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금 소리에 저절로 눈물이

  • 등록 2024.07.31 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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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어느 날 들판에 나갔던 양치기 소년은 외롭게 버려진 하얀 망아지 한 마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소에서 나온 우유를 먹이며 정성을 기울여 마침내 하얀 망아지는 늠름한 말이 되어 소년이 양을 칠 때에 늑대들로부터 양을 지켜주었다. 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인 유대가 커 갔다.

 

그즈음 말타기 대회에서 1등 하는 자는 원님의 사위로 삼겠다는 마을 원님의 공약이 온 초원을 바람을 타고 이 소년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소년도 하얀말과 함께 출전한다. 그리고 당당히 1등을 한다. 그런데 힘차고 멋진 말과 부와 기백을 겸비한 강한 청년이길 기대했던 원님은 1등을 한 사람이 가난한 양치기 소년임을 알고는 말은 빼앗고 소년에게는 상 대신 매를 때려 내쫓는다.

 

자신을 돌봐준 소년과 갈라진 하얀말은 감시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소년이 있는 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뒤쫓아오던 군사들에 의해 집 바로 앞에서 화살에 숨을 거둔다. 눈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하얀말을 죽음으로 맞이한 소년은 당장 복수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기왕에 저세상으로 떠난 하얀말과 평생을 함께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하얀 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 그리고 털을 모아 악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악기의 머리에는 하얀말의 얼굴을 빚었다. 실의에 빠져있던 소년은 악기를 연주하며 하얀 말이 보여준 믿음과 신의를 생각하며 하얀말과 늘 함께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연주하는 악기인 ‘마두금(馬頭琴)’이 탄생한 사연이다. 몽고인들이 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단적으로 알게 해주는 설화다.

 

 

마두금(馬頭琴)으로 잘 알려진 이 악기의 몽골 이름은 ‘모린후르’다. 13~14세기 몽골제국 시절부터 있었다고 전해진다. 탄생 설화에서 보듯 몽골인들에게 마두금(모린후르)은 단순한 악기를 넘는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가장 큰 제국을 세운 것은 몽골인들이 타는 말이 없었으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일상에서도 말은 드넓은 초원과 머나먼 사막을 이어주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또한 다른 부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전쟁할 때도 목숨을 지켜주는 동물이었다. 이런 동물이기에 몽골인들은 말에 대한 숭배와 사랑의 마음을 악기의 머리에 말을 만들어 붙이는 것으로 하고 악기는 가랑이 사이에 놓고 말머리가 눈높이에 오도록 해서 연주한다.

 

마두금은 말의 온몸을 쓴다. 이 악기의 소리를 내는 현은 두 줄인데 말의 꼬리로 만들었다. 두 줄 가운데큰 것은 '수컷줄'이라고 하여 수컷의 말꼬리털 130개로 만들고 '암컷줄'은 암컷 말의 꼬리털 105개로 만든다. 연주할 때는 말의 꼬리털을 낙엽송 몸체에 붙여 만든 활로 연주한다. 울림통도 전에는 말의 가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몽골에 있는 대부분의 게르(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집)에는 마두금이 걸려 있다. 마을의 잔치나 손님이 왔을 때, 사람들은 이 악기의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논다. 심지어는 마을 어귀에까지 큰 마두금을 만들어 세워놓고 손님을 맞는다. 몽골인들은 유목인들이기에 손님들을 박대하지 않는다. 마두금은 곧 손님과 손님, 손님과 주인의 마음을 서로 보여주고 이어주는 가장 정겨운 메신저다. 얼마 전 몽골의 시막 지역을 여행하면서 작은 마을 입구에서 커다랗게 마두금 조형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마을의 벅수나 동네의 당산나무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리라.

 

 

몽골인들이 말과 주고받는 신뢰는 마두금을 통해 다른 동물들에게도 이어진다. 말과 함께 주요한 교통수단은 물론 낙타. 대부분이 쌍봉낙타다. 그런데 낙타는 사막이라는 혹독한 기후조건에서 살아남는 것이 쉽지 않다. 새끼를 낳는 것도 극심한 고통이다. 두 개의 봉우리를 단 등과 길쭉한 다리가 엄마 몸에서 나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몇 시간이 걸리는 출산으로 고통이 너무 심하니, 새끼에게 젖을 물릴 힘도 없다. 그래서 젖을 물려고 달려드는 새끼를 거부한다고 한다.

 

젖을 물려는 새끼를 발길질하며 피하는 낙타. 어미의 차디찬 외면으로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어린 새끼들은 그것을 보는 유목민 모두에게도 지극한 아픔이다. 이럴 때 마두금이 으뜸 약이란다. 마두금을 연주해 주는 것이다. 마두금을 길게 천천히 연주해 주면 이 소리를 들은 낙타들이 눈물을 보이면서 거짓말처럼 새끼를 품어준단다. 때로는 자기 새끼가 아니어도 그것을 품어주기까지 한다는 얘기다. 모든 포유류는 제 새끼가 아니면 절대 젖을 물리지 않는데 자기 어미의 젖인 양 매달려 빨아대는 남의 새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미 낙타가 갓 태어난 새끼 낙타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거나 어미를 잃은 새끼 낙타를 자신의 새끼로 받아들이도록 어미 낙타를 구슬리는 것을 ‘달래기 의식(Ботго авахуулах зан үйл)’이라고 한단다. 마두금 연주가는 어미 낙타와 새끼 낙타를 가까이에 묶어 두고 몸짓으로, 또 독송하는 듯한 느릿느릿한 노래를 시작한다. 어미 낙타가 반응을 보이면 선율을 바꾸어 노래한다. 어미 낙타가 아기 낙타를 거칠게 거부하는 행동을 하면 시간을 두고 부드럽게 어미를 달래어 갓 태어난 새끼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숭고한 음악과 동물과의 교감의 경지는 마침내 세계인들을 울려, 이것이 유네스코에 의해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이란 이름의 전통 의식이다. 흔히들 금(琴)은 마음으로 듣는 음악이하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곧 심금(心琴)이 울리는 것이다. 마두금은 이처럼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감동하게 하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악기다.

 

 

7월 11일 몽골 국민 가장 큰 축제인 나담의 개막식 때 무대에는 큰 마두금을 든 어른이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마두금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 뒤편 악사들도 마두금으로 소리를 맞추었다. 마두금이 국민의 마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그 전날 몽골을 여행 중이던 우리들은 울란바토르의 한 극장에서 몽골 국립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유목민의 전설>이란 음악 프로그램에서 마두금 소리를 가까이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악사가 왼손으로 줄을 누르고 오른손으로 활을 그어 연주하는 마두금은 때로는 포효하며 때로는 달리며 때로는 숨이 가쁜 듯, 때로는 힘이 들어 한 숨을 쉬는 듯 끊임없이 울고 있었다.

 

특히 두 줄 가운데 한쪽에서 나는 저음은 다른 어느 나라의 악기보다도 더 깊고 나지막하게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그 소리는 곧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수많은 자연 재난과 전쟁을 이겨온 이들 몽골인의 눈물이요, 한탄이요, 때로는 행복한 웃음이었다. 이 마두금 음악이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오른 까닭일 것이다. 험한 사막을 다녀온 우리 여행객들의 마음도 같이 녹아내렸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는 시조 박혁거세가 흰말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경주의 큰 무덤 속에서는 말과 관련된 유물들이 다수 나오고 있다. ‘신라 사람들이 중앙아시아를 달리던 유목민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냐?’라는 목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신라 사람들도 거친 들판을 말타고 달리는 민족이었기에 어쩌면 몽골인들 선조의 선조인 흉노족이 우리 신라인들의 선조와 함께 같은 벌판을 달리며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몽골사람들이 만든. 말의 정신을 담은 마두금이기에, 그 소리가 그처럼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몽골인들이 아득한 옛날의 형제였을 것이기에 요즈음 우리들이 편한 마음으로 몽골을 찾아 몽골인들과 마주 앉아서 마두금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술잔을 나누는 것 아닐까?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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