야 이처럼 예쁜 봄꽃들을 감상할 수가 있다. 아아, 봄은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일행 중에서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눈이 호강하는 날이라고.
봄꽃을 보고 감탄하고 사진 찍느라고 자꾸 걸음이 느려졌다. 우리는 12시 40분에 답사의 종착지인 신리2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이날 효석문학100리길 제2-1구간 7km를 8명이 걸었다. 시간은 2시간 20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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