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오는 남녀 손님 탓에 방 구하기 어려워

  • 등록 2024.07.12 11: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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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2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섯 번째 만남

 

김 교수 학과 교수들은 한 학기가 끝나면 수련회를 가는 전통이 있다. 교수 사회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같은 학과 교수들끼리 화목하게 지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지야 않지만, 실력 있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사이좋게 지내는 집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람은 배울수록 겸손해야 되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 속담이 생겼을 것이다.

 

모든 세상사에는 양면성이 있다. “고개 숙인 벼”라는 속담도 있지만 “제 잘난 맛에 사는 게 인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박사 학위를 딴 으뜸 지성인들이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 사는 데에는 미숙한 곳이 교수 사회이다. 그럼에도 김 교수의 학과 교수들은 매 학기 마지막 성적처리가 끝나는 날에 1박 2일로 수련회를 간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런 전통을 가진 학과는 드물 것이다.

 

기말고사의 성적처리가 끝나기 전에 학과 회의에서 교수 수련회를 유성 온천으로 가기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미스 최를 다섯 번째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미스 최는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아리랑》 제4권을 읽었다고 전화가 왔고, 김 교수는 미스 최를 토요일 점심때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좋은 일은 항상 이렇게 겹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피치 못할 일이 있다고 슬쩍 수련회에서 빠지나? 미스 최를 보스에서 만나는 것은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러워서 호텔에서 만나 점심 먹기로 아가씨와 약속해 버렸는데... 어찌 하나? 교수 수련회야 계속 있지만 아가씨는 내일 당장 연락이 끊어질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지만 학과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수련회에서 빠질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목요일에 전화했다. 통화가 되자 토요일 점심 약속을 미루어 저녁 4시 반에 잠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토요일 유성에서 아침밥 먹고 서울에 올라와서 전철 타고 잠실로 가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금요일 오후, 학과 교수 일행 여섯 명은 차 2대에 나눠 타고 가벼운 마음으로 유성으로 향했다. 김 교수야 워낙 역마살이 낀 사람으로 아내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에, 금요일 아침에 아내에게 “교수들이 수련회를 하기 위하여 1박 2일로 유성에 갔다 온다.”라고 말하자 “알았다.”라고 간단히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교수들은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까다로운 부인을 둔 어떤 교수는 유성에서 학회 세미나가 열린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야 맞는 말이지 않은가? 교수 6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게 세미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군대에서 장교 2명이 모여서 이동하면, 거기가 산꼭대기이든 지하벙커이든 술집이든, 모두 ‘작전’이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교수 2명 이상이 모여서 토론하면 그곳이 강의실이든지 술집이든지 모두 ‘세미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유성에서 호텔 방을 구하는데 예약을 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유성은 관광특구라고 해서 밤새도록 술집이 문을 여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이면 유성에 있는 호텔이 꽉 차서 방이 없다고 한다. 손님은 대부분 서울에서 내려오는 남녀 손님이라고 한다.

 

아,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주중에는 어떠냐고 물어보니 주중에도 80%는 방이 찬다고 종업원이 말한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종업원이 손님들은 서울에서도 많이 온다고 덧붙인다. 서울 근처의 이른바 러브호텔도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주말에는 멀리 유성에까지 진출하는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러브를 참 많이도 하는 모양이다.

 

언젠가 잡지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기혼 남자의 75%가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잔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때 다른 여자란 대부분 술집 여자일 것이다. 기혼 여자의 경우는 어떨까? 그 무렵 기혼 여자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애인>이라는 TV 연속극(황신혜 주연)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좋게 말해서 연애, 나쁘게 말해서 외도는 과거처럼 기혼 남자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이제 세상이 변한 것이다. 기혼 여자의 외도 역시 남편들이 모르는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애인>이라는 연속극이 주부들에게 그토록 공감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강남에 사는 부유층 유부녀들 사이에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라는 유언비어가 있다. 서로가 비밀을 지켜주니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어쨌든 서울에서 먼 유성의 호텔이 호황이라는 현실은 간접적으로 서울에서 연애, 또는 외도가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muusim22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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