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 한농선 명창을 만나다

  • 등록 2024.12.10 12: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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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0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노은주에게 처음 소리를 지도해 준 강도근(1918~1996)은 김정문, 송만갑, 유성준 등에게 배웠고, 창극단과 지방의 국악원, 특히 1973년 무렵부터 <남원국악원>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그의 장기는 ‘제비 후리는 대목’이었다는 이야기, 무엇보다도 그는 돈이나 명예를 좇지 않는, 순수한 소리꾼으로 70살에 흥보가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는 이야기, 노은주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강도근 명창을 만나 <백발가>와 판소리 <흥보가> 등을 배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노은주는 “강도근 선생님 다음으로 남원국악원에 오신 젊은 전인삼 선생에게 배웠는데, 그 분은 소리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지도해 주셨지요. 선생과 제자들이 일정기간 산에 들어가 소리공부를 집중적으로 하는 형태의 수련을 산(山)공부라고 표현하는 데, 젊은 선생님은 공부시간, 연습시간, 휴식시간, 잠자는 시간, 등을 엄격하게 정해놓고 지도해 주셨어요. 지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씀이 잊히지 않네요.”라고 말한다.

 

강도근, 전인삼 두 분 남창 선생님들에게 배운 이후, 그러니까 90년대 중반 전남대학에서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하게도 한농선 명창의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그 순간, 그 소리에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한다. 무조건 한농선 명창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제자가 되겠다고 하여 승낙을 받은 뒤,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소리도 소리이지만, 여성 소리꾼의 자상함이나 섬세한 배려가 노은주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노은주의 목은 완전히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연습을 무리하게 한다면 목이 상해 소리를 못 하게 될지도 모르니 일주일 정도 충분히 쉰 다음, 생목이 되어서 오도록 하라”고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남성 창자들과는 달리, 섬세하고 자상하게 대해주는 여류 명창에게 노은주가 마치 어머니와 같은 따스한 정을 느꼈으리라 생각되는 것이다.

 

 

선생을 만나 소리공부를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판소리의 새 경지는 노은주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녀의 말이다.

“선생님의 소리는 사설치레에서부터 소리의 상하(上下)청, 강약, 요성(搖聲, 떨어서 내는 소리)이나 퇴성(退聲, 꺾는 소리), 추성(推聲 밀어 올려 높은 음으로 내는 소리) 등의 표현법이나 시김새의 처리라든가, 특히 <발림> 등등이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한농선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마음을 빼앗겼으면 다니던 대학에 공식적으로 휴학 처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 잠실, 선생님 댁으로 들어가 함께 기거하면서 선생님의 소리인 한농선 류(流)의 <흥보가>를 배우기 시작했겠어요?”

 

판소리 명창들은 소리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발림>도 매우 중요한 명창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꼽고 있다. 참고로 <발림>이라고 하는 것은 사설의 내용에 따라 손이나 발, 때로는 몸 전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통해 그 내용을 더더욱 실감 나게 표현하거나 강조하는 동작, 등을 말한다. 가령, 밤하늘에 높이 떠 있는 달이나 별을 노래할 때, 단순하게 사설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이 들고 있는 소도구(부채) 끝으로 실감 나게 가리키며 소리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극적 요소는 판소리를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더더욱 실감 나게 전달이 되어 감상의 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판소리의 구성요소에 있어 소리와 아니리, 그리고 발림이란 동작은 각각의 독특한 요소로 판소리의 존재를 더더욱 상승시켜 나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발림은 호흡과 함께 춤사위 연습이 되어 있어야 표현이 자연스럽고 예쁘게 표현되게 마련인데, 다행스럽게도 노은주는 어려서부터 가야금과 춤을 배워 둔 덕분에 발림이 예쁘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 편이다. 고향땅 남원에서 어려서부터 소리와 함께 송화자에게 가야금도 배울 수 있었고, 박광자에게 춤을 배웠던 경험을 그녀는 너무도 고맙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그녀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의 예능보유자이었던 한농선 선생에게 <흥보가>를 배울 수 있었다는 기회는 저에겐 너무나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선생님도 제 곁에 오래 계시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지요. 한동안 공부고, 소리고,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소리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저는 기진맥진의 상태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suhilk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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