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소중한 경험, 평생의 큰 자산

  • 등록 2024.09.24 11: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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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9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정농악회>가 만들어지던 1970년대 중반, 당시에는 순수하게 공부하는 목적으로 서울음대 김정자(가야금 전임), 김선한(거문고 강사), 글쓴이(서한범, 피리 강사), 양연섭(가야금, 양금) 등 젊은 강사들이 ‘원로 사범에게 재교육을 받아 후진들을 지도하자’라는 취지로 조직되었으며 정농의 취지는 바른 음악, 또는 어진 음악을 지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취지”였다고 이야기하였다.

 

정농악회(正農樂會)란 이름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진 음악이란, 천지의 중화(中和)를 근본으로 한 것이기에 아정(雅正)하고 사(邪)하지 않다. 그러므로 방탕에 흐르지 않고,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되어 동성상응(同聲相應)과 동기상감(同氣相感), 그리고 동친상애(同親相愛)하여 민족을 화합케 만든다.” <아래 줄임>

 

당시의 상황도 지금과 비슷했다. 일반 대중들은 물론, 국악 전공자들도 산조(散調)와 같은 민속악(民俗樂)에 견주어 정악(正樂)과 같은 음악들은 재미가 없는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부 모임의 이름도 짓고, 원로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특별 지도도 받아 가며 정악의 기초를 다시 공부한 지 얼마의 기간이 지났을 무렵이다. 우리 젊은 교수들은 그동안 익혀 온 곡들을 다시 한번 복습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이 공부의 결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곧 <정농악회>의 창립연주회로 연결시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영산회상’ 9곡 전곡을 국립극장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발표할 공연 계획을 세우고, 노(老) 선생들의 동의를 받아낸 것이다.

 

 

 

창립 연주회를 위한 역할 분담에 관한 논의, 곧 발표회에 필요한 예산의 확보 문제를 비롯하여, 발표회의 때와 장소, 프로그램의 제작, 홍보, 자체의 연습계획, 기타, 여러 문제를 원로 사범들과 논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원로들과의 논의과정에서 다른 문제들은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으나, 그분들과 의견이 쉽게 일치되지 않은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연습의 계획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1주일에 몇 번 모여 연습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젊은이들의 의견은 “학교 수업일정을 비롯하여 여러 잡무가 많기에 바쁘다는 점,” 또는 “이미 다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악곡이니만큼, 각자 연습해서 1달 정도 집중적인 훈련을 하자는 의견” 또는 “현재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곡이니만큼 몇 번 연습하면 연주회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는 의견.” 등등의 이유를 앞세워 주 1회 연습이면 충분하다고 의견을 모았는데, 그런데 원로 대가들의 의견은 비록 강력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부정적이었다. 왜 그런 반응을 보이셨는가?, 하는 점은 곧바로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젊은 음악인들은 간단하고 쉽게 생각하는 음악이 바로 정악이고, ‘영산회상이라고 생각하지만, 평생을 연주해 온 원로(元老)분들의 의견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는 평생 ’영산회상‘만을 연주해 왔지만, 아직도 그 정상의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음악이 곧 ’영상회상‘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준비해서 될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다시 검토해 보기 바란다”라며 우리의 경솔함을 조용히 타일러 주는 것이었다.

 

<이왕직아악부원 양성소> 출신의 원로 음악인들이란 어떤 분들인가?

 

12~3살 어린 나이에 이왕직 아악부에 들어와 지금처럼 격정적 표현의 산조음악이나 흥취를 돋우는 민속조의 음악, 또는 창작곡은 생각도 못 하고, 오로지 ’영산회상‘ 중심의 정악만을 평생 연주해 온 정통 음악인들이 아닌가! 아무 때나 악기만 들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그분들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많은 연습시간을 필요로 하였고, 왜 그토록 젊은이들과의 합주에 긴장을 하셨는지? 당시에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젊은 교수들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老) 명인들의 조용한 충고에 아무 변명도 못하고, 주 3회 연습을 결정했던 기억이 있다.

 

계획대로 우리들은 약 5달 정도 주 3회 연습을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마다의 연습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음악의 세계는 경험한 사람들만이 공감하게 되는 또 다른 정악의 세계였다. 강한 소리와 약한 소리의 조화, 큰 소리와 작은 소리의 대비, 잔가락을 비롯한 다양한 표현적 시김새의 처리, 쌍(雙)ㆍ편(鞭)ㆍ고(鼓)ㆍ요(搖)로 이어지는 장단 흐름과의 호흡, 관(管)악기의 가락과 현(絃)악기 가락의 조화, 내 소리와 다른 악기들과의 조화 등등, 원로들과 함께 연습을 하면서 그분들이 지적해 준 음악적 관련 내용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음악세계를 안내해 주는 그 자체였다.

 

지금도 당시의 소중한 경험은 평생의 큰 자산으로 남아있으며, 후진 양성에 큰 교훈으로 삼게 되였으니 너무도 고마운 경험이 되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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