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왜 김해에서 나왔지?

  • 등록 2024.08.07 13: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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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청동솥과 몽골여행에서 만난 청동솥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 집에는 청동으로 된 약간 길쭉한 솥 같은 것이 하나 있다. 사진에서 보듯 이 솥의 양쪽에는 고리가 있다. 고리는 터져 있어 거기에 긴 막대를 끼면 지상 위로 올려 세울 수 있고, 그 밑에 불을 피워서, 물을 끓이거나 그 물로 고기, 푸성귀 등을 익혀 먹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동이 가능한 주방용 솥 혹은 냄비인데, 보통 청동으로 만들었다, 학자들은 이 솥을 청동솥 혹은 한자어로 동복(銅鍑)이라고 한다. 1995년 무렵 필자가 북경에서 기자생활을 할 때 골동품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사 놓은 것이다.

 

북경 골동품 시장은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눈이 아플 지경이고 그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짜 위조품이다, 그런데 필자가 왜 이 솥에 눈길이 꽂혔을까? 그것은 이와 비슷한 청동솥(동복)이 김해의 대성동 유적에서 나왔기에 그것과 비교가 된다는 생각에 선뜻 소장하게 된 것이다.

 

 

김해 대성동 유적은 1990년대 초 김해읍(당시) 한쪽 언덕에 조성된 3~4세기 가야시대 무덤군을 발굴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인데 여기 29호분과 47호분에서 각각 사진과 같은 동복(편의상 동복이라고 부르자)이 나온 바가 있다. 필자는 1992년 봄에 이곳 출토품을 취재하면서 한일 고대사, 특히 이른바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다룬 바 있는데, 이때 이 솥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에 나중에 북경 골동시장에서 이 솥을 보고는 바로 구입한 것이다.

 

 

다시 사진을 보면 왼쪽이 대성동 47호분 출토 동복이고 오른쪽이 우리 집 것인데 세부적인 장식은 조금 다르지만, 전체 형태가 거의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동복은 특별히 오르도스 형이라고 해서 중국 서북부 황하가 지나는 은천(銀川)지방, 이른바 오르도스 지방에서 처음 발굴됐고 이곳의 형태에서 다른 지역으로 변형되면서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우리집 것이나 김해 것이나 다 오르도스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르도스 형 동복이 어떻게 김해에서 출토되었는가? 그것은 누군가가 이런 도구를 쓰는 사람들이 이런 도구를 갖고 와서 쓰다가 죽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동복이 나온 것은 당시의 수장급, 곧 왕급 무덤이었다고 하니 당시 지도자의 신분을 표시하는 전세품으로 볼 수 있으니 이 부족 지도자가 오르도스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뜻이 된다.

 

 

오르도스라고 하는 곳은 우리가 흉노라고 부르는 유목민들이 살던 곳이다. 거기 살던 사람들의 그릇이 우리나라 경상남도에서 발견된 것은 그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이와 관련해서 그동안 고고유물 발굴을 토대로 우리 민족이 흉노에서 왔을 것이라고 발표한 학자도 있지만 최근 신라 무왕릉의 비문에서 전한시대 흉노족 수장 김일제를 지칭하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고 중국에서 출토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서도 이 흉노족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음에랴 ​​

 

태상천자(太上天子)께서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고 집안을 열어 드러내셨으니 이름하여 소호씨금천(少昊氏金天)이라 하는데, 이분이 곧 우리가 받은 성씨의 세조(世祖)이시다. 그 후에 유파가 갈라지고 갈래가 나뉘어 번창하고 빛나 온 천하에 만연하니 그 수효가 많고도 많도다. 먼 조상 이름은 김일제(日磾)시니 흉노 조정에 몸담고 계시다가 서한(西漢)에 귀순하여 무제(武帝) 아래에서 벼슬하셨다. 명예와 절개를 중히 여겼으므로 그를 발탁해 시중과 상시에 임명하고 투정후(투후)에 봉하였다. ​

 

이것으로 신라의 김씨들은 흉노왕을 그들의 조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곧 이 동복이야말로 구체적인 사실이나 인과관계 여부를 떠나서 흉노쪽에서 신라로 누군가가 왔다는 확실한 증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연유로 이번에 몽골을 여행하면서 몽골의 칭기즈칸 박물관에서 유심히 본 결과 이런 동복들이 흉노시대의 것이라고 전시공간에 소개하고 있어 우리 집에 있는 동복도 흉노의 유물이라는 심증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동복은, 누군가가 내몽고나 유목지역에서 발견한 것이 혹 돈이 될까 해서 북경의 골동시장에까지 갖고 와서 내놓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자들의 연구를 들여다보니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동복은 흉노를 상징하는 유물이었다. 원래 동복은 스키타이, 흉노족들이 말 등에 싣고 다니며 취사나 제사 도구로 사용했는데 흉노 수장의 상징물로, 수장이 사망하면 사용하던 동복을 다음 수장이 물려받곤 하였다. 동복은 스키타이식과 흉노식 두 가지가 있다. 스키타이식 동복은 반구형에 손잡이가 달려 있다. 흉노식은 솔모양으로 때로는 화려한 장식이 치장되기도 한다.

 

흉노식 동복은 황하상류 내몽고 오르도스 지방에서 다수 발견되었고, 몽골의 노인울라(Noin Ula) 고분군, 알타이산맥, 우크라이나 볼가강 유역, 돈강 유역, 헝가리 등에서 발견되었고 만주의 길림성에서도 발견되었다. 흉노족이 훈족이란 이름으로 서방으로 진출할 때 알타이 지역을 지나 아랄해와 카르파티아 초원 지대를 지났는데 이들 경로에 대소형 동복(銅鍑)이 30여 개가 발견되었다."

 

 

흉노지방에서는 신라 경주에서 보이는 것 같은 무덤형태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이 나오고 있다, 칭기스칸 박물관 안에 그런 무덤이 전시되고 있었다. 흉노라고 적은 그 민족의 이름을 영어로는 Xiongnu라고 하는데 몽골에선 Xunu라고 하고 있어 이것이 훈(Hun)로 들려서 흉노족을 그렇게 표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흉노의 일족이 어느 부족에 섞여 직접 내려왔거나 선비족 등 다른 뮤목민족에 포함됐다가 내려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몽골여행을 하면서 집에 있는 청동솥 하나를 다시 본다. 그 흉노 이동의 끝자락이 우리나라 경상남도 김해 일원이었다는 방증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본다. 고대의 우리 민족의 뿌리를 그렇게 더듬어보는 것이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

 

 

 

 

이동식 인문탐험가 sunonthe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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