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양의 옥통소 이야기

  • 등록 2024.08.06 1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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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중국의 금(琴)과 슬(瑟)처럼, 한국에는 거문고와 가야금이 대표적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는 북방, 가야금은 남방의 가야국에서 연주되어 오던 악기라는 점, 가야금이 여성적이라면 거문고는 사대부나 선비 층이 중심이었다는 점, 두 악기가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나 줄의 수, 연주방법 등이 다르다는 점, 신라의 진흥왕이 신하들에게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하는가! 가야의 임금이 정치를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서 스스로 망한 것이지, 가야금이 있어 가야가 망했단 말인가!”라며 설득한 것은 훌륭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수궁풍류에 나오는 장양의 <옥통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장양의 아호가 자방(子房)이기에 ‘장자방의 옥통소’라는 표현으로도 이 대목은 자주 만나게 되는 구절이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서도의 좌창, <초한가(楚漢歌)>는 장자방이 한(漢)나라의 유방을 도와 초(楚)나라를 칠 때의 이야기로, 장양이 달밤에 그가 옥통소를 구슬프게 불어 초나라 군사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

 

“산(算) 잘 놓는 장자방(張子房)은 계명산 추야월에 옥통소를 슬피 불어 팔천제자 해산할 제, 때는 마침 어느 때뇨. 구추(九秋) 삼경(三更) 깊은 밤에 하늘이 높고 달 밝은 데, 외기러기 슬피 울어 객의 수심(愁心)을 돋워주고, 변방만리 사지중(死地中)에 장중에 잠 못 드는 전 군사야, 너희 패왕(覇王)이 역진하여 장중(帳中)에서 죽을 테라. (이하 줄임) ”

 

장자방이 잘 불었다고 하는 통소(洞簫)는 취악기, 곧 입으로 불어서 가락을 이어가는 관악기로 아래위가 통해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악기는 원래 당악계 음악에 편성되었던 악기였는데, 조선조 중기 이후로 향악기화 되었다고 전해온다. 통소란 어떤 악기인가?

 

 

우리 옛말에 <10년 퉁수>라는 말이 있다. 소리를 내고 가락을 옮겨 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만큼 많이 불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우리 음악에서 부는 악기들은 대부분 통소(洞簫), 퉁소, 퉁수, 퉁애라고 부를 정도로 일반화되었던 악기이기도 하다.

 

문헌에는 고려 때,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당악(唐樂) 계통, 곧 순수 향악이 아닌 중국의 일반 음악에 편성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순수 향악(鄕樂)에도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사용처를 거의 잃어버렸고, 민간들이 연주하는 시나위 음악이나 산조, 그리고 북청사자놀음과 같은 탈놀음을 연희할 때 그 반주음악에 쓰이고 있는 정도다.

 

15세기 말엽의 《악학궤범(樂學軌範)》이란 음악관련 문헌에도 청공(淸孔)은 있었으나 현재의 정악용 퉁소는 연주법의 단절과 함께 청공도 없어지고, 시나위용 퉁소에만 청공이 남아 있다. 퉁소는 1인의 독주(獨奏)음악도 일품이지만, 여러 잽이가 함께 연주하는 사자놀음의 반주음악은 그 소리가 크고 힘차면서도 애처로워 마치 북쪽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느낌마저 준다. 보름달 아래에서 듣는 퉁소의 가락, 그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한 악기가 아닐까 한다.

 

 

퉁소는 입술을 대고 김을 넣는 상단의 V 홈이 있는 부분이 취구(吹口)인데, 이 부분에 아랫입술을 대고 김을 넣을 넣어 소리를 낸다. 그리고 가락을 만들기 위해 손가락으로 열고 막는 지공(指孔)이 8개 있으며, 취구와 지공 중간에 갈대의 속, 얇은 청을 채취하여 청공(淸孔)을 만들었다. 곡조에 따라서는 그 울림이 씩씩하기도 하지만, 애처로운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음색이 일품이다.

 

퉁소의 크기는 단소(短簫)보다 굵은 긴 대나무를 재료로 만들며 그 느낌도 거칠고 힘찬 느낌을 준다. 대나무가 일반적 재료이기는 하나, 옥통소라 함은 그 재료가 특별하게 옥(玉)으로 만들어진 통소를 말함이다.

 

오래전의 일이다.

중국 연변대학에서 초청한 <한-중 전통음악 교류회>에 한국에서 참여한 30여 명의 학자, 연주자 등과 중국의 조선족과 지역의 인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음악회가 열렸다. 함께 손뼉을 치고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면서 끝났을 때, 사회자의 소개로 글쓴이가 무대 인사를 하러 나갔을 때였다,

 

객석의 한 노인이 마치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거 퉁소 부는 사람은 왜 아니 왔습니까? 퉁소음악이 제일인데, 우리는 퉁소 소리를 들으러 왔는데,”라며 아주 실망한 표정과 함께 그 심정을 토로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함경도가 고향인 그는 어려서부터 퉁소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그래서 퉁소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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